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배움

[기록한다는 것], 오향녕, 너머학교, 2010, (140912).

바람과 술 2014. 9. 12. 08:07

기획자의 말


떠든 아이 효과를 아나요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다


문자를 사용하지 마라


사관들이 생각했던 역사란 무엇이었는지 살펴볼까요? <맹자>에는 공자가 <춘추>를 편찬했던 의도를 서술하는 대목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세상살이의 질서와 원칙이 쇠퇴하면서, 거짓된 마로가 몹쓸 핼동이 생겨났다. 신하가 임금을, 자식이 아비를 시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공자가 걱장되더 <춘추>를 지었는데 … <춘추>가 완성되자 난신·적자들이 벌벌 떨었다." 당장 눈길을 끄는 것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들로 하여금 두려움에 떨게 한다는 말, 즉 역사를 남기는 목적에 대한 맹자의 주장입니다. 왜 맹자는 역사를 통해 두려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가했을까요? 기억하기 위해 기록을 남기는 태도는고대 서양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원전 5세기에 있었던 페르시아 전쟁에 대한 기록을 <역사>라는 저술로 남겨 , 키케로로부터 '역사의 아버지'란 말을 들었던 헤로도토스는 '그리스인들과 이방인들이 어떠한 원인에서 전쟁을 하게 되었는가 하는 사정을 세상 사람들이 모를까 우려하여 내가 직접 연구, 조사하여 기록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의식은 투키디데스의 <펠레폰네소스 전쟁사>로 이어졌습니다. 


춘추시대에 살았던 노자는 토지를 넓히고 인구를 늘리는 정책에 반대했습니다. 나라가 커지면 제도나 법률이 복잡해지고 그것이 사람들의 삶을 억누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단군신화는 신화시대의 끝자락을 보여 줍니다. 곰, 즉 웅녀는 나중에 환웅의 아내가 되어 단군을 낳았습니다. 신화는 국가와 왕의 탄생이라는 역사적 조건 속에서 더 이상 지혜의 역할을 잃어버립니다. 인간과 자연(또는 동물, 곰)의 위계, 그리고 인간사회 내의 위계(계급)가 발생하는 것이지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류의 역사는 야만에서 문명으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화의 상실과 함께 문명에서 야만이 되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역사에서 과거와 미래를 보다


사람들이 말이든 문자를 통해서 기억을 전하고, 그것을 역사라고 부르기 시작했을 때, 거기에는 크게 세 가지 효용이 있었을 겁니다. 첫째는 과거의 경험이 주는 재미가 그것입니다. 둘째는, 그런 재미보다는 조금 진지한데, 과거의 경험에서 뭔가 교훈을 발견하는 경우입니다. 셋째, 사람들은 역사를 통해서 살펴보면서 어떤 일이 이렇게 진행된 이유, 인과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자 합니다. 물론 원인과 결과에는 필연적인 요소도 끼어들고, 우연적인 요소도 끼어들겠지요. 


중국에서 가장 많은 서적을 모아 놓은 <사고전서>는 청나라 건륭 38년(1773)에 착수하여 건륭 47년(1782)에 완성되었습니다. 모두 7부를 만들어 7곳의 도서관에 보관했는데, 그중 하나인 문진각에 보관된 수량이 3,503종 7만 9,337권이었습니다. 저술을 경/사/자/집 4부로 나누었고, 역사 부문에는 15하위분류를 두었습니다. 거기에 실린 '역사'의 종류를 볼까요? ○ 정사: <고려사>나 <삼국사기>처럼 왕조 단위로 편찬되는 역사 ○ 편년 : 실록처럼 연대기로 편찬하는 역사 ○ 기사본말이나 기타 방식으로 편찬하는 역사 ○ 황제의 포고한 법령이나 정책에 대한 의견 ○ 사람들의 족보나 전기 ○ 지난 역사의 초록 ○ 지리서 ○ 관직 제도 ○ 인사 및 법률 문서 ○ 도서 목록 ○ 역사 평론. 여기에 분류되지 않았지만, 호적이나 군적 같은 인구 동향 기록, 전세 등의 재정 기록도 '사'의 범주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도대체 '사'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게 뭐냐고 물어야 할 정도로 범주가 넓었습니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변화하는' 사람들의 활동이나 생활 방식이 '사'의 범주였다고 보면 큰 오류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조선이든 중국이든, 역사는 '후세에 잘 전달하되, 마음대로 지어내지 않는다.'는 전통이 강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의 역사를 연대기별로 편찬해 놓은 848권에 달하는 거대한 역사서입니다. 번역을 하고 200자 원고지로 계산해 보니, 63빌딩 높이의 세 배나 되는 분량이었다고 합니다. 그 실록을 편찬하는 데 들어가는 자료의 종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 사관들이 직접 작성하는 사초 등의 기록 ○ 승정원(국왕 비서실)의 일기 ○ 서울과 지방 겸임 사관들이 작성하는 기록 ○ 비변사(국방과 행정을 맡은 관청) 장계 ○ 형사 사건 문서 ○ 황제와 국왕문서 ○ 이름 있는 신하들이 죽었을 때 적어 두는 간략한 기록 ○ 지진, 홍수 등 재해 기록 ○ 사헌부(관찰기관) 등의 정책 비판 및 관리 감찰 기록 ○ 중요한 상소문 ○ 관리 임명 기록 ○ 과거 합격자 명단 ○ 나라의 제사나 장례 등의 의례 ○ 시비 논쟁이 벌어진 사안.


3천 년 전의 갑골문은 현재 7% 정도밖에 해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무슨 뜻인지 전혀 확인되지 않습니다. 1980년대에 미국 동력자원부가 주관하고 인접 학문 학자 및 실무자들로 구성된 프로젝트 팀이 만드러졌습니다. 방사능 폐기물 매립지역에 대한 정보를 1만 년 뒤의 후손들에게 어떻게 전달해 줄 것인지를 연구하여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서지요. 여기서 1만 년은 방사성 동위원소의 위험이 인류 생존에 적정할 만큼 줄어드는 데 걸리는 기간입니다. 그런데 이 기간 정도가 지나면 사람들의 언어와 상징 체계가 변할 것이므로, 그것을 감안하여 1만 년 뒤에도 후손들이 그 매립지를 알아보고 피해를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자료는 매립지 자체의 위치와, 매립지가 아닌 다른 곳에 보관될 기록에 있는 정보가 될 것입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그 기록들을 1만 년 뒤에 읽을 수 있게 하여 만약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는 것입니다.  


자라나는 나, 품격 있는 사회


10년 뒤, 20년 뒤의 나에게 편지를 써 보세요


역사 개념 작은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