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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시민 만들기 : 자발결사체 참여 경험을 중심으로 - 이승훈

바람과 술 2017. 10. 24. 15:55

1. 들어가는 말


토크빌 이후 '민주주의에서 자발결사체의 중요성'이라는 주제는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토크빌의 전통을 잇는 많은 학자들은 사적인 개인이 자발결사체에 참여함으로써 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공공의식을 가진 시민으로서 정체성을 갖게 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자발결사체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에서 자발결사체의 비율도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자발결사체의 비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연 우리 사회의 자발결사체들이 공공의 시민을 키우는 학교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여부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글에서 밝히고자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사적인 개인들이 자발결사체 참여를 통하여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가이다. 둘째는 한국의 자발결사체가 시민을 키우는 학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 여부를 밝혀 보고자 한다. 


2. '시민 됨'의 조건


시민으로서 요구되는 자질은 사적 개인에게 기대하는 자질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첫째, 개인적인 문제를 사회적 차원과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둘째, '공공성'이라고 할 수 있다. '공공성'이란 매우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개념이다. 가장 기본적인 의미로 '공정성' 또는 '불편부당함'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사적 이해관계나 친밀한 관계를 초월하거나 또는 상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공공선과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시민참여 활동'이다.


3. 자발결사체 참여 경험


자발결사체는 어떻게 사적인 개인을 공공의 시민으로 만드는가? 기존의 이론적 논의를 참고할 때, 첫째는 구성원들 간의 상호교섭의 증대이고, 둘째는 교육을 통한 학습과정, 셋째는 시위나 캠페인 등 다양한 시민참여의 경험이다. 자발결사체가 시민을 키우는 학교로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 경험 모두를 균형 있게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자발결사체 참여를 통해서 가장 먼저 경험하게 되는 것은 구성언 상호간 교섭의 증대이다. 구성원들 사이의 상호교섭의 증대는 크게 두 가지 결과를 야기한다. 하나는 '집단 응집력'의 형성이고, 다른 하나는 '공동체의 확장'이다. 상호교섭 증대로 인한 자발결사체 내의 친밀성은 조직의 유지와 구성원들의 참여동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신뢰와 호혜성의 규범이 집단 내로 국한됨으로써 '시민 됨'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반대로 집단 외부로까지 확장되어 보편적 규범을 형성함으로써 긍정적인 시민 미덕을 형성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조건에서 구성원들의 친밀성이 집단 내부에 국한되지 않고 외부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구성원 간의 친밀성 증대로 인한 집단 응집력이 집단의 목표 수행을 향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달려 있다. 다시 말하면 집단응집력이 사사로운 친밀성의 감정이 아니라 공공의 관심과 목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발결사체에서 학습이란 공식교육을 통해서 사실이나 정보를 얻게 되는 것뿐 아니라 공식/비공식의 토론에 참여함으로써 얻게 되는 교육의 기회를 포함하는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자발결사체 참여는 곧 공론장 참여의 기회를 얻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공론장 참여는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첫째는 자신의 주장과 목소리를 드러내는 것이고, 둘째는 다른 사람들의 주장과 행위를 보고 들으면서 자신을 상대화하고 성찰할 수 있는 '확장된 심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자발결사체에서 배우게 되는 것이 강연이나 자료 등을 통한 정보 습득에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회의를 진행하거나 자료를 만들고 또 토론에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서 얻어지는 '시민기술' 역시 자발결사체 참여를 통하여 배우게 되는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시민기술은 자신과 주변의 문제를 사사로운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공적인 수단을 통하여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도록 한다. 집단의사결정에 관한 한 실험에 따르면, 강연이나 정보 제공보다는 토론 형태를 통한 교육이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에 가장 크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고립된 개인은 문제의 원인을 사회적 차원에서 찾기보다는 자기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 개인이 어떤 네트워크에 잘 연결되어 있는 경우에는 자신이 겪는 문제의 원인을 사회에서 찾게 하고, 더 나아가 공동 대응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한다는 것이다. 사회운동 이론에서는 이것을 '미시동원맥락'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미시동원맥락'이란 "사회운동에 대한 참여가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개인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이고 집단 상황에서 문제의식과 의미가 공유되고, 사회-정서적 유대가 형성되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자발결사체 참여는 세 가지 방식으로 시민의 참여를 촉진한다. 첫째, 문제상황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원인을 찾기 쉽게 한다. 둘째, 초보적인 형태의 사회운동 조직이 형성된다. 셋째, 자발결사체 참여를 통해 '연대감의 유인 구조'라는 것이 형성된다. 


시민참여의 경험은 개인들의 '드러냄의 요구'를 충족시키며, 이것은 더 나아가 지속적인 시민참여의 동인으로 작용한다. 공공활동 참여를 통해서 새롭게 자신을 발견하고, 남들로부터 긍정적인 시선을 받고 있다는 만족감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만족감으로 인해 시민으로서의 공공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민참여를 통해서 얻게 되는 또 하나으 결과는 시민으로서의 자신감과 역량을 확인하게 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개인이 공공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주저하게 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신의 문제를 공적인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이며, 둘째는 "나 하나가 참여한다고 뭐가 달라질까?"하는 무력감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서건 일단 공공활동에 참여하게 되면, 이 두 가지 장애요인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4. 나가는 말


공공성의 부재로 특징지어지는 한국의 시민문화 속에서 어떻게 공공의 시민을 키워 낼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현재 우리 시민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