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만력제
전통 관념에 의하면 황제의 의견은 언제나 절대 공정한 것이고, 성지가 내려지면 어떤 비판도 허용되지 않았다.
의례 하나만 하더라도 그것은 존비의 등급을 분명히 하고 국가의 체계를 유지시키는 것이었다. 중국 제국은 문관으로써 억만의 농민을 관리하는 국가였는데, 이들 소수의 문관들이 갖가지 많은 문제를 모두 조정에 제시하고 검토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중국의 선조들은 의례를 중시하여 대소 관리들로 하여금 관습에 따라 일을 처리하며 상하 서열을 유지할 수 있게 하고, 이로써 전국의 모범을 보이려 했던 것이다. 따라서 전 조정이 소란을 떨며 낭패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진정 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만역제 또한 각종 의례에 정통한 군주였다. 1587년 3월 황제는 23세를 지나 24세에 들어서고 있었고, 황제가 된 지 15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8세가 되던 해 겨울에 아버지 융경제가 자신을 위해 성인이 되었음을 선포하는 관례와 식전을 베풀어 주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평일, 황제는 하루에 20~30건에 달하는 상주문을 읽고 그 내용에 따라 지시를 내려야 했다. 이 상주문은 모두 한 장의 긴 종이에 작성되어 있었다. 개괄하면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각 관청이 관청의 이름으로 상주하는 것으로서 '제본'이라는 것이었다. 제본의 내용은 통상 공적인 사무에 관한 것으로서 논란을 일으키는 일이 드물었다. 다른 하나는 중앙관이 개인적으로 올리는 상주문으로서 '주본'이라는 것이었다. 주본의 내용은 십중팔구 상주자의 본래 업무 밖의 일이었다. 개인적인 비평이거나 건의이기 때문에, 사전에 상관에게 알릴 필요도 없고 따로 부본을 준비할 필요도 없었다. 상주자 스스로 나아가 희극문에 신고하면 문을 관리하는 태감이 그것을 접수했다. 절차가 이와 같았기 때문에, 욕과랑방에 넘겨주어 필사시켜 공포하라는 황제의 지시가 있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주본의 내용을 알 수 없었다. 관리들의 세계를 뒤흔드는 상주문들은 주로 이와 같은 주본이었다.
이 광대한 제국을 통치함에 있어서 전적으로 엄격한 형법에 의지할 수만은 없었다. 통치의 비결은 오히려 윤리 도덕의 힘을 이용하여 신분이 낮은 자로 하여금 신분이 높은 자에게 복종하도록 하고, 여자를 남자에 종속시키고, 교육받지 못한 우민들로 하여금 책을 읽어 글을 아는 자들을 모범으로 삼게 하는 데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조정이 스스로 실천함으로써 천하에 모범을 모이는 것을 필요로 했다.
2장. 수보 신시행
중국의 행정은 체제 안정을 중시했을 뿐, 개별 인간이나 사건의 절대적 공평성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소수를 희생시키는것이 바로 대국을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일개 종7품의 하급 문관이, 과거에 정부에 공헌한 것이라고는 장거정을 탄핵한 것뿐인데도, 지금 이 같은 도덕적 권위를 갖고 직접 황제까지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에 근거한 것일까? 또한 이런 사람들은 정직을 상품으로 삼고, 심할 때는 예사로 군주를 비판하며 그것을 밑천삼아 자신이 정직하다고 과시한다고 여겨졌다. 이 같은 견해는 사실상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 문관은 경서에 정통해서, 백세 후에까지 명성을 남길 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문제점을 하나 찾아내어 어전에서 불경죄를 지어 오늘 형벌을 받는다 하더라도, 훗날 역사서에 자신의 이름을 드높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좋다고 생각했다. 이는 충신열사의 명예가 의심의 여지 없이 귀한 상품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3장. 장거정 없는 시대
표면적인 안정은 일반적으로 실제와 다른 것이게 마련이다. 제국이 이나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실은 대안이 아직 발견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중국과 같이 방대하고 역사가 긴 제국은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관성의 작용만으로도 얼마간은 존속될 수 있었다.
4장. 산 조종(祖宗)
5장. 해서-괴팍한 모범 관료
6장. 척계광-고독한 장군
16세기 중엽, 세력을 얻은 왜구가 '금성탕지(아주 견고함)'의 수비벽으로 간주되고 있던 동남 연안 지역의 방위선을 몇 번이나 돌파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깊숙이 침입하여 명조의 수비군을 어린애 다루듯이 하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비로소 중앙의 문관들은 이 열악한 군사 제도가 필경 전체의 안전, 나아가서는 자신들의 안전도 위협할 것임을 느끼게 되었다. "궁하면 변화를 생각한"는 말 그대로 개혁은 필연으로 되었다. 개혁의 제1보는 무엇보다는 독창성이 풍부한 상급 장군, 그것도 원대한 전략을 지니고 있으면서 각종 전술에도 뛰어난 장군을 뽑는 일이었다.
총병 척계광은 전투 초기 단계에서의 손실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경험에서, 싸움이라고 하는 것은 적 군사 조직의 격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상대 조직의 급소에 철퇴를 가할 수 있다면 전체를 통괄하는 중추가 소멸하게 되어 전체도 곧 와해됨을 알고 있었다. 왜구라는 적과 대치할 때, 그들 중의 일본인을 격파하는 것이 승리의 결정적인 요소였다. 그들로부터 협력을 강요받고 있던 중국인 대부분은 금방 무기를 버리고 투항했다. 척가군이 거둔 많은 승리는 그들의 명성을 아주 멀리까지 전했다. 그 명성이 또다시 병사들의 투지를 높여주었다. 그들은 다른 관군이 수개월 걸려서도 공략할 수 없었던 왜구의 거점을 공격하여 몇 시간 만에 함락시키고 적을 섬멸할 수가 있었다. 척계광이 한결같이 주장한 작전 방침은 숫자상의 우위에 근거한 속전속결이었다.
7장. 이탁오-자기 모순의 철학자
저자의 말
지금까지 명대사를 다룬 저작물에는 대체로 "세금이 무거워 백성이 곤궁했다"는 표현이 가끔씩 등장했다. 만약 그것이 당시 만연했던 관리들의 부정과 무력한 백성에게 분담시켰던 과중한 부역을 말하고, 또 날로 심해져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 말에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만약 전국의 세수 총액이 지나치게 많아서 백성의 곤궁을 초래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사실과 다른 점이 있다. 16세기 말 전국에서 전부액이 가장 무거웠던 곳은 남지예의 소주부로 대략 농촌 수입의약 10%를 차지했다. 그 외의 각 부·현은 일반적으로 10% 이하였고, 그중에서도 경중의 차이가 있었다. 산동 조현 한 현의 부역은 농촌 수입의 약 9%였으나, 소주에서 멀지 않은 율양현의 정황은 신기하게도 1~5%였다. 비율에 대해 말하자면, 같은 시기 일본의 다이묘 정권에서는 세액이 수입의 50%를 차지했다. 총액의 경우, 17세기 말 영국이 인구 500만에 세수가 매년 700만 파운드에 달하였는데, 이것은 인구가 30배 많은 중국과 거의 같은 액수이다. 이것에 기초하여 연구를 진전시키면 '백성의 곤궁함'의 근본 워인이 국가 부세가 과중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법률의 부패와 정부의 무능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국가의 세율은 낮았지만 그 혜택을 입은 것은 농민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만 크고 작은 지주들이 착취를 강화하거나 관료가 향촌에서 규정 외의 세를 징수하는 것을 도울 뿐이었다. (pp 386~387)
중국은 영토가 넓고 정황이 복잡하다. 명조는 엄격한 중앙 집권을 취했으며, 그 시정 방침은 경제 발전을 돕고 그것으로 전국의 재화를 풍부하게 하는 것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뒤떨어진 경제를 보호하고 균형 상태를 이룬 채 왕조의 안전을 유지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부록
분명한 사실은, 세계의 어떤 나라든 어떤 '주의'로 문제를 해결하려 해도 의도한 바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므로, 난관을 돌파하여 새로운 환경을 창조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1587, 만력 15년 아무 일도 없었던 해>에서 도덕이 만능은 아니고 그것이 기술이나 법률을 대신할 수도 없지만 도덕이 전혀 필요 없다고 할 수 없으며, 도덕적 관념은 응당 원대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먼저 법률이나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처음부터 도덕적 문제로 끌어올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도덕은 모든 가치의 근원으로, 나눌 수도 타협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만약 도덕상의 다툼이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으면 양쪽의 거리가 더욱 멀어져 조만간 반드시 전쟁을 하기에 이를 것이다.
옮긴이 후기
저자 레이 황은 중국 혹은 일본 학계에서 일고 있는 '자본주의 맹아론'을 부정하고 있다. 저자는 자본주의란 '하나의 조직'이며 '하나의 시스템'이라 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성장할 수 있는 사회 기반과 정신적 풍토가 조성되어 있지 않는 한, 맹아든 그 무엇이든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명대사 연표
참고문헌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개화기 지방 사람들 2 : 양반/평민], 어진이, 2006, (210814) (0) | 2021.08.14 |
|---|---|
| [개화기 지방 사람들 1 : 왕실/중인/천민], 어진이, 2006, (210813) (0) | 2021.08.13 |
| [조선시대 살아보기], 반주원, 제3의공간, 2017, (210809) (0) | 2021.08.09 |
|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 어니스트 볼크먼, 석기용, 이마고, 2003, (210806) (0) | 2021.08.06 |
| [사기 1,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다], 사마천, 김진연, 서해문집, 1993, (210726) (0) | 2021.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