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1장 시선 -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평면성에서 벗어나려는 욕구는 동양 화가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동서양이 나아간 방향은 서로 달랐습니다. 서양 화가들이 평면에서 입체감을 얻고자 노력했던 반면, 동양 화가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평면성을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즉 서양미술에서는 가상의 입체를 평면 위에 세우기 위해 투시원근법을 따랐고, 동양밍술에서는 하늘로 올라가 전체를 보고자 했습니다. 하늘에서 보이는 모습이야말로 동양미술에서 추구하는 목표가 되었습니다.
드론의 기본 원리. 양력(위로 들어 올리는 힘), 항력(공기가 뒤로 끄는 힘), 추력(앞으로 밀어내는 힘), 중력(지구가 당기는 힘).
2장 색깔 - 색깔 구현의 어제와 오늘
전 세계 모든 유약은 재를 쓰는 것과 납을 쓰는 것, 두 종류로 나뉩니다. 납 유약을 바른 그릇의 경우, 납 성분은 인체에 해롭기 때문에 보통 외부에만 유약이 발라져 있고, 음식물을 담는 그릇 내부에는 유약이 발라져 있지 않습니다. 그런에 우리나라의 청자나 백자는 납 유약이 아닌, 나무 재 유약을 사용합니다. 납 유약은 중국 당나라의 당삼채 같은 그릇을 만드는 데 효과적입니다. 이처럼 납 유약은 색깔을 내는 데에는 유리하지만, 납 성분으로 인해 당삼채에 음식물을 담아 먹으면 인체 건강에 이상이 생깁니다. 그래서 주로 무덤의 부장품을 만드는 데 쓰입니다. 반면에 청자는 인체에 무해합니다. 그 대신 납이 아닌 재를 사용하여 높은 온도에서 구워야 하기 때문에 채색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무슨 나무의 재를 얼마나 섞느냐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대개 유약은 1~2%의 철분과 15~20%의 칼슘, 나머지는 규석이나 장석 등을 섞어 넣습니다. 그 비율은 가르쳐주지 않으면 절대 만들 수 없습니다.
그릇은 구우면 당연히 부피가 줄어들게 됩니다. 청자는 15%, 백자는 20% 이상 줄어듭니다. 그릇 중에는 금이 가 있는 것들이 정말 많고, 박물관에서도 그런 그릇들을 볼 수 있습니다. 상감청자의 경우는 다른 청자보다 균열을 내지 않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상감청자는 검은색의 흑상감토와 하얀색의 백상감토, 태토, 유약, 네 가지의 열팽창률을 모두 맞추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박물관에서 소장한 대부분의 고려상감청자에는 균열이 나 있습니다.
3장 무늬 - 무늬로 읽는 역사와 과학
고려청자를 만들려면 논밭으로 가야하고, 조선백자를 만들려면 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백자는 근본적으로 바윗덩어리를 깨서 만든 그릇입니다. 즉, 청자와 백자는 원료에서부터 완전히 다른 그릇입니다. 고려청자는 한 가지 흙으로 만들어도 되지만, 조선백자는 색상이 백색이어야 하고 굽는 온도도 높아서 한 가지 흙만으로 만들수가 없습니다. 백자를 만들기 위한 원료로 잘 알려진 것이 고령토입니다. 고령토는 우리나라 경상도의 고령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조선백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철분이 적고 성형이 가능한 정도의 점력이 있는 태토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는 하나의 흙은 없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여러 지역의 흙을 섞어 백자를 만들었습니다. 조선백자는 원료의 한계 때문에 높이 30센티미터 이상의 항아리는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만든 후 붙여서 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진 속 백자를 잘 보면 가운데 몸통 부분에 이어 붙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완성도가 낮아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오늘날 감정을 할 때에는 붙인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백자가 오히려 가짜인 것입니다. 그 시대에 중국이나 일본은 그릇에 흔적을 남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경우 왕실에서 쓰는 그릇에서도 이 흔적을 그대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 때는 없던 새로운 그릇인 청화백자가 제작됩니다. 동양에서 코발트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중국 원나라 때부터입니다. 강력한 힘으로 동서양을 아우르는 넓은 영토를 제패했던 원나라 집권기는 역사적으로 동서양 간의 문화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때 중국이 코발트를 수입하고, 그 후 중국에서 청화백자가 만들어집니다. 이 청화백자가 조선으로 들어오면서 우리 역시 태토를 만들고, 안료로 그림을 그리며 조선만의 청화백자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초벌국이한 백자의 표면은 평면이 아닌 입체이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기 어렵습니다. 또 수분 흡수율이 너무 높아서 붓을 대면 그릇이 수분을 바로 빨아들입니다. 그래서 한 번 그리기 시작하면 붓을 멈추지 말고 바로바로 그려내야 합니다. 잠깐이라도 멈췄다가는 붓이 앞으로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말라버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도자기를 구우면 크기가 줄어들면서 그림도 같이 줄어들기 때문에 그것까지 사전에 계산해서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4장 철기 - 철기 문화는 어떻게 이어지고 있나
사인검은 양기가 가장 왕성해지는 인년, 인월, 인일, 인시에 만든 검으로 귀신을 베어버리는 참마, 재앙을 굴복시키는 항요의 목적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사인검의 앞면에는 동서남북으로 각기 일곱 개씩 배치된 28수 별자리가 있고, 뒷면에는 검결이 새겨져 있습니다.
5장 정보 - 새로운 가치의 탄생
디지털 아카이브. 디지털 자료 생성 및 수집-안정적인 보존-자료 공유/서비스-통합 관리.
6장 지도 - 수단에서 주체로
김정호라는 사람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대동여지도>를 그의 여러 업적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에 못지 않은 성과가 더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30여 년 전인 1834년, 김정호는 30대 중반의 나이로 이미 <청구도>를 제작했고, 1859년에는 지도학적으로 <청구도>보다 한층 발전한 <동여도>를 완성했습니다. 고지도 전문가들은 <동여도>가 <청구도>의 수정본이고, <대동여지도>는 <동여도>를 저본(문서의 초고)으로 삼아 판각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 점에서 <대동여지도>는 1~2년 만에 끌과 칼로 뚝딱뚝딱 만든 지도가 아니라 30년 이상 축적한 성과를 망라한 지도의 최종 보고서입니다. 김정호가 단순히 지도 제작자가 아니라 지리학자로도 간주되는 이유는 <동여지도>, <여도비지>, <대동지지>라는 세 종의 지리지를 편찬했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지리지는 위 3대 지도의 해설서라고 이해하면 쉽습니다. 김정호는 전국의 군현 정보를 지도만으로 전달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지지 편찬을 결심합니다. 그는 지도와 지리지의 진정한 의미는 이 두 가지가 짝으로 존재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동여지도>가 김정호 지도의 최종본이라면, <대동지지>는 김정호 지지의 최종본인 셈입니다.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백두산을 몇 번을 올라가고, 해안을 몇 바퀴를 돌고, 결국 국가 기밀을 누설하여 옥사하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모두 믿기 어려운 낭설입니다. 이 이야기는 얼핏 김정호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부끄러울 정도로 김정호를 모독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김정호는 우선, 산을 올라가고 해안을 걸어서는 절대 지도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같이 철저한 전문가가 이렇게 간단한 것을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7장 공간 - 인간의 도시를 넘어서
<수선전도>는 조선 후기 한양의 모습을 그린 지도입니다. '수선'이란 한 나라의 수도를 말하고 '전도'는 전체 지도를 뜻하니 수선전도는 도성 전체를 그린 지도라는 뜻입니다. 조선시대 수도의 공식 명칭은 한양이었는데 백성들은 수도를 뜻하는 고유어인 '서울'이라고 부리기도 했습니다. 이 이름이 현재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로 이어진 것입니다.
<수선전도>가 공간을 정보화한 것이라면, 스마트시티는 시공간을 정보화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시티를 설계할 때, 어떤 가치들이 고려되어야 할까요? 세 가지의 키워드를 토대로 이를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편리함과 나태함입니다. 두 번째는 개인과 공동체입니다. 세 번째는 효율성과 행복입니다.
8장 시간 - 소통의 욕망, 시간을 창조하다
전국의 봉수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의 최종 도착지는 남산이었습니다. 봉수는 약 시속 100킬로미터의 속도로 정보를 전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해안에서 서울 남산까지는 대략 6시간 정도, 중간에서 지체되면 12시간 정도 소요되었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시간을 창조한다는 개념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접근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물리학적인 변수들을 바꾸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영원히 죽지 않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을 바꾸는 것입니다. 사실은 이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역사적으로 시간 개념은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에 의해 제약되어 왔습니다.
9장 인식 - 무엇이 확실하고 무엇이 모호한가
10장 생명 -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시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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