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

[일본 뒤집기], 호사카 유지, 북스코리아, 2019, (200325).

바람과 술 2020. 3. 25. 04:34

여는 글 · 숲은 멀리 나가야 전체가 보인다 ㆍ

일본 들여다보기

바람직한 한일 관계는 가능한가? ㆍ

7세기에 한반도 3국 중 하나였던 백제가 망해 많은 백제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갔을 때까지, 100만 명에서 200만 명에 달하는 한반도 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기원전 4세기에 일본 선주민의 인구가 약 7만 명으로 추정되므로 고대 일본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이와 시대가 개막한 일본, 그리고 한국 ㆍ

한국이 WTO에서 승소해도 인정하지 않는 일본 ㆍ

아베 총리의 후계자는 누구? ㆍ

트럼프 대통령을 환대한 아베 총리의 오산 ㆍ

자민당의 지지율을 떨어뜨리는 사건들 ㆍ

일본의 보복 조치는 박근혜 정권 때부터 계획되었다 ㆍ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어떻게 볼 것인가? ㆍ

한국도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했다 ㆍ

일본의 한반도 정책과 한일 관계 악화 요인 ㆍ

1993년 자민당의 패배와 정권 교체, 그리고 비자민당 정권 성립을 계기로 해서 '보수 본류'가 아닌 '보수 비주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보수 우익의 색채를 강하게 내지 않으면 다시 집권할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극우적 운동을 시작한다. 


‘손자병법’의 나라, 일본을 연구해라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ㆍ

적을 연구해라! ㆍ

메이지 시대에도 일본에도 자유민권운동이 있었고, 1905년 이후 1920년대까지는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대라는 민주적인 시대가 있었다. 그때도 지식인들은 절대적인 일왕제에 반대하여 일왕의 권리를 축소하고 민권을 신장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일본의 국가주의화를 막을 수 없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전쟁의 영향이었다. 


2001년 9월에 일어난 미국 테러 사건은 일본 정부에 해외 파병의 좋은 구실을 제공했다. 


'아시아 문제 연구소' 등 일본의 여러 연구소가 아시아에 대한 정보 수집의 선봉이라는 것은 일본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아시아 문제 연구소'의 자료 수집 담당을 맡았던 사람들은 한일기본조약이 맺어졌던 1965년 이후로 공공연히 한국을 드나들면서 현지를 실사하고 수많은 서적을 구해 갔으며, 인맥을 만들어놓고 그 인맥들을 통해 정보를 빼내갔다. 과거로부터 수집해 왔던 실질적인 자료를 중심으로 연구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한국의 IMF 때에도 이 연구소가 한국보다도 먼저 연구 자료를 내놓았었다. 


적이 나를 알면 적은 나를 닮아간다 ㆍ

적을 속여라! ㆍ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일본 여자배구가 금메달을 획득했다. 또한 1978년 뮌헨 올림픽에서는 일본 남자배구가 금메달을 획득했다. 당시 소련이라든가 동독 등 강호와 비교하면 하잘것없었던 일본이 세계의 배구계를 제패했다는 뉴스는 일본이 러일전쟁에 이겼을 때만큼이나 세계의 화제가 되었다. 일본의 올림픽 배구에서 승리한 것이야말로 적의 의표를 찌른 각종 신공격기술을 일본 팀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결과였다. 도쿄 올림픽 여자배구 팀은 '시간차 공격'이라는 트릭 공격을 처음으로 세계인들 앞에 내놓았다. 뮌헨 올림픽에서 남자배구 팀은 시간차 공격만이 아니고 '한 사람 시간 차', 'A퀵, B퀵, C퀵' 등, 역시 적의 눈을 속이는 전혀 새로운 공격법을 만들었다. 


적을 이기는 것이 최고의 선이다 ㆍ

싸우지 않고 이긴다, 일제의 결혼정책 ㆍ

픽션 창조로 역사를 만든다 ㆍ

조선 총독이 공개적으로 수사노오가 한국의 신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일제는 수사노오가 한국의 시조신이라고 학교교육이라든가 기타 교육기관을 통해 강조하며 선전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민간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한국의 시조인 단군이 실은 수사노오였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일본에 이상주의는 없다 ㆍ

하늘이 준 시기를 놓치지 마라 ㆍ

일본의 극미(克美)와 한국의 극일(克日) ㆍ

황국사상의 숨은 얼굴

고대로부터 시작된 한반도 경시 사상 ㆍ

평화 철학이 없는 국가신도(國家神道) ㆍ

일본의 메이지 정부는 사실상의 국교로서 '국가신도'를 설립했다. 신도에서는 무엇이라도 믿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신으로 모실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신도는 원초적인 종교이다. 그 신도 중에서도 '국가 신도'는 <기기>에 등장하는 일본인의 조상신인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를 신봉하고, 그 직계 자손이라고 일컬어지는 일왕을 신으로 숭배하고 종교이다. 그리고 '국가신도'는 일본 신의 직계 자손인 일왕이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1889년 제정된 메이지 헌법은 '신교의 자유'를 보장했기 때문에 메이지 정부는 '국가신도'를 법적으로 국교화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같은 해의 칙령 12호를 통해 일본 정부는 관·공·사립을 막론하고 학교에서의 종교교육을 금지시켜 '국가신도'를 모든 종교를 초월한 교육의 기초로 정했다. 인간 일왕을 신으로 만들어 '국가신도' 사상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일왕 일가가 아니라 메이지 정부의 지도자들과 어용학자들이었다. 그런데 '국가신도'는 기독교를 모델로 재구성한 종교였다. 메이지 정부는 기독교가 가지는 국가 통일의 기능과 제국주의의 첨병으로서의 기능에 주목했다. 그리고 일본이 서양에 대항하여 세계적인 대제국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와 같은 일본의 독자적인 종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기독교에는 악을 물리치는 성전이라는 사상이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 국가가 저지르는 전쟁은 명분상 다 성전이 된다. 일본도 전쟁을 신의 뜻이라고 주장하면서 기독교의 성전 개념을 빌려왔다.


일본 신화의 신들은 침략 지상주의 ㆍ

'국가신도'에서는 천계의 모든 신들을 아마테라스가 지배하고 있듯이 지상 세계에서도 아마테라스의 직계 자손인 일왕이 전 세계의 통치자가 되어야 하며, 이것은 아마테라스의 신칙이자 예언이라는 하였다. '국가신도'의 주장대로라면 다른 모든 종교는 '국가신도'보다 아래에 위치하므로 어떤 종교를 믿어도 아마테라스에게 경배해야 하며, 아마테라스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일본의 와콘요사이(和魂洋才), 한국의 동도서기(東道西器) ㆍ

일본의 근대화는 메이지유신 이후 '와콘요사이'의 원칙에 따라 추진되었다. '와콘요사이'란 서양 기술과 문명을 일본의 정신인 '야마토 다마시'로 수용한다는 뜻이었다. 개화기의 한국에도 이와 비슷한 '동도서기론'이라는 사상이 있었다. 즉 동양의 정신으로 서양의 기계문명을 수용한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일본의 '와콘요사이'와 한국의 '동도서기론'을 비교해보면 많은 차이가 있다. '와콘'이란 일본의 정신이므로 이 원칙에 따라 일본은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서양의 앞선 기계문명만을 받아들였다. 


진무 일왕과 기적 신앙 ㆍ

망국의 길로 가는 황도주의 일본 ㆍ

진무 일왕과 안보리 상임이사국 ㆍ

아시아 민족해방이라는 침략 ㆍ

일본은 왜 역사를 왜곡시켜야만 하는가? ㆍ

일본 일왕은 군신이다 ㆍ

일본은 일왕만이 바꿀 수 있다 ㆍ

일제의 성공한 식민지 동화정책의 실제 ㆍ

야스쿠니 신사의 조선 총독 전범 ㆍ

일왕의 명령에도 불복종한 전쟁의 귀재 ㆍ

보이지 않는 면이 더 훌륭한 한국인

한국, 한국인과의 인연 ㆍ

한국인은 보이지 않는 면이 보이는 면보다 더 훌륭하다 ㆍ

당하기도 자주 하면 버릇된다 ㆍ

애증의 동반자 ㆍ

때는 지금이다 ㆍ

불가능이 없는 나라, 한국의 힘

높은 교육열과 어머니의 사랑 ㆍ

최고가 되라는 한국의 가정교육 ㆍ

살신성인의 나라, 한국 ㆍ

일본인들을 위한 역사교육

민단도 모르는 관동대지진 한국인 위령비 ㆍ

경복궁 한구석, 명성황후 피살지 ㆍ

유관순 기념관 등 역사시설을 활용해 일본인들을 교육하자 ㆍ

한반도는 역사교육의 요새 ㆍ

한일관계, 문화로 푼다 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