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돈과 구원], 자크 르 고프, 김정희, 이학사, 1998, (211026)

바람과 술 2021. 10. 26. 15:58

001. 돈과 지옥 사이에서 : 고리 대금과 고리 대금업자

 

고리 대금을 둘러싼 엄청난 논쟁을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의 출산" 과정이기도 했다. 기독교 사회에서 고리 대금업자는 두 배로 끔찍한 흡혈귀였다. 왜냐하면 이 돈을 빨아먹는 자는 흔히 신과 아이들을 죽이고 성체를 모독한 유태인과 동일시되었기 때문이다. 

 

고리 대금은 13세기의 주요 현안들 가운데 하나였다. 서기 1000년 이후 눈부시게 성장해 온 기독교는 그 무렵 절정기에 도달하여 영광을 구가하고 있었지만 이미 그 입지는 위태로워지고 있었다. 화폐 경제가 급성장하고 널리 퍼져 나가면서 기독교적인 기존의 가치들이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바야흐로 새로운 경제 체제가 탄생하려 하고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였다. 자본주의가 궤도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들, 적어도 교회가 예전부터 비난해 오던 행위들이 대거 필요했다. 

 

13세기 종교 관행의 흔적은, 12세기에서 13세기로 넘어가면서 상당한 변화를 겪은 두 가지 유형의 고문서들 속에서 발견된다. 첫 번째 유형의 텍스트들은 대전, 또는 고해 사제 편람이다. 중세 초기에는 죄의성격에 상응하는 죄가가 참회 규정서에 기록되어 있었다. 게르만족들의 법을 모델로 삼은 그것은 행위자보다는 행위 자체를 중시했다. 그러나 11세기 말엽부터 13세기 초엽에 이르는 기간에 죄와 참회의 개념은 심도 있는 변화를 겪으면서 영적이며 내면적인 것이 된다. 그후로 죄의 경중은 죄인의 의도에 따라 정해지게 되었고, 이에 따라 의도가 선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악한 것이었는지를 조사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그 결과 고해 행위는 상당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예외적으로 매우 중한 죄에만 적용되던 고해는, 집단적이며 공개적이었던 형식에서 벗어나 입에서 귀로 전해지는 형태가 되었으며, 사적이면서도 보편화되어 꽤나 빈번한 일이 되었다. 죄를 벌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사람을 정화시켜야 했다. 고해자는 자신의 행동과 의도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양심을 검사해야 한다. 자성이라는 새로운 차원이 열린 것이다. 이것은 의식 습관과 행동 방식을 서서히 변화시키며 근대적 심리적 기원을 이루게 된다. 따라서 고리 대금업자들의 영혼을 계량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고해 사제가 재량껏 개인적 평가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두 번째 유형의 자료인 예화들 속에서 고리 대금 업자는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002. 돈 : 고리 대금

 

고리 대금은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13세기의 기록들은 대개 그 용어를 복수인 usurae로 사용했다. 고리 대금은 히드라, 머리가 여러 개 달린 괴물이었다. 

 

고리 대금 usura은 고리 대금 그 자체, 모든 금지된 금융 행위들의 총칭이기도 하다. 고리 대금은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되는 거래에서 빌려 준 자가 이자를 받는 것을 지칭한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이자의 징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고리는 이자와도, 또 이윤과도 동의어가 아니다. 고리 대금은 재화의 생산이나 물질적인 변형이 없는 경우에 성립한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점이다. 고리 대금에 대한 저주의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바로 중세 교회의 교리와 의식 구조에서 돈이 차지하는 위상이다. 

 

동등한 가치의 교환은 경제적 합리성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타산적인 동기가 개입하지 않도록 하는 보장 장치임이 드러난다. 교환의 유일한 목적은 상호 관계를 강화하면서 관계망을 긴밀히 하는 것이다. 

 

요점만 말한다면, 고리 대금은 범죄보다 더한 죄악이라는 것이다. 

 

돈은 생산력이 없다. 그러나 고리 대금없자는 돈이 불어나기를 원한다. 중세 신학자와 교회법 학자가 돈과 자본에 대해 어떠한 생산성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자 대출'의 경우, 빌려 준 돈이 돈을 낳도록 하는 것은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었다. 

 

베네치아의 총독이었던 파르테파치오는 이미 827년에 유언장에서(그것이 진본인지에 대해서는 이론이 제기되고 있다) "일하는 돈"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고리로 준 돈이었을까, 아니면 정당한 이윤을 목적으로 투자된 돈이었을까? 13세기의 신학자들과 교회법 학자들은 고리로 준 돈이 실제로 "일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으며, 예화의 저자들과 설교자들 또한 이와 같은 혼란스러운 사실을 유포하는 데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다. 

 

003. 시간을 훔치는 자

 

고리 대금없자의 돈주머니에서 나온 동전들은 지옥의 저금통이 되어 버린 시체의 입 속으로 들어간다. 고리 대금업자가 두카 금화를 배설하는 모습에서도 볼 수 있듯이, 중세 고리 대금업자에 대한 상상력 분석은 부당하게 번 돈을 이렇게 구강 성교 또는 항문 성교와 연결시키고 있다. 

 

기독교인 고리 대금업자들은 죄인으로서 종교 재판에 회부되었다. 일반적으로 종교 재판관들은 그들을 저주하고 벌하는 일은 하느님께 맡기고 그들에게 어느 정도 관용을 베풀곤 했다. 그러나 유태인과 이방인(프랑스의 경우, 이 용어는 이탈리아인, 남프랑스인, 롬바르디아인, 그리고 카오르 지방의 고리 대금없자들을 지칭한다)들의 경우, 그들은 세속 재판소에 회부되어 훨씬 더 가혹하고 심한 탄압을 받았다. 필립 오퀴스트왕과 루이 13세, 그리고 특히 성왕 루이는 유태인 고리 대금업자들에 대하여 매우 가혹한 법을 제정했다. 이렇게 유태교와 고리 대금을 함께 탄압한 것은 그 무렵 형성되기 시작한 유태인 배척주의에 불을 붙이고, 유태인과 어느 정도 동일시되던 고리 대금업자의 이미지를 더욱 부정적으로 만드는 데 공헌한다.

 

12세기에 접어들어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면서 기독교인 고리 대금업자들의 수효가 늘어난다. 때로는 유태인 고리 대금업자들이 이들의 두려워할 만한 경쟁 상태가 되었던 만큼 이들은 유태인들에게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기독교인 고리 대금업자는 죄인이었다. 그는 무슨 죄를 지었던 것일까? 고리 대금은 절도 행위였다. 따라서 고리 대금업자는 절도범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소유자', 즉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서 남의 재산을 취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고리 대금업자는 약간 틉결한 도둑이었다. 그는 비록 공중 질서를 어지럽히지는 않았지만, 그가 저지르는 절도 행위는 하느님의 소유물을 훔쳤다는 점에서 유난히 가증스러운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돈을 빌려 주는 시점과 이자를 붙여서 되돌려받는 시점 사이에 흘러간 시간말고 무엇을 판다는 말인가? 시간은 오직 하느님에게 속한 것이므로 시간을 훔치는 고리 대금업자는 하느님의 재산을 훔치는 것이 된다. 고리 대금업자의 상황은 "소유물"을 훔친 자에게 시간을 훔친자로 악화되고 있다. 실제로 중세에 "소유물-이 개념은 12~13세기가 되어서야 로마법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재등장하고, 거의 동사에 한하여 적용되었는데-은 인간들에게 속하는 것이었다. 시간은 하느님, 오직 그분에게 속한다. 13세기 말에 기계식 시계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종소리가 그때 그때 하느님에 대한 찬양 시간을 알려 주었다.  

 

고리 대금업자의 행위는 창조주의 계획에서 벗어난다. 중세인들은 우선 노동을 원조에 대한 벌, 속죄 행위로 생각했다. 그리고 계속하여 이러한 시각에서 그들은 속죄와 존엄성 그리고 구원의 도구로서 노동에 더욱 더 높은 가치를 부여했다. 자신의 모든 이익을 부당하게 취득한 고리 대금업자가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가 번 것을 모두 반환하는 것이었다. 

 

004. 고리 대금업자와 죽음

 

005. 돈과 구원 : 연옥

 

교회와 세속 권력은 도리 대금업자에게 "돈주머니와 영생 둘 중 하나를 선택하시오"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고리 대금업자가 원하는 것은 "돈주머니와 영생" 모두였다. 

 

13세기는 가치들이 지상으로 내려온 시대였다. 고리 대금업자를 구원한 것은 연옥만이 아니었다. 내게는 결정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보완적인 요소였던 연옥의 역할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고리 대금업자가 승인받기까지 거쳐야 했던 다른 길들을 탐색해야 한다. 거기에는 두 개의 길이 있었다. 거래에 있어서의 절제, 그리고 경제 활동 영역에서의 새로운 가치의 등장이 바로 그것들이었다. 13세기는 계산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있었던 시대로, 고리 대금업자에 대한 권위들과 사회의 태도를 거의 결정했던 것은 고리 대금으로 벌어들인 이자의 액수였다. 이자를 징수하는 데 있어서, 시장 가격을 공정 가격의 기준으로 삼았던 교회의 규제가 있긴 했지만, 이자율은 부분적으로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정해졌으며, 따라서 이자율은 경제활동의 부분적인 지표가 되었다. 사실 고리 대금을 용인하는 계약에서 통용되는 이자율을 초과하지 않는 한 통상적으로 고리 대금 행위는 처벌되지 않았던 듯하다. 

 

실제로 연옥에는 출구가 하나뿐이었고, 그것은 천국이었다. 죽은 자가 연옥으로 보내지면 중요한 일은 끝난 셈이었다. 연옥이 탄생하면서 임종의 순간은 아주 극적인 순간이 되었다. 하느님이 천국과 지옥 혹은 연옥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바로 그 다음 순간, 죽은 직후에 열리는 '개인에 대한' 심판에서였다. 그것은 자신의 행복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그야말로 개체화된 망자에 대한 개별적인 심판이었다. 연옥은 지옥을 비울 목적으로 다분히 고의적으로 발견된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그것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그 같은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이 같은 관용주의적인 경향에 맞서서 13세기 교회는 연옥에서 받는 형벌들이 지옥의 형벌과 흡사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천국이라는 연옥의 출구가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006. `마음속에 흐르는 눈물`

 

연옥은 정말이지 기독교가 13세기에 고리 대금업자에게 보낸 눈짓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고리 대금업자에게 제한 없이 천국을 보장해 주었다. 연옥에 있는 한 명의 고리 대금업자가 자본주의를 만들지는 않는다. 긴 세월에 걸쳐 온갖 종류의 장애물을 넘고 나서야 비로소 한 경제 체제가 다른 경제 체제를 대체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 그것은 사람들이다. 자본주의의 주창자는 고리 대금업자들, 미래의 상인, 15세기에 이르러 레온 바리스타 알베르티가 돈이라고 정의하게 될 시간을 파는 상인이다. 이 사람들은 기독교인이다. 자본주의의 문턱에서 그들의 발목을 붙든 것은 고리 대금에 대한 교회의 비난이 초래하는 지상에서의 결과가 아니라 두려움, 지옥에 대한 불안스런 공포였다. 종교적 의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장애물은 우선-그리고 궁극적으로-종교적인 것이다. 연옥 덕택에 지옥을 면하게 되리라는 희망은 고리 대금업자들로 하여금 13세기의 경제와 사회가 자본주의를 향해서 전진할 수 있도록 했다.

 

덧붙이는 말

 

옮기고 나서

 

자본주의로 향하는 기독교인 고리 대금업자들의 발목을 붙든 것은 무엇보다도 지옥에 대한 공포였다. 연옥은 중세 경제가 그 공포로부터 벗어나 자본주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연옥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 고프는 여기서 고리 대금업자가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용인받기까지 거쳐야 했던 다른 길들도 탐색하고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