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생각의 지도], 진중권, 천년의 상상, 2012, (140528).

바람과 술 2014. 5. 28. 11:54

머리말


오늘날 '에세이'라는 말은 주로 수필을 가리키나, 17세기 이후로 이 말은 '논문'까지를 포괄하는 폭넓은 것이었다. 인문학에서까지도 여전히 '논문'이 학적 글쓰기의 배타적 표준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인문학의 미래는 철학적 논문과 문학적 수필이 구별되지 않는 글쓰기로서 '에세이'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그렇듯이 인문학은 결국 그 시대에 적합한 유형의 인간을 만들어내기 위한 사회적 기획의 한 부분이다. 헤겔은 "진리는 체계'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지식을 정합적인 체계로 포섭하게 해주는 그 '하나의'의 관점, 즉 '절대적' 관점의 존재를 믿는 사람은 더 이상 없을 게다. 오늘날 세계의 상을 전달해주는 것은 서로 어긋나는, 때로는 서로 모순되는 다수의 관점들의 몽타주다. '진리는 파편'이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파편들의 몽타주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라기보다는 한 장의 '지도', 그것도 기억해야 할 부분만 표기한 한 장의 약도에 가까울 것이다. 


1부 삶을 예술로, 존재의 미학

01 델포이의 신탁 ­ 너 자신을 배려하라

델포이 신전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달걀을 반으로 잘라놓은 모양의 돌 조각이 있는데, 이것이 옴파로스(omphalos), 즉 세계의 배꼽이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가 세계의 양쪽 끝에서 두 마리의 독수리를 날렸더니, 결국 델포이에서 서로 만났다고 한다. 한마디로 그곳이 세계의 배꼽, 즉 세계의 중심이라는 애기다. 세계의 한가운데에서 고대에는 신들이 인간에게 지혜를 주었다고 한다. 그 신성한 지혜를 '신탁(oracle)'이라 부른다. 하지만 신의 지혜를 받기가 쉽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곳을 찾은 방문객들은 신전 아래쪽에 있는 곳에서 먼저 일주일 동안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야 했다. 정화 의식을 마친 방문객들이 신전으로 올라오면, 델포이의 사제들은 염소에게 차가운 물을 떨어뜨렸다. 만약 염소가 차가운 물에 몸을 떨면 신탁을 받을 수 있지만 염소가 반응을 보여주지 않으면 다음 달 같은 날(매월 7일)에 다시 와야 했다. 당시에도 빈부의 격차가 있어, 신전에 헌금을 많이 바치는 유력자들은 신들로부터 비교적 자세한 애기를 들을 수 있었지만 돈이 없는 서민들은 오직 '예스'나 '노'의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유력자들이 모든 질무을 할 수 있었다면 서민들은 오직 '예스-노 퀘스천'만 할 수 있었던 셈이다. 방문객이 질문을 하면 무녀가 하얀 콩과 검은 콩이 든 주머니에서 콩을 꺼내는데, 이때 주머니에서 하얀 콩이 나오면 '예스', 검은 콩이 나오면 '노'를 의미했다고 한다. 하지만 부자들이라고 해서 더 좋은 결과를 얻었던 것은 아닌다. 신탁이 은유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신탁을 받더라도 인간은 그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아서 해석해야 했다. 운 좋게 해독에 성공한 이도 있었다. 기원전 480년에 아테네인들은 "도시를 떠나 목책으로 방어하라"는 신탁을 받는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이를 목선으로 해석해 페르시아의 침입으로부터 그리스를 지킨다. 이것이 그 유명한 살라미스 해전이다. 에피루스의 왕 피로스는 테미스토클레스와는 경우가 달랐다. 그는 로마와 싸우기 전에 델포이에서 "그대는 로마에 이길 것이다. 그대는 가서 돌아놀 것이며, 싸움에서 죽지 않을 것"이라는 신탁을 받는다. 하지만 문법적으로 이 문장은 "로마가 그대를 이길 것이며, 그대는 가서 돌아오지 못하고 싸움에서 죽을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피로스는 이탈리아에서 후퇴하는 길에 기원전 272년 아르고스에서 싸움 끝에 목숨을 잃는다. 델로이의 신탁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 테베의 왕 라이오스가 받은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 자기를 죽이고 자기 아내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고, 이 운명을 피하기 위해 어느 목동에게 자기의 아기를 산에 내다버리라고 명하나, 결국 자신의 아들 오이디푸스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델포이 신탁과 더불어 널리 알려진 또 하나의 이야기는 소크라테스와 관련이 있다. 카이레폰이라는 이는 델로이에서 "그리스 전체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소크라테스"라는 답변을 얻는다. 카이레폰은 그 이유를 "적어도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안다"는 사실로 설명하려 했다. 델포이의 3대 지혜를 이루는 것은 "너 자신을 알라", "지나치지 않게", "당신은 존재한다"는 격언이다.   


02 창조적 개새끼 ­ 촌스러움을 경멸하라

푸치니 오페라의 제족 <라 보엠>은 원래 '보헤미아 여자'란 뜻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보헤미안은 서유럽의 로마니(Romany)족, 이른바 '집시'를 말한다. 이들이 '보헤미안'이라 불리는 것은 그들이 서유럽으로 들어올 때 주로 보헤미아(지금은 체코) 지방을 거쳤기 때문이다. 보헤미안의 라이프스타일을 하나의 존재미학으로 정식화(?)한 사람은 바로 노르웨이의 작가이자 철학자이며 무정부주의 활동가인 한스 헨릭 예거이다. 그는 1886년에 보헤미안의 존재미학을 감은 저서 <프라 크리스차니아 보헤멘> 때문에 형을 선고받고 두 달 동안 감옥에 구금되기도 했다. 유명한 '보헤미안의 9계명'은 바로 이 책에서 유래한 것이다. 보헤미안 9계명은 ① 네 삶을 써라 ② 가족과 연을 끊어라 ③ 네 부모를 막 대하라(부모는 아무리 막 대해도 지나치지 않다) ④ 5크로네 이하의 돈 때문에 이웃을 치지 마라 ⑤ 촌스러운 자들을 미워하고 조롱, 무시, 경멸하라 ⑥ 셀로로이드 소매 달린 옷을 절대로 입지 마라 ⑦ 스캔들 일으키기를 꺼려하지 마라 ⑧ 후뢰하지마라 ⑨ 스스로 목숨을 끊어라.


03 냉담한 멋쟁이 ­ 나는 내 자신으로 만족한다

'댄디'는 18~19세기 영국에서 독특한 복장과 취향과 매너를 통해 자신을 현대의 귀족으로 연출하던이들을 가리킨다. 물론 그들 대부분은 고귀한(?) 혈통이 아니라 중산층 출신이었다고 한다. 최초의 근대적 댄디는 조지 브러멜이라는 영국인, 그 역시 귀족이 아닌 중산층 출신으로서, 독특한 옷차림으로 당시 런던은 물론이고 유럽의 패션을 주도했다. 특유의 오만하고 냉담한 태도로 풍자와 독설을 내뱉으며, 사교계에서 스캔들 일으키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건방짐이 외려 묘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 그는 조지 4세의 궁정에서 일약 사교계의 총아로 떠올랐다. 브러멜 이후 영구에서 '댄디'는 상당히 피상적으로 이해되어 옷차림이 세련된 신사라는 통속적 의미를 갖게 된다. 


프랑스에서 댄디즘은 정치적 현상이었다. 혁명 이후 파리의 거리에는 '황금청춘'이라는 청년 그룹이 나타났다. 이들은 혁명을 지지하는 바지 입은 노동자 '상퀄로트(sans-culotte)'와 자신들을 구별하기 위해 일부러 귀족적 복장을 하고 다녔다. 자코뱅 공포정치에 대한 정치적 반감을 복장으로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그때 이들은 주로 브러멜의 패션과 에티켓을 모방했다. 프랑스의 댄디는 그 후 정치적 보헤미아니즘과 합류한다. 전통과의 과격한 단절,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경멸, 그리고 의식적인 자기 디자인, 이것이 그들이 내세운 삶의 원칙이었다. 댄디즘이 일종의 심오한 존재미학으로 이론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물꼬를 튼 사람은 작가 바르베 도르빌리였다. 도르빌리는 <댄디즘과 조지 브러멜>이라는 글에서 댄디즘이라는 현상을 복장보다는 정신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댄디는 "감정의 부재, 자연에 대한 부려움, 대담함과 무례함, 사치에 대한 열정, 인공성과 개성에 대한 욕구로 특징"지어진다. 콤플렉스가 있었던 그에게 댄디즘은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기 내면과 자존을 지켜내는 심리적 기제이기도 했다. 


보를레르 역시 댄디즘을 복장에 대한 광적인 집착과는 구별되는 현상으로 본다. 보를레르에 따르면, "이들의 유일한 위상은 자기 자신의 인격 속에 미에 이데아를 함양하고, 자기 열정을 만족시키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보를레르는 댄디즘을 거의 영성의 단계로까지 끌어올린다. 댄디의 유일한 관심사는 제 삶의 미학성. "진보는 오직 개인 속에서, 그리고 개인 자신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이 현대의 영웅은 자신을 미적으로 완성하는 것 외에 '절대적으로 목적 없는 존재'다. 발자크는 댄디를 "규방의 남자, 극단적으로 독창적인 마네킹"이라 비난한다. 물론 그가 댄디즘 자체를 부정한 것은 '댄디즘' 대신에 '우아한 삶'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그는 경제적 여유를 가진 사람은 그냥 빈둥거릴 게 아니라 '취향'을 가지고 "극단적으로 고양된 사유에 몰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자크의 생각은 영국에 전해져 댄디의 대명사로 통하는 오스카 와일드에게 영향을 준다. 보들레르가 댄디즘을 스토이시즘으로 영웅화했다면, 르네 지라르는 그 '쿨'한 태도의 바탕에 깔린 숨은 욕망을 지적한다. "댄디는 무관심한 냉담함의 가장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이 냉담함은 스토아적 냉담함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을 불태우기 위해 계산된 냉담함이며, 타자를 향해 끝없이 반복적으로 '나는 내 자신으로 만족한다'고 말하는 냉담함이다. 댄디는 자신이 자신을 위해 가장하는 그 욕망을 다른 사람들이 모방하기를 바란다." 르레 지라드에 따르면, 욕망은 (결핍된) 대상과 (욕구하는) 주체의 이항관계가 아니다. 욕망은 삼각형이어서, 우리는 대상 자체가 아니라 타인이 욕구하는 것을 욕구한다. 대상에 냉담한 듯한 댄디의 '쿨'한 태도의 바탕에는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의 욕망이 깔려 있다. 지라르에 따르면, 댄디는 대상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는 제스처를 통해 타인이 자신의 욕구를 욕구하게 만든다.  


04 도시의 만보객 ­ 뜨거운 참여와 차가운 관찰


19세기의 파리의 댄디들은 거북이를 끌고 산택을 나서곤 했다. 거북이걸음으로 대도시를 걸음으로써 현대 사회의 획일성, 속도감, 익명성을 비판하려 했다. 오늘날 만보객은 '윈도우 쇼핑'만큼이나 의미 없는 현상이 되어버렸지만, 보를레르가 살던 당시만 해도 거기에는 어떤 급진성이 존재했던 모양이다. 보를레르는 만보객을 "도시를 체험하기 위해 도시 속을 걷는 자로 규정했다. 만보객은 구경을 하면서 동시에 구경을 당하는 자다. 그런 의미에서 만보객은 한마디로 '참여자-관찰자'라 할 수 있다. 게오르크 짐멜은 정신적 태도로서 '만보객'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회경제적 조건을 제시한다. 기능의 분화가 진행될수록 개인은 사회 속에서 다른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독보적 존재가 된다. 하지만 그들 독보적으로 만들어주는 그 조건이 외려 그를 (제 일을 제외한 다른 모든 영역에서는) 더욱더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게 만든다. 이 때문에 자신을 둘러싼 압도적 힘들로부터 자율성을 지키는 것이 현대인의 절실한 과제가 되었다는 애기다. '만보객'의 등장으로 건축과 도시의 디자인은 이제 구경꾼까지 고려하게 된다. 


군중의 하나이면서 동시에 그들과 구별되는 것은 보를레르의 말처럼 "어마어마한 작업"이다. 지금 군중이 지식인에게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차가운 관찰자의 측면이다. 자신을 이미 계몽된 존재로 여기는 군중은 공공연히 지식인들의 그런 정서가 "재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지적 기회주의자가 되어 군중이 요구하는 대로 그들과 완벽히 한 몸이 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만보객을 대체할 새로운 지식인의 이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찾아야 한단 말인가. 

2부 미디어


05 커뮤니케이션의 편향 ­ 매체가 문명을 결정한다

해롤드 이니스의 말에 따르면, 모든 매체는 어떤 편향(bias)이 내재하며, 그 편향을 극복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문명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06 토탈 신파 ­ 감정과잉의 오류


한국처럼 파토스(pathos)가 넘치는 사회에서는 눈물의 과잉을 미학적 '오류'라기보다는 인간적 '공감'의 통로로 여긴다. 


07 언어의 착취 ­ 자본주의 시장 속의 언어


"자본주의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자본주의가 더 이상 자신을 어떻게 정당화할지 모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08 희망버스 ­ 네트워크를 물질화하라 


중요한 것은 역시 디지털 대중의 자발성이다. 매체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오늘날, 기사는 그 자체만으로 기사가 될 수 없다. 대중들이 링크를 걸어 리트윗을 해줘야 비로소 기사는 '사회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3부 현실과 허구

09 뮈토스와 로고스 ­ 과학 이후의 이야기

10 트루맛 쇼 ­ 사실은 만들어진다

귄터 안더스는 여전히 미디어의 기상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이 계몽주의적 기획에는 '폭로'이 기법이 유용한 수단이 되어줄 것이다. 반면, 보드리야르에게 인간의 해방이란 불가능, 왜냐하면 우리가 '실재'라 부르는 것 자체가 이미 시뮬라시옹, 즉 또 다른 가상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폭로'도 소용이 없어진다. 왜냐하면 폭로해야 할 실재, 실상, 진실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맛집은 사실이고, 이 사실이 허구라는 것도 사실이고, 이 사실 역시 다시 허구라는 것도 사실이다. 


11 재판이냐 개판이냐 ­ 몽타주의 마술

4부 사실과 믿음


12 데카르트의 고독 ­ 모든 것을 의심하라

근대의 모든 사상은 다소간 데카르트에서 유래하는 이 정초주의(foundationism)의 경향을 갖고 있다. 


13 눈에 뵈는 아무 증거 없어도 ­ 신앙주의에 관하여

'믿음이 증거에 앞선다'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가진 이성이라는 것도 궁극적으로 믿음 위에 서있기 때문이다. 어떤 공동체 안에서 '공리'로 통하는 것도 밖으로 나오면 증명해야 할 '명제'가 된다. 대중과 소통하려면 밖에서는 자신의 '공리'를 '명제'의 지위로 내려놓고, 믿음(이념)과 이성(논리) 사이의 최적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14 오컴의 면도날 ­ 진리는 단순하다

오컴의 면도날은 아직까지도 과학의 여러 영역에서 발견술적(heuristic) 원리로 널리 사용된다. 이론은 간단할수록 아름답다. 하지만 미가 반드시 진을 함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컴의 면도날을 통해 생산적 결과를 얻을 경우가 종종 있다고는 할 수 있을 게다. 


15 고르기아스와 소크라테스 ­ 수사와 진리의 싸움


오늘날 '수사학'이라고 하면 거의 경멸어로 여겨지나, 고대에 수사학은 자유시민이 갖추어야 할 교양의 하나였다. 정치를 통해서 인격이 완성된다고 믿는 사회에서 수사학은 심지어 인문교양이었다. 당시엔 법정에서도 이해당사자가 배심원들 앞에서 직접 말로 승부를 가렸기에, 공적 생활만이 아니라 사적인 영역을 위해서도 수사학은 매우 중요했다. 두 극단이 존재한다. 하나는 설득력 없는 '에피스테메', 다른 하나는 진정성이 없는 '레토릭'이다. 진리가 운전대라면, 레토릭은 동력원이라 할 수 있다. 수사학은 감정의 선을 건드리기 위해 약간의 과정과 왜곡을 허용한다.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에거 약간 벗어나는 것도 허용된다. 


16 수사학의 전쟁­ 보수와 진보의 수사학


앨버트 허시먼은 보수주의 수사학을 대체할 두 가지 대안적 자세를 제안한다. 하나는 '행동하는 것과 행동하지 않는 것 모두에 위험이 있으니, 양쪽의 위험을 정확히 검토하고 평가하고 대비하자'는 것이다. 둘째는 '보수든, 진보든, 그들이 말하는 최악의 사태라는 것이 항상 확실히 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5부 정체성


17 그분이 나를 부른다 ­ 호명이라는 강박

18 위대한 계시 ­ 성녀와 마녀 사이에서

19 전향의 정치학 ­ 디지털 시대의 볼셰비키들

20 부역자 ­ 어설픈 이념의 낙인

21 공약의 부담 ­ 말에 따르는 책임

6부 익숙한 낯섦

22 시적 순간 ­ 낯설게 하기


러시아의 형식주의자 빅토르 시클롭스키는 이른바 '낯설게 하기'를 일상 언어와 구별되는 시적 언어의 특성으로 꼽은 바 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시어는 정보를 전달하는 데에 사용되는 일상의 언어와는 다르다. 시는 우리의 일상 언어를 낯선 방식으로 사용한다. 시가 언어를 낯설게 만드는 것은 이른바 일상 언어의 '자동화'를 파기하기 위해서다. 일상의 소통에서 언어 자체는 투명해진다. 그때 우리는 언어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고 그 안에 실린 정보에만 주목하게 된다. 일상 언어를 통한 소통은 이렇게 '자동화'되어 있다. 


초현실주의에서 '낯설게 하기' 기법은 '데페이즈망'이라 불린다. 데페이즈망은 '하나의 사물을 그것이 속하는 익숙한 환경에서 떼어내어 낯선 곳에 집어넣는 것'을 말한다. 초현실주의의 데페이즈망은 일상 속에서 '경이'의 효과를 만들어낸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낯설게 하기'를 언어의 효과로 이해했다면, 초현실주의자들은 '낯설게 하기'를 무엇보다 사물의 효과로 이해했다. 


23 십자가에 못 박힌 욕망 ­ 삶의 충동과 죽음의 충동

24 총을 든 베르세르커 ­ 질주하는 광기

25 냉장고 속의 독재자 ­ 정치로서 사체 공시

7부 미의 정치성

26 미적 자본 ­ 아름다움 앞에서 법률은 효력을 잃는다

27 거울과 선풍기 ­ 거울의 영원함을 위하여

29 메스를 든 피디아스 ­ 개성적 아름다움의 파괴

29 신체는 전쟁터 ­ 미용성형의 정치학

8부 존재에서 생성으로

30 발롯 체험 ­ 기관 없는 신체의 창조적 역행

31 냄새 나는 그림 ­ 후각적 공감각에 관하여

32 감각의 히스테리 ­ 말미잘의 촉수처럼 민감한

33 얼굴은 풍경이다 ­ 고흐의 자화상

9부 예술의 진리

34 견자의 편지 ­ 선포로서의 진리

하이데거에 따르면 진리는 '명제진리'와 '사태진리'로 구별된다. '명제진리'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인식론적 진리, 즉 참인 명제가 갖는 속성으로서 진리다. '사태진리'는 그와는 차원이 달라서 가령 예수의 진리처럼 논증이나 증명 없이 선포된다. 선포로서 진리는 존재론적 진리다. 근원적인 것은 이 사태진리이고, 명제진리는 거기에서 파생된 것에 불과하다. 


35 그리드 ­ 우주의 자궁

36 파편의 미학 ­ 터치(touch)는 감동(touch)이다

37 아레스토 모멘툼! ­ 순간아, 멈추어라

38 차이와 반복 ­ 반복가능성에 관하여

39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 비독서의 미덕

10부 디지털 테크놀로지

40 실물 크기의 지도 ­ 지도와 제국주의

41 디지털의 바틀비 ­ 컴퓨터 그래픽의 정치학

42 기술적 영상 ­ 문자와 숫자로 그린 그림들


43 기계와 생명 ­ 칸딘스키와 유사생명


구축주의자들은 예술은 실요적 대상이 되어 대중의 행복에 기여해야 한다고 믿었다. 반면 표현주의자들은 예술은 인간의 물질적 욕구가 아니라 정신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활동이라 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