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판 서문
부르디외는 결정적 순간이란 "미래가 정말로 우연성의 지배를 받아 앞으로의 일이 진정으로 결정되어 있지 않으며, 순간이 정말로 순간 그 자체로 보여 예상되거나 예상할 수 있는 결과 없이 일시 정지 상태에 있는 그런 시점이다."
프롤로그
'1968'은 지구적인 현상이었다. 1968년 절정에 이른 저항운동은 국제적 운동이었기에 각국 운동을 이끈 그룹은 서로 관련되고 세계적으로 연결되었다. 다양한 나라의 저항운동이 각기 특수한 진행경로를 보여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주된 동원 요인은 어디서나 베트남전 반대였다.
1. 베트공 '구정공세'
당시 세계적으로 조직되고 있던 베트남전 반대세력은 미국의 이런 전략을 '인종학살'이라 불렀다. 미국 내에서는 먼저 대학생이 자국 정부의 베트남 개입정책 강화에 반기를 들었다. 학생들은 베트남에 전투병으로 징집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고 실제로 1966년 봄부처 징집 인원이 점차 더 늘어났다. 항의를 위해 학생들은 '농성토론회'라는 새로운 정치토론 및 선동 형태를 창출했다. 농성토론회의 목표는 기존의 일방적인 강의 방식을 탈피하여 토론과 정보 전달을 통해 활발한 정치활동 참여에 불을 지피는 것이었다. 학생들의 저항을 이끌던 중심조직은 '민주사회학생연합(SDS)'이었다. SDS가 볼 때 관건은 미국이 처한 문제의 핵심을 베트남이 아니라 미국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베트남전 반대운동은 평화운동과 흑인 시민권운동의 지지를 받는다. 시민권운동은 미국의 군사개입 강화와 나란히 급진화의 길을 걸었다. 베트콩의 구정공세로 전쟁이 남베트남 도시로 확대되자 이제 베트남전은 그것에 머물던 미국 사진기자와 TV 방송기자의 카메라 앞에서 펼쳐진다. 사진과 TV 화면이 여론을 움직이고, 존슨 행정부가 말하는 전쟁과 실제 전쟁 사이의 간극이 드러난다. 작전에 참여한 베트콩 7만5천명 가운데 4만명이 전사해 구정공세는 전략 면에서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의 실패로 기록된다. 하지만 구정공세 및 관련 보도는 사태 인식과 미국 정치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구정공세는 미국 대외정책상의 '부분적 혁명'을 야기했고, 동아시아 정책에 대한 숙고와 미국 헤게모니의 목표 및 한계에 대한 성찰을 낳는다.
2. "호! 호! 호찌민!" : 베트남전 반대자 네트워크
레지스 드브레는 "어떤 지식인을 평가하려면 사상검증으로 충분치 않다. 결정적인 시금석은 사상과 행동 사이의 관계이다." 게바라는 '의식', '의지', '의무'를 신뢰하는 전략을 내걸었고, 따라서 주의주의에 믿음을 건다. 주의주의는 '역사는 창출 가능하다'는 생각과 연결되고, 필수적인 물질적 조건이 아직 존재하지 않아도 '다른'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과도 결부된다.
3. '행동하는 소수' : 3월 22일 운동그룹
낭떼르대학 행정건물을 점거한 학새들은 3월 22일 밤에 '3월 22일 운동'으로 뭉친다. 3월 22일 운동이 어떤 강령도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에 가깝다. 그 운동은 도그마에 반대했고, 바로 그게 강령이었다. 3월 22일 운동의 회합에서는 누구나 발언할 수 있었다. 어떤 수뇌부 결정이나 어떤 정치적 노선도, 회원으로서의 어떤 구속도 이를 막지 못한다.
4. 중국 문화혁명이 서방으로 빛을 발하다
문화혁명은 앞서 엠마뉘엘 떼레가 말한 상상된 '평등주의'나 '반권위주의', 혹은 경직된 구좌파와의 정치적 차별화 기회 외에도 또하나의 전제를 통해 서구 지식인을 움직인다. 마오는 존재가 의식을 창출하지 않고, 의식이 정치적 행동을 매개로 존재를 각인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마오는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영역에서도 계급투쟁이 필수불가결하다고 본다.
5. 까미리 감옥 '수인번호 001' : 레지스 드브레
6. 4월, 두 차례 암살기도 : 마틴 루서 킹과 루디 두취케
7. 컬럼비아 대학 점거
8. 한나 아렌트가 폭력을 숙고하다
9. 빠리 바리케이드의 밤
학생들의 행동주의는 대중매체를 끌어들인다. 첫번째 바리케이드가 설치된 직후 점거지역으로 달려온 라디오 방송 차량 두대의 중계를 통해 운동의 영향력은 외부로 증폭된다.
10. 언어폭력 : 페터 한트케의 「카스파르」 공연
한트켕게 문학은 언어비판이다. 언어는 그 자체로 실재하는 어떤 것이다. 이 실재는 언어가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야기하는 것을 통해서만 검증 가능한 그런 실재이다. 언어비판을 통해 한트케는 스스로 진정한 인식의 세계로 들어가려 한다. 진정한 인식이란 판에 박힌 언어 틀의 파괴, 즉 개인의 언어적 소외를 지양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사회비판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언어비판은 개인의 생각과 인식을 규정하는 언어의 힘을 폭로한다. 한트케는 이른바 두번째 소외 혹은 '문화적' 소외를 강조해서 극적으로 보여준다. 언어를 통해 야기되는 그 소외는 경제적 소외보다 더 깊이, 더 불가역적으로 인간의 삶에 파고든다. 한트케는 언어체계에 종속되어 말의 억압에 희생된 한 인간의 위상에 대해 기술하는 한편, 규범화하고 구조화하고 재생산하는 언어의 힘을 비판하고 통제된 언어사용을 요구하는 것이다. 상황주의자의 전제에 따르면, 사회비판에는 새로운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새로운 언어는 내용과 형식의 변증법 및 부정의 문체가 특징인 '저항의 언어'일 수밖에 없다. 의미 내용을 잧설게 만들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전복적으로 담아내는 그 구상을 상황주의자는 개념의 '탈취'라고 이름붙인다. 상황주의자의 그런 작업은 '탈취된' 말을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전통적인 의미의 틀을 부수는 것이라 불러야 한다. 상황주의자는 개념의 '탈취'를 통한 이런 '언어 작업'이 기존질서를 모두 교란하는 '폭력행위'라고 이해한다. 따라서 기 드보르는 그 '폭력행위'를 사회비판 형태로 본다. '폭력행위'는 통상적 의미론과 일상적 상황, 즉 언어규칙과 경기규칙을 창의적이고 비타협적으로 돌파하는 행위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이 행위의 목표는 '규칙위반'을 통해 개인의 진정한 표현력을 고양하면서, 상실되거나 단절된 의사소통을 원상복구하고 분류 및 인식의 기본 틀을 바꾸는 것이다. 오히려 상징적이라고 할 이러한 '폭력'은 지향하는 바가 동일한 '전복' 개념과 결부된다. 상황주의자는 전복 행동은 '규칙의 규칙'을 바꾸는 것, 즉 세계에 대한 사고와 인식, 분류의 기본 틀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한다.
11. 프랑스 총파업과 '자주관리' 호소
12.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의 봉쇄, 보이콧, 점거
13. 드골 대통령이 바덴바덴으로 도주하다
정치가가 저항에 대응하는 전략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가있다. 용인 아니면 탄압이다. '용인 전략'은 운동의 요구사항을 인정하고 대화와 협상을 위한 준비태세를 갖춘다는 뜻이다. 적어도 운동의 합당한 대표자는 그렇게 상대한다. '탄압 전략'은 사회운동에 대한 거부를 의미한다. 즉 운동의 요구를 통상 비현실적이거나 불법적인 것으로 비난하고, 활동금지와 조직금지 및 국가적인 강제수단을 동원해 현상태를 최대한 방어한다. 두 전략은 적용과정에서 서로 연결되거나 자리바꿈이 가능한 혼합 형태도 등장한다.
14. 삶의 영역에서 정치적인 것의 발견
15. '더 적은 것'에서 '더 많은 것'으로 이끄는 위대한 여행의 시대
게바라의 게릴라는 종교적 게릴라였고, 게바라의 의지는 믿음이었다. 여러 신좌파 대변자를 하나로 묶고 행동을 조직하는 여행으로서 시대를 인식하는 것은 특수한 역사 이해와 관련된다. 그런 시대인식에는 세 가지 관점이 돋보인다. 첫째, 미래는 구조적으로 과거와 다르다고 생각한다. 둘째, 미래를 '형성 가능한' 것으로 이해한다. 또한 역사는 목표 지향적 발전에 맡겨지고, '시대 속에서' 사회를 만들어내는 과제가 매번 그런 발전에서 도출될 수 있다. 셋째, 따라서 역사 발전은 가속화하거나 늦출 수 있다고 본다. 역사 발전은 혁명적 주체의 의식화 과정 및 활동 과정과 결부된다. 이런 전제에 따르면 역사는 집단적 주체가 만들어간다.
16. '프라하의 봄'의 종언과 까스뜨로의 평가
17. 시카고 저항의 폭발과 내파
18. 마오가 중국 홍위병을 거두어들이다.
19. 서구에서 마오주의가 유행하다
20. "자매애는 강하다" : 여성 반란
반란 여성들은 전통적 여성역할의 유형을 새로운 비전과 사상 및 실천으로 대체해 구조적 모순을 돌파하고 극복하려는 목표를 통해 하나가 된다. 반란 여성들은 일상과 사적인 생활 영역, 가족이나 성별관계에서 권력구조와 위계제의 타파를 겨냥한다는 점에서 자신의 투쟁을 정치적인 것으로 본다.
21. 멕시코 학살과 비아프라 내전
22. 「베트남 논쟁」 연극 상연과 시위대의 '뱀춤'
일본 저항운동의 특징은 자치와 자주에 대한 추구였다. 일본 신좌파를 묶어주는 핵심 사상을 담은 개념은 바로 '주체성'이었다.
23. 11월의 문제, 문학은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24. 유령 퇴장! "교수를 변방으로!"
에필로그
25. 여성(들)이 포함된 단체 수배사진
26. 모던과 포스트모던 사이에서
27. 인식혁명
28. 68세대의 전쟁
29. "체제가 사상을 훔친다" : 콤 헤이든 인터뷰
이질적인 상황 전개의 결과인 1967년과 1968년 '항의에서 저항으로'의 이행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었습니다. 첫째, 모든 사람들의 상상력에 맡겨진 완전히 일반적 공식으로의 의미입니다. 둘째, '항의에서 저항으로'는 아주 구체적인 어떤 걸 뜻했습니다. 징집을 거부하라는 거죠. 우리는 정부가 도저히 손도 쓸 수 없는 곳에 있다고 믿었고 개혁은 불가능해 보였기에 히피들보다 더 나아가기를 원했습니다. 이게 전국으로 번져갔지요. 하지만 폭력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입대 거부였죠. 물론 합법적인 일은 아니었고요. 셋째, 그 '저항'의 본질은 거리를 통제하려는 경찰에 주눅들지 않는다는 데 있었습니다. 따라서 비폭력 행위인 시민 불복종과 가두투쟁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지대였던 셈이죠.
'참여'는 68운동의 중심사상입니다.
옮긴이의 말 68혁명으로 가는 시간여행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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