역사

[주신구라-47인 사무라이의 복수극], 이준섭, 살림, 2005, (111015).

바람과 술 2011. 10. 15. 23:00

한국에 출몰한 사무라이와 주신구라 


'주신구라'가 일본인의 정신 형성에 끼친 영향력은 근대에 들어와서도 이어진다. 근대 일본의 '주신구라'는 메이지 유신 이래의 국민국가 형성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특히 전쟁이나 반란이 일어났을 때에 집단적으로 상기되어 마치 하나의 행동강령과 같은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의 '주신구라'는 단지 민중이 애호한 문예물이었던 것뿐만 아니라 근대 일본의 중요한 정치문화로서의 기능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근대의 '주신구라'는 근세와 같이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에 관계될 뿐 아니라 국민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여 내셜널리즘의 일환으로 군림하는 정치사회적 특색을 보이는데, 그것은 크게 두 가지의 입장으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1868년 11월에 메이지 천황이 센가쿠지에 칙사를 파견해 오이시를 비롯한 아코 낭인의 행동을 칭송한 것을 받아들여 그들을 의사로 찬미하는 국수주의 입장이다. '주신구라'는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무사도의 맥락에서 읽혀왔다. 메이지 유신 이후 무사도 정신은 국민도덕의 골격을 형성했으며, 국가 이데올로기의 중심을 차지했다. 다른 하나는 1873년 2월에 복수를 국가공권을 범하는 중대한 범죄행위로 규정하여 금지한 '복수금지령'에 의거해 의사로 인정하지 않는 계몽주의의 입장이다. 요컨대, 근대의 다양한 '주신구라'는 메이지정부의 칙사파견과 복수금지령이라고 하는 서로 모순되는 정책을 개개의 연구자가 어떻게 받아들여 아코 사건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그 위상이 정해지는 것이다. 


의사는 정치적 선전물 

47인의 습격에 대한 찬반이 격론이 벌어졌다. 이 논쟁을 46인의 심정과 죽은 주군과의 군신관계에서 보면 그들의 행동은 일반적으로 의에 해당하고, 무사도를 실행한 거사라고 할 수 있다. 막부의 법을 위반했다고 해서 처형당한 모순이 문제였던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아코 낭인들의 습격은 당시의 막부재정에 이의를 주장하여 상부의 처분을 실력으로 파기한 반역행위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부가 아코 낭인들을 죄인으로 벌하지 않고 의사로서 할복하게 한 것은 추락한 무사의 가치를 회복하려고 하는 정치적 선전이었을 것이다. 


극화의 의의 

주신구라 이야기가 생기고 나서부터 계속해서 나타나는 충신장물을 보면 어디든지 에도서민이 등장해 낭인의 행동에 동정을 보내고 있다. '주신구라'는 세가지의 특징을 들 수 있다. 첫째는 소위 가부키 3대 명작 중의 하나이면서 다른 두 작품과는 달리 내용 속의 사건이 당시, 즉 에도 시대에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다루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 작품이 대중으로부터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이고, 셋째는 이 작품이 시대에 따라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화함과 동시에 또한 여러 가지의 변형을 낳는다는 것이다. 1710년, 아코 낭인물의 붐을 타고 등장한 작품에는 장르를 뛰어넘어 어떤 공통된 특색이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사건에 대해서 매우 많은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생한 뉴스성을 중시하여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호에이 시대의 낭인물 붐이 지나가고 아코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관심이 점점 덜해짐에 따라서 연극계에서는 새로운 경향이 생겨난다. 하나는, 교호(1716~1735) 시대 이후 무사도의 체계화와 더불어 충의의 정신이 강조되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색과 금전에 얽힌 조닌(도시 상공업자)의 생활패턴에 깊이 관련되어 있는 이야기가 나타나는 것이다. '주신구라'는 이러한 무사적 요소와 조닌적 요소를 적절하게 조화시켜 선행작품의 다양한 취향과 수법을 채용하면서 이들을 18세기 중엽의 현대풍에 맞게 재구성하고 집대성한 작품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여자와 돈이 문제 

도쿠가와 막부는 당시의 사건, 특히 무사사회의 사건을 그대로 상연하는 것을 금했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이었던 자가 세키가하라 전투와 오사카 전투 이후 도쿠가와에게 충성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쿠가와 쪽이 이 무사들을 믿지는 않았다. 정책실행자인 관료의 포스트 자리에는 에도성 내에 그 어떤 낮은 자리에라도 그들을 앉히지 않았다. 이들은 만년 야당이었던 셈이다. 막부의 창시자인 도쿠가와는 이 두 그룹에 대하여 재미있는 처우를 강구한다. 권력을 쥐고 있는 무사의 녹봉은 낮게, 권력이 없는 무사의 녹봉을 높게 책정한 것이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한간 

할복은 타살이다 

의리지상주의 

패러디 천국 

패러디의 본령은 전복이다. 패러디의 묘미는 원전의 내용과 표현양식이 반전과 전복을 일으키며 전혀 새로운 의미구조를 창출해내는 한판 뒤집기에 있는 것이다. 막부의 유학 장려정책의 결과, 많은 인재가 중국문화 연구에 힘썼으며, 이 가운데 오규 소라이 등의 영향으로 백화(근대 중국의 구어)를 배워 백화소설를 번역하였고, 혹은 그것에서부터 소재를 얻어 게사쿠 작품활동에 임한 사람들도 나타났다. 그것은 물론 서민계급의 솜씨가 아니라 무사계급과 같은 신분을 지닌 지식인들이 남아도는 지식의 배출구를 찾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나중에는 에도 조닌출신의 전문 직업작가들이 등장하게 된다. 


주신구라 문화의 역동성 

시대의 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