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

[탈주선 위의 단상들], 이진경, 문화과학사, 1998, (210930)

바람과 술 2021. 9. 30. 22:26

001. 서문

 

002. 대담 : 근대적 배치와 맑스주의/ 대담 이동연

 

근대 이전이나 근대적인 것이나, 혹은 근대 이후의 경우에도 억압적이지 않은 주체생산방식은 없었다. 그렇지만 또한 억압적이기만 한 주체생산방식은 없었다. 그래서 '욕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는 그런 방식으로 작동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때 억압은 욕망을 특정한 방식으로 배열, 배치하는 과정에 관여하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욕망의 배치를 형성하는  계기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욕망과 억압을 대립시키는 것은, 다시 말해 억압되는 욕망과 억압하는 권력의 이분법은 매우 부적절한 것이 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삶의 방식이 억압적인가 아닌가보다는 기존의 삶의 방식을 변환시킴으로써 다른 방식의 삶을 생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전복적인 힘을 투여해야 할 지점은 어디인가 하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욕망'이라는 단어일텐데, 욕망이라는 단어를 개념화함으로써 내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사는 것이 혁명적인 것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그것이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것이 이미 특정한 방식으로 그 대상을 설정하고,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이미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따라서 욕망이 계열화하는 관련된 요소들이 이미 특정한 방식으로 배열되고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사고하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사유하려고 한다면, 새로운 운동의 영역과 장은 물론 이전에 지배적이던 영역과 장에서 활동의 방식, 조직의 방식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를 다시 사고해야 한다.  

 

003. 학생운동가와의 대담 : 탈주의 정치학을 위하여/ 대담 이재원

 

'조직화'란 방금 말한 '잠재적인' 것과 '현재적인' 것, 이 양자의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잠재적인 능력을 최대한 확장학 현재적인 힘으로 변환시키는 데 필요한 것이라면 어떤 형태의 조직이든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조직이 '일반적으로' 옳은 것인가가 아니라, 시기와 상황에 비추어 지배적인 권력의 메커니즘을 깨고 대중들의 흐름이 흐를 수 있는 새로운 파열구를 내고 그것을 통해 대중들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하고 적절한 조직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이다.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반란이 같은 것일 수 없다. 여기서는 지배-피지배의 반복이라는 점말고는 아무런 동일성도 없다. 이는 정치체제들에 대해서도 생산양식에도 마찬가지이다. 반대로 우리는 그것이 반복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 무한히 생성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004. 공간적 배치의 미시정치학

 

005. 탈주의 철학과 필로시네마

 

006. 배트맨 혹은 선악의 경계

 

007. 가벼움의 미학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