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조선시대 살아보기], 반주원, 제3의공간, 2017, (210809)

바람과 술 2021. 8. 9. 22:45

들어가는 글

 

1장 시대를 막론하고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인의 욕망

 

2장 남겨진 이혼의 기록, 나비를 주고받다?

 

3장 얼음 창고, 석빙고와 여름철 원기 충전 보양식

 

조선시대에는 복달임에 민어요리가 일품이요, 도미를 사용한 탕이나 찜이 이품, 개고기는 삼품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되곤 했다. 

 

4장 한류, 귀한 그림 한 점과 감탄스러운 시와 학문

 

5장 삼작저고리, 스란치마, 너울… 규수와 기녀의 옷

 

기녀들의 삶은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신분제가 무너지고 활발한 경제구조의 변동이 가속화되는 탓에 급물살을 타게 되는데, 기녀 집단 안에서도 종류와 등급의 세분화 현상이 나타났다. 일패, 이패, 삼패로 구분된 조선 후기의 기녀들은 일패는 기생, 이패는 은근자, 삼패는 탑양모리라고 불렸다. 일패인 기생인 기무를 익혀 활동하던 관가의 전통을 이어받아 각종 연회에 참석하고 사적인 영업장으로 집을 활용하여 고급 접대를 이어갔다. 이패는 일패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기녀 출신이 많았는데 남몰래 매춘한다 하여 은근자라 불리게 되었고, 삼패는 매춘 자체가 본업인 집단으로 잡가만 부르고 일패인 기생처럼 가무는 할 수 없게 규정되어 있었다. 결국 이러한 현상을 뒤틀어보면 다양한 방식을 통해 쉽게 기녀를 접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다양화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미인의 기준! 3백(치아/살결/눈의 흰자위), 3흑(눈썹/머리카락/눈동자), 3홍(입술/볼/손톱)과 삼대(키/엉덩이/가슴)삼소(얼굴/입/손). 

 

6장 비밀리에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자, 비선실세

 

7장 50세에 청려장과 80세에 조장, 노인을 위한 나라

 

현대인들 가운데 '노인직'이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하던 직업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현대 사회의 일반적인 상식과 편견을 깨고 조선시대에는 말 그대로 노인에게, 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가 가진 경험과 연륜에서 우러나는 지혜를 인정하는 의미로 관직을 준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시기별로 약간의 변화된 세부조항들이 있긴 하지만 보편적으로 남성이라면 양인이나 천인을 구분하지 않고 신분과 상관없이 80세 이상 나이가 들면 국가가 노인직을 주었다. 수직이라고도 불렸던 노인직은 매년 초에 각 도 관찰사가 호적에서 80세 이상 된 노인을 뽑아 이미 노인직을 받은 적이 있는지 조사한 후에 이조에 보고하는 순으로 일처리가 진행되었다.   

 

8장 궁궐을 등진 ‘방배동’과 태생이 다른 마을, ‘이태원’

 

9장 여인이 빛났던 이유, 미모를 완성하는 후광 효과

 

10장 곡물가루와 약초로 목욕하고, 버드나무 가지로 이를 닦다

 

11장 권력의 균형을 위한 ‘언론삼사’, 억울한 백성을 위한 ‘격쟁’과 ‘상언’

 

사간원은 국왕의 옳지 못한 일처리나 정책상의 오류를 비판하고 왕의 바르지 못한 말과 행동을 지적하는 간쟁을 위주로 활동하는 기관이었으므로 모든 것을 자유롭게 비판하고 눈치 보지 않고 지적하는 것이 보장되었다. 때문에 다른 사람의 권위에 눌려 바른 말을 못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사간원 관원은 자신보다 품계가 높은 관리를 보아도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 묵인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사간원이 업무시간 중에 술을 마시는 것이 허용되는 유일한 관청이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임금의 금주령이 내려진 때에도 사간원 관리는 업무 중에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임금에게 쓴 소리를 할 용기가 나지 않거든 술기운을 빌려서라도 할 말은 꼭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상징적인 특권을 주었던 것이다. 

 

사헌부는 관리들에 대한 감찰과 탄핵, 관리 임명과 파면에 대한 적합성을 두고 의견을 내는 '서경'에 주로 집중하였다. 

 

홍문관은 본래 세종 때 집현전이란 이름의 학술연구기관이었던 것이, 세조 때 집현전이 없어지면서 성종 때에 이르러 홍문관으로 명칭을 바꾸며 부활한 것으로 보면 큰 무리가 없다. 

 

12장 남성의 옷, 화려한 사라능단에서 면포, 마포로 만든 실용복까지

 

13장 발효과학 김장과 따뜻한 온돌방의 확산 과정

 

14장 깊은 밤 남몰래 처리하던 비밀스러운 달거리

 

15장 하멜과 다블뤼, 쥐베르… 외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조선

 

16장 국 먹기는 여름 같이 하며, 술 먹기는 겨울 같이 하라

 

수원 팔달문 앞에 가면 정조가 술을 하사하여 권하는 조형물이 만들어져 있어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동상 아랫단에는 큰 글씨로 '불취무귀'라 쓰여 있는데, 글자 그대로 해석해보면 '취하지 않으면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말을 단순하게 정신줄을 놓을 때까지 술을 마시고 놀아보자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 말은 수원화성 공사로 고생한 축성기술자와 노동자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정조가 격려와 위안을 주고자 한 말이기 때문이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상향의 도시를 수원화성에 만들고자 했던 정조는 백성 모두가 어떤 근심이나 걱정도 없이 취하도록 술을 마실 수 있는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를 담아 수원화성 축성 기술자와 노동자들에게 일종의 공약을 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17장 곱게 빗어 넘긴 머리, 관자와 풍잠으로 눈에 띄는 남성의 멋

 

18장 족보에도 기재된 ‘후부’라는 명칭과 재혼의 일종이었던 ‘보쌈’

 

19장 고초액으로 혈흔을 찾아내고, 엄격한 삼검제도로 최후를 판결

 

20장 끓는 가마솥에 풍덩? 팽형이란 무엇인가?

 

조선시대의 '팽형'은 중국의 것과 달리 사람을 끓여 죽이는 육체적 형벌은 아니지만, 식구를 비롯하여 친척, 친구, 이웃에 이르기까지 국가사회의 모든 구성원과 단절된 삶을 살며 지속적으로 멸시와 무시를 당해야 했으므로 죄인이 정신적으로 느끼는 고통은 육체적으로 죽음을 맞는 고통에 비하여 결고 적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21장 사랑의 징표, 은빛 살구를 선물하고 연비를 새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