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류학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 나카자와 신이치, 김옥희, 동아시아, 2004, (150228).

바람과 술 2015. 2. 28. 22:33

- 머리말 : 카이에 소바주Cahier Sauvage에 대해서 

경제학은 교환을 토대로 하고 있는데, 교환은 증여의 내부로부터 증여를 물어뜯고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튀어나온 후에도, 교환은 증여와 밀접한 관계를 그대로 유지할 뿐만 아니라, 증여의 원리 없이는 존속조차 불가능하게 된다. 


- 서장 : 전체성을 가진 운동으로서의 '사랑'과 '경제' 

경제 현상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인간의 욕망입니다. 이 욕망이라는 것은 인간의 마음 내면에서 발생하는데, 인간의 마음은 심오하고 어두운 생명의 움직임과 논리적인 기능을 갖춘 '말'이 서로 만나는 장소의 역할을 합니다. 욕망은 그런 마음의 작용 중에서도 생명의 움직임에 가장 밀접해 있는 깊은 층에서 활동하는 것이어서, 그것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거나 조작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가 오늘날 생활의 합리성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경제현상의 특성으로 보이는 합리성은 표면에 나타난 가식적인 표정에 불과합니다. 경제는 표면에 가장 가까운 층은 합리성에 의해 포장되어 있지만, 그 뿌리는 어두운 생명의 움직임에까지 연결되어 있는 일종의 '전체성'을 갖춘 현상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전체성 안의 심층 부분에서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과 융합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도 욕망의 움직임을 통해서 우리들의 세계에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품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교환의 원리이지만, 이 교환의 원리는 마치 살을 맞대고 있듯이 증여의 원리와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증여의 극한에는 신의 영역에 속하는 순수증여의 원리가 나타나게 됩니다. 증여의 원리는 교환이 이루어질 때의 무의식처럼 끊임없이 교환의 체계를 따라다니고, 증여를 둘러싼 사고는 곧바로 순수증여를 둘러싼 종교적 사고를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탄생시키게 됩니다. 


제1장 교환과 증여


증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감정적, 인격적 관계를 맺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이 증여가 아마도 커뮤니케이션 형태로서의 경제의 가장 원초적인 단계를 형성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교환은 이 증여라는 기초 위에 입각해서 증여를 부정하거나, 다른 조직으로 다시 만들거나 함으로 해서 발생합니다. 따라서 교환의 발생은 증여의 뒤를 이어, 증여를 토대로 해서 이루어집니다. 교환에서는 증여에 비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움직이는 '물'의 이동 속도가 빠릅니다. 그리고 증여에서는 불확정성을 내포한 채 진행되던 것이, 교환에서는 계산하거나 비교하는 행위가 자연스럽게, 그리고 확정적으로 행해지게 됩니다. 순수증여는 교환이나 증여와는 이질적인 단계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확히 표현하면, 교환이나 증여와 같은 '체제=시스템'을 만들지 않습니다. 실제 '물'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어도, 그리고 인간 행동의 표면을 관찰하고 있어도 '순수증여'의 실체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림없이 실재하며, 경제라는 전체성 전부를 움직이고 있는 힘입니다. 직접 관찰할 수는 없지만, 증여는 물론이고 증여로부터 발달한 교환도 이 순수증여가 중개 역할을 하지 않으면 꼼짝도 할 수 없는 것이므로, 이것은 '신'이라는 단어가 나타내고자 하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교환과 증여는 '물'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동해 간다는 점에서 보면 매우 비슷하지만, 목적하는 바는 정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증여는 오랜 시간적인 간격을 두더라도 답례(반대급부)를 받고자 합니다. 게다가 그 답례는 등가교환이 아니므로, 동일한 가치가 돌아오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옛날에는 증여를 중심으로 사회가조직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어떤 '물'에나 인격의 일부가 부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인격을 분리시켜서 단순한 '물'로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궁리가 필요했습니다.


증여는 교환의 모체이기도 합니다. 교환의 원리로부터 증여가 발생할 수는 없지만, 증여의 원리의 내부에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계기로 해서, 증여와는 이질적인 교환의 원리가 그 내부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증여의 모든 국면을 통해 불확정적인 것이 움직이는 게 보입니다. 증여의 모든 국면을 통해 불확정적인 것이 움직이는 게 보입니다. 증여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은 선물로 주어지는 '물'이 아니라, '물'이 이동을 매개로 해서 동일한 방향으로 이동해 가는 유동적이고 연속성을 가진 어떤 힘의 움직임입니다. 그 '어떤 힘'을 표현하기 위해서 종종 '신뢰'나 '우정', '애정', '위신'과 같은 단어가 사용됩니다. 


증여에서는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옮겨 다니는 '물'에 어떤 형태로든 인격성이 배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증여와 교환이 병존하는 사회에서 상품이 시장으로 들어갈 때는 미리 '물'에 부착되어 있는 인격성을 제거하고, 단순한 '물'이 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제2장 순수증여를 하는 신神 

제3장 증식의 비밀 

제4장 숨겨진 금에서 성배聖杯로 

증여와 교환은 사회에 유동을 발생시킵니다. 증여도 교환도 부의 이동이 둔해져 사회가 정체 상태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동일한 유동체라 하더라도 증여 중심 사회의 사람들이 인식한 영혼과, 화폐의 토대가 되는 금속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순수증여를 하는 힘, 혹은 영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그 힘은 사회나 지의 '밖'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력이 가져다준 선물을 '물'로서 사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올 수는 있어도, 부나 풍요로움의 원천이 사회나 지의 내부로 들어오는 경우는 절대로 없습니다. 그것은 언제까지나 '밖'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데 화폐의 형태로 변형된 부는 부를 낳는 원천을 그대로 고스란히 사회 내부로 가지고 들어갑니다. 그때까지 부의 원천은 자연이나 신의 소유로서 사회의 '밖'에 있었는데, 화폐는 그것을 사회 내부로 들여와서 모든 것을 '인간화'해 버리는 능력을 가집니다. 


제5장 최후의 코르누코피아 

제6장 마르크스의 열락悅樂 

제7장 성령과 자본 

- 종장 : 황폐한 나라로부터의 탈출 

- 역자후기 : 사랑이 깃든 경제의 시대를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