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빈곤

[부러진 사다리], 키스 페인, 이영아, 와이즈베리, 2017, (180824).

바람과 술 2018. 8. 25. 15:37

들어가는 글 


분석 결과, 일등석이 있는 비행기의 기내 난동 발생률이 그렇지 않은 비행기보다 4배 정도 더 높았다. 비행 지연 등의 다른 요인들도 중요하게 작용했지만, 일등석의 존재는 9.5시간 지연과 같은 영향을 미쳤다. 15% 정도의 비행기는 중간이나 뒤쪽으로 승객을 태우는데 이 경우에는 기내 난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2배 정도 더 높았고, 이는 6시간 비행 지연과 같은 결과였다. 기내 난동 연구는 불평등이 부자와 빈자를 서로 이간질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하지만 더 주목할 만한 점은, 비행기에 진정한 의미의 빈자가 없는데도 난동이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이코노미석의 평균 가격도 수백 달러는 되기 때문에 정말 가난하다면 표를 사기 어렵다. 하지만 이코노미석에 탄 버젓한 중산층 사이에서도 상대적 차이가 갈등과 혼돈을 불러일으킨다. 불평등은 항상 체계적이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우리의 행동과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소득 불평등뿐만 아니라 이념적·인종적 불평등도 우리를 분열시켜 서로를 불신케 만들며, 스트레스를 유발하여 건강과 행복을 해친다. 


불평등과 가난이 동의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주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1장. 무상 급식으로 펼쳐진 지위의 사다리
-왜 상대적 빈곤은 실제 가난만큼 상처가 되는가

2장. 상대적 비교
-왜 우리는 비교를 멈출 수 없는가

3장. 가난이 인격의 결함 때문이라고?
-불평등은 나름의 논리를 갖고 있다

1991년 심리학자 제이 벨스키와 동료들은 '빠른 전략-느린 전략' 이론에 근거하여, 힘들고 스트레스가 많으면 혼란스러운 환경에서 자란 여성들이 아이를 더 일찍 낳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몇 년 후, 심리학자 마고 윌슨과 마틴 데일리가 시카고 각 지역에 사는 여성들의 평균 조산 연령을 조사했다. 가난한 지역의 여성들이 더 일찍 첫 아이를 낳았다. 벨스키는 더 이른 출산 연령을 예측한 것에서 나아가, 불행하게 자란 여성들이 더 빨리 더 많은 아이를 낳는 '전략'을 취하는 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는 환경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 즈음에는 불안정하고 가난하고 혼란스러운 가정에서 자란 소녀들이 좀 더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란 소녀들보다 더 먾저 사춘기에 이른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잠깐 느끼는 가난으로도 사람들은 근시안이 되어버릴 수 있다. 빈곤과 풍족함에 대한 주관적인 느낌은 강한 위력을 지니며, 보통은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에 근거한다. 심리학자 미치 캘런과 동료들은 이 두 가지 사실을 종합하여, 사람들이 빈곤감을 느끼면 근시안이 되어 지금 당장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을 취하고 미래를 무시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반면 지금 잘살고 있다고 느껴지면 미래까지 내다보게 된다. 


4장. 우파와 좌파, 그리고 사다리 

-불평등이 우리의 정치 성향을 가른다

5장. 수명과 묘비 크기의 상관관계
-불평등은 생과 사의 문제다

6장. 신, 음모, 그리고 천사들의 언어
-왜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가

7장. 흑과 백의 불평등
-인종차별과 소득 불평등의 위험한 역학 관계

8장. 일터에서의 사다리
-왜 공정한 급여가 공명정대한 경쟁을 암시하는가

9장. 수직 사회에서 사는 기술
-평평한 사다리, 현명한 비교, 가장 중요한 가치


불평등의 원인이 개인의 문제적 행동이냐 아니면 시스템적 요인이냐 하는 논쟁은 요점을 놓치고 있다. 불평등은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행동의 차이는 불평등을 더 심화시킨다. 빈곤층의 삶을 연구한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자멸적인 행동 간의 이런 악순환을 인지했지만, 해결책을 제안할 때에는 보수나 진보의 입장에서 편파적인 주장을 해온 것 같다. 


보수주의자들은 개인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하층 계급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도록 의욕을 북돋아줄 수 있는 장려책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빈곤층은 좀 더 즉각적이고 실질적인 유인책에 반응한다. 하루하루가 위기인 그들에게는 단기적인 해결책이 가장 잘 먹힌다. 진보주의자들은 소득 불평등과 빈곤의 대물림 같은 시스템적 요인의 주요성을 인지하면서도, 개인의 결정이 운명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환경과 사회의 구조적인 탓이 있다는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시스템에 초점을 맞춘 추상적인 설명이 좀 더 설득력을 가지려면 개인들이 일상적으로 내리는 구체적인 결정에 시스템의 영향이 반영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빈곤층을 악순환에 빠지게 하는 바로 그 힘이 부유층에게는 선순환을 일으킨다. 최근까지 사람들은 오로지 물질적 결핍 때문에 빈곤의 악순환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적 빈곤과 불평등 역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구분 짓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불평등의 악순환과 그에 반응하는 우리의 행동에 관한 연구 결과를 보면, 우리가 동시에 추진해야 할 두 가지 해결 방안이 있다. 첫째는 사회적 맥락으로서, 더 평평한 사다리를 구축하는 것이고, 둘째, 사다리의 층계 사이에서 사는 데 능숙해지는 것이다. 분명, 사다리를 축소하면, 즉 불평등을 줄이면 많은 문제들을 즉각적이고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우리가 직면하는 사회 문제에는 각 분야마다 특징적인 면들이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문제들에 극심한 불평등이라는 공통분모가 끼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 직접적으로 맞서지 않으면 안 된다.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불평등을 줄인다는 것은 사회적 사다리의 아래층을 올리고 위층을 내린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