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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봉환 : 1867년 에도 막부의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국가 통치권을 메이지 천황에게 반납한 사건이다. 이전까지 '대정위임론'을 토대로 실질적인 통치자의 역할을 담당했던 장군이 천황에게 권력을 반납하면서, 에도 막부와 막부 시대의 종언을 상징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되었다. 곧이어 메이지유신이 선포된다.
들어가는 글 : 일본 역사와 친해지기
일본에서는 제일 흔한 성인 사토, 스즈키, 다카하시, 다나카, 와타나베라도 전체의 2%를 넘지 않는다.
1부 시대적 배경 : 위기 앞의 일본
막부 말기 일본과 조선의 경제 상황
조선의 위정자들이 가장 우려했던 것은 빈부격차였다. 한 사회에 엄청난 부가 쌓이고 상품, 화폐경제가 발달하게 되면 그 혜택을 골고루 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빈부격차가 발생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하향평준화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를 억제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빈부격차는 반드시 사회불안을 낳기 때문이다.
울분에 찬 사무라이들, 도약을 꿈꾸다
경제발전으로 생긴 부의 과실은 대부분 에도, 오사카, 교토의 대상인들에게로 갔다. 그다음은 농민들이다. 농민들의 생산력이 높아지면 그만큼 세금으로 뜯어가는 게 보통인데, 당시 막부나 번 정부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세금을 올릴라치면 곧바로 농민봉기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만큼 농민들이 잘 조직되고 단결되어 있었다.
경제성장의 혜택을 입지 못한 계층은 정작 지배층인 사무라이였다. 도쿠가와 시대 사무라이들은 주군인 대명에게서 봉록으로 쌀을 받아 생활하는 봉급생활자였다. 그런데 도쿠가와 시대 내내 일반물가 상승률은 쌀값 상승률을 웃돌았다. 사무라이들의 실질임금은 경향적으로 감소했던 것이다. 경제성장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사무라이, 그중에서도 봉록 수준이 낮은 하급 사무라이를 이 경제적으로 곤궁에 빠지게 되었다. 경제발전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또 다른 계층은 농촌의 빈농, 도시의 빈민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경제 침체가 일어날 때 가장 먼저, 강하게 타격을 받는 계층인데, 특히 물가상승은 임노동자들인 이들에게는 재앙이었다. 이처럼 사회변화에 따라 과실과 손해가 생기게 되면 주로 손해를 보는 층이 사회를 바꾸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사회변혁을 하기 위해서는 교육, 정보, 조직 등 어느 정도의 사회적 자원이 갖춰져야 한다. 빈민, 빈농보다는 하급 사무라이가 나서게 된 이유다. 특히 18세기 말, 19세기에 들어가면 하급 사무라이들의 경제적 궁핍이 아주 심해졌다.
일본은 원래 유학의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 19세기 사료를 읽다 보면 대부분의 사무라이들이 유학 관련 책을 읽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19세기는 일본에서 유학, 그중에서도 주자학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대였다. 유학을 접한 사무라이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전투 대신, 천하대사의 정치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열도에 찾아온 위기
여기에 더해 하급 사무라이들을 분기시켰던 것은 대외 위기의식이다. 아무리 유학공부를 한다 해도 이들은 어디까지나 군인이었으므로 전쟁이나 외세 침략에 더욱더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 승패에 더할 나위 없이 민감했다. 이런 위기감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 아편전쟁이었다. 신식화기로 중무장한 영국의 증기선 앞에 대청제국은 맥을 목 추었다. 청과 남경조약을 맺은 영국이 뱃머리를 일본으로 돌릴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다.
청나라는 아편전쟁에서 지고도 건재했지만, 막부는 다르다. 장군의 원래 이름은 정이대장군 아닌가, 말 그대로 오랑캐를 징벌하라고 있는 자리다. 전쟁에서 지면 그대로 무너지는 것이다. 이게 막부가 서양과의 전쟁을 끝내 회피한 이유다. 실제로 막무가 무너진 것은 조슈번과의 전쟁에서 패한 게 결정타였다. 무력이 정통성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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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메이지유신의 스승, 요시다 쇼인
바깥세상, 더 바깥세상을 찾아 나서다
송하촌숙에서 혁명의 불씨를 지피다
해외팽창을 위해선 체제 혁신을!
‘초망굴기’와 일본 혼을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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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일본을 세탁하다, 사카모토 료마
“세상에 태어난 것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다”
일본을 위해 도사번을 버리다
사쓰마-조슈번의 동맹을 주도하다
조선의 양반은 법제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에 그 지역 사람들이 양반이라고 취급을 해주느냐, 안 해주느냐가 중요했다. 그러니 과거 합격과 중앙 관직 획득에 매달리게 되고 그 경쟁은 치열한 수밖에 없었다. 이에 비해 일본의 신분은 법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이미 정해져 있었다.
료마가 그린 새로운 일본의 청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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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라스트 사무라이, 사이고 다카모리
서양과 근대, 일본과 전통을 함께 껴안다
정치적 위기를 이겨내고 거물이 되다
사무라이 사이고의 결정적 순간
전설로 남은 마지막 사무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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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근대 일본의 철혈재상, 오쿠보 도시미치
냉혹한 혁명가가 되다
필사의 도약, 개혁 드라이브
메이지 정부가 추진해야 할 개혁은 크게 봐서 다음과 같았다. 첫째, 중앙집권국가 건설이다. 둘째는 식산흥업정책인데 한마디로 말하면 서양식 공업화를 달성하는 것이었다. 셋째는 신분제 철폐다. 넷째, 민족주의 확립이다. 다섯째는 민주주의다.
죽마고우 사이고 다카모리와 대결하다
서양을 배워 그보다 강한 일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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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생각 많은 시민들’의 일본사 읽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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