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

[앙코르와트 월남 가다 (상)], 김용옥, 통나무, 2005, (220102)

바람과 술 2022. 1. 2. 16:30

[서序]

[프롤로그]

 

여행이란?

 

여행은 이탈이다. 그런데 이탈이란 즐거울 수도 있는가 하면 동시에 매우 공포스러울 수도 있는 것이다. 열차가 궤도를 이탈하면 공포스러운 일이 벌어진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열차의 궤도와 같은 것은 아니다. 우리싀 삶도 물론 수없는 궤도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보통 '루틴(routine)'이라고 부르는 생활의 궤적,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정한 길들은 열차의 궤도와 같은 이탈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의 절제를 요구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궤적들은 오히려 이탈을 통해 새롭고 참신한 생명력을 획득할 수도 있다. 

 

막스 베버의 여행병

[2004년 6월 26일, 토요일]

 

MBC 종강

 

베트남이라는 나라

 

도이모이

 

호치민은 누구인가?

 

한국 록음악 속의 호치민

 

톤레삽 호수와 크레르문명

 

톤레삽 호수 바로 위에 씨엠립이라는 도시가 있다. 씨엠립이란 '샴족(Siem=Siam=타일랜드 사람들)을 물리쳤다'는 의미인데, 바로 이 씨엠립이라는 작은 도시가 우리의 관심을 끄는 앙코르 와트를 위시한 거대한 유적군의 게이트웨이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킬링 필드라는 미국의 조작극

 

폴 포트의 정체

 

미국이 론 놀이라는 괴뢰정권을 세운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호지명루트를 봉쇄하기 위하여 마음놓고 캄보디아에 폭력을 가하기 위해서였다. 이 루트는 라오스와 타이의 국경을 따라 캄보디아의 대평원을 가로질러 베트남의 최남단인 메콩델타를 흘러내려 가는 메콩강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1973년 8월 미 의회가 포격중지를 명령할 때까지 4년동안 캄보디아 동반부에 해당되는 광활한 지역에 B-52 폭격기로 무려 53만 9,129톤에 이르는 막대한 폭탄을 투하하였다. 시민들에게 공습경고도 한번 내린 적이 없었고, 군 명령과 보고체계가 전적으로 무시되었으며, 폭격의 사실조차 공식적으로 철저히 은폐되었다. 최소한 60~80만의 인구가 폭격으로 목숩을 잃었던 것이다. 크메르 루즈는 이러한 상황에서 인민들의 동정을 얻었고, 그들의 복수심은 불타올랐다. 

 

폴 포트는 첫째, 과도하게 맹렬한 반베트남적인 민족주의를 가지고 있었다. 둘째, 너무 과격하고 급격했다. 셋째, 비전은 이미 그가 당면한 국제사회의 현실에서는 살아남기 어려운 순결성이었다.

 

씨엠립

[2004년 6월 27일, 일요일]

 

인도차이나 문명 개론

 

인도차이나(Indochina). 우리는 이런 말을 쓸때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쓸 필요가 있다. 인도차이나라는 말은 불란서 사람들이 이 지역에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쓴 말로서 구체적으로 불란서연합에서 속한 세 나라,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르 지칭하는 말이다. 엄밀하게는 이 인도차이나라는 개념 속에는 타일랜드라든가, 미얀마, 말레이시아는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인도차이나라는 말은 잘 생각해보면 매우 기분나쁜 말이다. 인도와 중국 사이에 있다고 해서 그냥 붙여진 이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인도차이나라는 말은 이 지역문명의 독자성을 흐려버리게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분명 이 지역문명의 젖줄은 인도와 중국의 근원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이다. 대체적으로 월남은 중국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았고 캄보디아는 인도의 영향권이었다고 보면 그 문명의 전모가 쉽게 파악이 된다. 

 

캄보디아 건국신화

 

건국신화에서 많은 사실을 읽어낼 수 있다. 첫째, 캄보디아의 고대문화는 인도로부터의 이주민세력과 이곳 지역의 토착세력과의 습합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캄보디아에는 이 인도문화세력에 대항하는 원시적인 도착세력이 있었으며, 이들은 주로 나가(Naga)신앙을 토템으로 하는 종족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인도로부터의 문화세력에 곧 굴복하고 말았고 평화로운 화해의 길을 걸었다. 셋째, 캄보디아지역은 지금으로부터 6,000년 전만 해도 물에 잠긴 지역이었는데 메콩델타로부터의 침적으로 인하여 융기된 것이며, 지금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무로 각주를 만들어 한 층을 높인 원두막스타일의 집에서 살고 있는데, 이런 가옥구조는 수상에서 살았던 그들의 과거체험을 반영하는 것이다. 넷째, 이 지역의 사람들은 완전 나체로 살았으며 문명의 훈도를 받은 후에도 상체는 가리지 않고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섯째, 결혼의 유습이 지금도 남자가 여자집에 와서 사는 메트리로칼의 모계구도로 되어있다. 지금도 한 집 한방에 여러 사위들이 같이 사는 현상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 집과 유산은 항상 큰딸의 몫이다. 

 

캄보디아의 역사. 후우난 시대(AD 1세기~AD 550년경), 찐라 시대(AD 550년경~802), 앙코르시대(AD 802~1432), 이 세 단어 정도만 머리에 넣고 있는 것이 좋겠다. 

 

토인비와 자연의 회귀

 

크메르제국의 시작

 

프레아 코

 

신화가 중요하다는 것은 바로 그것이 인간의 삶에 의미와 권위와 목적을 주기 때문이다. 종교는 곧 신화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종교는 제도화되면서 몇몇 권력자들을 위한 권력의 시녀로서 조작되고 전락되는 불행한 속서과 어김없는 역사적 전절을 밝게 마련이지만, 그 원초적 의미는 반드시 인간의 신화적 충동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불교문학의 나가신앙은 비아리안계문화임이 명백해진다. 유대인들의 창세기설화에서도 뱀이 실락원의 주역이었듯이, 인도 아리안계통의 신화 속에서는 뱀은 인간에게 풍요로움과 사랑을 가져다주는 존재라기보다는 간악한 지혜로서 인간에게서 수중한 것을 빼앗아가고 파멸에 이르게 하는 존재로서 더 많이 형상화된다. 불교가 나가신앙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게 된 것은 바로 나이란쟈나강 유역 우루벨라의 토착적 나가신앙의 영향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크게는 간지스강 유역 평원으로부터 벵갈만 지역을 거쳐 캄보디아에 이르는 지역의 토착문화가 나가신앙의 토템벨트라는 사실이 인지되어야 한다. 

 

바콩

 

바콩이 중요한 이유는 바콩이야말로 향후 앙코르지역의 모든 거대한 신전의 모델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음식문화

 

반테이 스레이

 

프놈 바켕

 

압사라 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