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행복하다

[도련님의 시대 : 메이지 유성우 편], 다니구치 지로 그림, 오주원 역, 세미콜론, 2014, (2107019)

바람과 술 2021. 7. 19. 07:17

제1장 슈스이 포박

 

잘 가시오. 슈스이는 돌아보지 않았다. 잘 있으시오. 쉰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사상은 달랐지만 오랫동안 우의를 다졌던 친구와의 영결 인사가 되었다. 

 

제2장 도사 나카무라 사람, 고토쿠 덴지로

 

제3장 사회주의가 뭔데?

 

제4장 러일전쟁 때의 그들

 

제5장 추운 여름

 

제6장 청량한 진창, 간손이라는 젊은이

 

제7장 불꽃처럼 쓸쓸한 스가코라는 여자

 

제8장 무정부 공산

 

이른바 '대역 사건'과 그 배경 - 세키카와 나쓰오

 

흔히 '대역 사건'이라 부르는 천황 암살 계획, 혹은 어느 정도 구체적인 준비를 동반한 몽상적인 암살 계획 사건은 정확하게는 '미야시타, 간노, 니무라 사건' 또는 미야시타 다키치가 폭탄의 제작과 실험을 행한 지명에서 따온 '아카시나 사건'이라 부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청일 전쟁과 러일전쟁 사이에 산업혁명이 진행되었고, 각지에 '노동자'라는 대중이 생겨나고 있었다. 하지만 미숙한 일본의 자본주의 초기 단계에서 발생한 일그러짐은 급속하게 확대되어 각지에서 노동쟁의를 일으키고, 동시에 그러한 불합리와 불평등을 규탄하고 '주의자'들을 낳았다. 메이지 30년대에는 아직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의 차이마저 명확하게 인식되지 않았기에, 그들은 말하자면 서구 사회과학의 영향 아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체제에 비판을 가한 '우국청년'들이었다. 

 

메이지 유신에서 40주년이 지나니 예전의 청년 혁명가들도 늙었다. 혁명 정신도 퇴색했다. 그 무렵 정부 중핵의 정신을 지배하던 것은 겨우 쌓아올린 메이지 국가가 새로 도래한 상호부조 사상과 평등사상, 또는 대중의 권리 주장에 의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공포심이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암살된 메이지 42년 이후에 거의 혼자 살아남은 원로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그 공포심을 더욱 강하게 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지나친 위기 의식과 역시 지나친 방어 의식으로 사태에 임하여 전대미문의 대량 처형을 결단하고 실행한 것은 메이지 국가가 40년을 들여 키워낸 관료기구였다. 

 

제9장 운명의 수레

 

제10장 일본 황제 무쓰히토 군에게 전한다

 

제11장 테러리스트 군상

 

제12장 정의의 사람들

 

제13장 핼리 혜성 회귀

 

제14장 메이지 유성우

- 이른바 ‘대역 사건’과 그 배경

 

- 「메이지 유성우」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