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머리에
아나키즘의 어원이 되는 단어인 그리스어 아나르코스(anarchos)는 '지도자가 없는', '선장이 없는 배의 선원들'을 뜻했다. 이것은 흔히 생각되듯이 무질서를 의미하지 않는다. 지도자나 선장이 없다는 없음의 실재보다 누구라도 지도자나 선장이 될 수 있다는 있음의 여백이 바로 아나키의 질서이다. 고정된 질서를 억지로 강요하면 곧바로 생명을 잃어버리는 순수한 혼돈, 그것이 곧 아나키즘이다.
등장배경과 지은이
아나키스트들은 역사가 특정한 발전법칙에 따라 실현된다는 생각(역사적 유물론)을 거부했다. 역사가 예정되어 있다는 법칙도 인정하지 않았고, '객관적인' 조건들이 성숙해야 사회가 변한다는 주장도 거부했다. 아나키스트들은 새로운 사회란 미리 마련된 어떤 청사진이 아니라 그런 사회를 추구하는 운동에 참여한 대중의 집단적 활력을 통해 건설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나키스트들도 자기 나름의 조직과 공동체를 구성해 기존 체제와 싸웠다. 따라서 단순히 조직을 갖고 있는가 아닌가로 아나키즘과 맑스주의를 구분할 수는 없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그 조직이 권위주의를 내포하고 있는가 아닌가이다. 아나키스트들이 보기에 권위주의적 위계구조를 지닌 조직은 규모가 커질수록 아래로부터의 통제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아나키스트들은 (제 아무리 탁월한 지성과 능력을 갖췄더라도) 특정 엘리트 집단이 전체 운동을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했고, 의사결정이 중앙에 집중되는 조직을 반대했다. 아나키스트들은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방식이 그 사회의 미래를 결정하게 된다고 믿었다. 즉 인민들을 배제한 혁명은 그 후에도 여전히 인민들을 배제하리라는 것이다. 기성의 권위를 또 다른 권위에 빗대어 부정하지 말 것, 정치권력을 형성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것, 대중이 스스로 결정하고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 것, 간단히 말해서 대중의 '직접행동'으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것, 이것이 바로 아나키스트들의 주장이었다.
파리쿄뮨은 크로포트킨의 핵심사상 중 하나가 될 주장, "모든 사회혁명이 반드시 갖춰야 할 형태는 독립된 쿄뮨이다"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사례가 됐다. 실제로 파리쿄뮨에서는 각 지구에서 선거로 선출된, 정치적 책임을 지고 소환될 수 있는 대의원들이 입법과 행정을 담담앴다. 게다가 파리쿄뮨은 경찰과 군대를 폐지한 뒤 선출된 장교들와 평범한 시민들에게 그 의무를 맡겼다. 그런데도 단 한 건의 범죄조차 발생하지 않았다. 요컨대 파리쿄뮨은 평범한 인민들이 자신들의 일상을 스스로 관리할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만천하에 입증했다.
프루동과 맑스의 대립은 주로 소유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인간노동이 왜곡되고 소외되는 원인을 사적소유에서 찾은 맑스는 계급투쟁과 혁명으로 생산관계를 변화시켜 소유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달리 법률적인 측면에서 소유권을 비판한 프루동은 소유를 축적이 불가능한 점유로 대체하고 협동조합의 건설과 이를 지원할 인민은행을 창립해 자본주의 사회를 변화시키려 했다. 요컨대 프루동의 관심은 노동의 상호성을 담보할 수 있는 사회체계를 구상해 농민과 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개선하도록 지원하는 데 있었다.
바쿠닌과 맑스는 그 기질만큼이나 이론적인 입장에서도 큰 차이를 드러냈다. 가장 큰 차이는 정치참여와 국가의 폐지에 관한 것이었다. 맑스는 노동자들의 정치투쟁을 위한 정당을 건설해야 하고, 이 노동자들의 정당은 국가의 폐지를 위해서 국가 주도의 정치(가령 보통선거)에 참여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바쿠닌은 기존의 정치란 지배를 유지하는 기만적인 술책일 뿐이기에 정치참여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 어떤 정치조직도 한 계급의 이익을 위해 나머지 대중을 지배하려는 조직이 될 수밖에 없으므로,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몰락한 지식인, 품펜프롤레타리아트, 농민 등)이 대중반란을 일으켜 국가를 즉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바쿠닌은 맑스가 주장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경계했다. 맑스에게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기존의 국가가 파괴되고 새로운 국가가 세워질 때까지의 과도기에 혁명의 오나수를 이끌 장치였다. 그러나 바쿠닌은 권력을 잡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억압하고 착취하는 계급이 되어 또 하나의 지배계급으로 등장할 위험을 주시했다.
『상호부조론』의 내용
크로포트킨은 자연계 일반의 상호부조보다는 상호부조가 인간의 진화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증명하려 했다. 크로포트킨이 주장한 상호부조는 단순히 사랑이나 동정심 같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성이라는 연대의식을 뜻한다. 크로포트킨은 생존경쟁이 없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생존경쟁 이외에도 상호보조라는 원리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당대에 미친 영향
『상호부조론』의 유산
여파
한국의 아나키즘 수용
아나키즘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유입된 것은 20세기 초로서 일본의 한국인 유학생이나 한국에 있던 일본인 사회주의자를 통해서였다. 아나키즘을 가장 먼저 수입한 곳도, 맨 처음 '무정부주의'로 번역한 것도 일본이다. 그러나 그렇게 번역한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1882년 니시카와 츠테츠가 <허무당사정>에서 '무정부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고 보는 이도 있고, 1902년 게무라야마센타로 <근세무정부주의>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보는 이도 있다. 무정부주의라는 번역어는 언뜻 타당해 보이나 아나키즘이 거부했던 정치혁명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잘못된 번역이다.
한국의 아나키즘운동은 3·1운동의 좌절 이후 본격화됐다. 3·1운동의 실패는 사회변혁의 전술로서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을 높였는데, 재일 유학생들은 그 일환으로 아나키즘운동에 주목했던 것이다.
결론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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