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슬로우], 플로리안 오피츠, 박병화, 로도스, 2012, (140209).

바람과 술 2014. 2. 9. 06:34

감사의 말


한국어판에 부쳐

들어가는 글 이 여정은 왜 시작되었는가


가속화에 담긴 엄청난 모순은, 능률적으로 일할수록 시간은 더 부족해진다는 것입니다. 

1부 우리는 왜 불안하게 쫓기며 살까?

“우선순위를 정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나요?” -시간 관리 제왕과의 만남

“인생은 선택, 한계를 인정하고 집중하세요” -탈진증후군 전문가와의 상담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끊고 6개월간 살아보니……” -디지털 세계와 단절한 기자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날로그적인 존재입니다. 


“멀티태스킹이 답은 아니랍니다” -시간 연구자를 찾아서


사람들은 될 수 있으면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고 최대한 많은 짐을 떠안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시간 부족의 원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현대인은 하나의 삶 속에 서너 가지 삶을 사는 셈이며, 결정적인 것을 놓칠까 봐 속도와 과제를 몇 배로 늘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왜 시간이 부족한지 묻지 말고 많은 것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어야 합니다." 사회 전체가 속도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의 압박을 개인의 문제로 보는 시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 

2부 속도와 경쟁에 집착하는 세상

“빠른 자가 느린 자를 잡아먹지요” -세계적 기업 컨설턴트와의 인터뷰

“100만 분의 1초 빠른 뉴스를 전합니다” -로이터 통신 유럽 본부를 가다


마르크스는 생산에 대한 글을 쓰며 "물리적인 마모보다 도덕적인 마모가 더 빠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기계가 오래되어 실제로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도 전에 교체해버립니다. 오래되어 실제로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도 전에 교체해버립니다. 단지 기계의 속도가 느려졌다는 이유만으로 말이죠. 그리고 이런 현상은 이제 소비재에도 나타났습니다. 이미 많은 분야에서 자동화 과정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느 만큼의 속도까지 견딜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이제 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어느 만큼의 속도까지 도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도 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바람직한 삶을 위해서는 어느 만큼의 속도가 필요한가? 무엇이 삶의 질을 높여주는가?"입니다. 

3부 행복과 속도 사이, 대안을 찾아서 


“왜 알프스의 산장지기가 되려 하느냐고요?” -제도권에서 탈출한 금융 전문가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잘못된 사회에서는 올바른 삶을 기대할 수는 없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컴퓨터가 밥 먹여주는 건 아니잖아요?” -산골 농장의 바츨리 가족


“나는 4,000년 후를 기대합니다” -황무지로 떠난 노스페이스 창업자

“가난과 행복이 공존할 수 있을까요?” -부탄의 국민총행복론


행복이 그런 물질이라면, 그건 결국 인간을 멸시하는 일이겠죠. 인간을 물질로 통제할 수 있는 기계로 보는 셈이니까요. 그것은 국민총행복의 개념이 아닙니다. 행복은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펼칠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질 때 생기는 것입니다. 이 가능성의 전제 조건을 만들어주자는 것이 국민총행복의 목표입니다. 


다른 사회적, 경제적, 생태학적, 문화적 요인들이 궁핍을 보상해주는 거지요. 이것이 우리의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입니다. 


“전 국민이 매달 200만 원씩을 받는다면?” -조건 없는 기본소득

나오는 글 긴 여정을 마치며
옮긴이의 말 진정 앞서 가는 사람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