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

[생명 가격표],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 연아람, 민음사, 2021, (220208)

바람과 술 2022. 2. 8. 00:34

1장 돈이냐, 생명이냐? 10

 

"인간 생명의 값은 얼마인가?"라는 언뜻 보기에 매우 간단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타인, 친구, 연인, 자식 또는 심지어 자기 목숨을 구하는 데 얼마를 지불할 의향이 있는지 답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 질문은 그리 간단치 않다. 이 질문에 답하기 어려운 이유는 사람의 생명을 가격을 매기는 방법이 우리가 생각하는 우선순위에 대한 꽤 많은 진실을 드러낸다는 사실에 있다. 이러한 가격표는 우리가 공정성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보여주는 지표로서 경제, 윤리, 종교, 인권, 법의 영향을 받는다. 한 사회의 가치는 이러한 가격표를 책정하는 방법과 가격 자체를 통해 드러난다. 생명의 가치를 매기는 데 쓰이는 방법은 가격 책정의 목적, 가격이 상징하는 것, 가격 책정에 채택되는 관점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2장 쌍둥이 타워가 무너지던 날 18

 

9.11 희생자 보상 기금 프로그램이 종료되었을 때, 여성 희생자들에게 지급된 평균 보상금은 남성 희생자들에게 지급된 평균 보상금의 63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9.11 희생자 보상금 산출 방식이 돈을 버는 것보다 가족을 돌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기로 선택한 사람들의 생명을 훨씬 더 낮은 가치를 부여한 것은 분명하다. 그뿐만 아니라 보수는 적더라도 더 큰 공익을 창출하는 직업에 종사한 사람들에게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이처럼 9.11 희생자들의 생명 가치를 매기는 산출 방식에는 여러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그렇다면 시도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은 없었을까? 당시 파인버그가 고안한 복잡한 알고리즘에 대한 확실한 대안은 하나였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사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바로 모든 생명에 동일한 가치를 매기는 것. 보상금을 정하기 위해 사망자들에게 가격표를 책정해야 한다면, 모든 사람에게 그냥 똑같은 가격표를 매겨도 안 될 것 없지 않은가? 이 주장에 담긴 논리는 간단하다. 인권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태어났으므로' 생명권, 자유권, 행복추구권에 대한 보장은 모든 이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2004년에 파인버그 역시 이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면서 자신의 저서에 "만약 다음번이라는 것이 있다면, 국회가 테러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금을 결정할 일이 또 생긴다면, 보상금 수혜 자격이 있는 모든 청구인들에게 동일한 액수의 비과세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이런 정책 지급 방법이 집행하기도 더 쉽고 수혜자들 간의 분열도 최소화할 수 있는데, 이는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예를 들어 소방관)이 다른 희생자(주식 중개인이나 금융인)의 생명 가치보다 낮게 평가되었다고 주장할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통계적 생명 가치의 구조, 데이터 획득 방법, 산출 방법에 내재하는 모든 논리적, 방법론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생명 가격표는 이 방법을 통해 얻어지고 사용된다. 이러한 통계적 생명 가치는 그 값이 굉장히 다양하고 얼마나 정확하게 산출되었느냐에 따라 큰 분산을 보인다. 연구자들이 어떤 응답이 분석에 적합한 것인가에 대해 제약을 두었는데도 이런 큰 분산도 나타난다. 동일한 산업재해사망 데이터 세트를 적용하여 산출한 621개 직군의 통계적 생명 가치를 검토했더니 상위 5퍼센트 값(3570만 달러)과 하위 5퍼센트 값(180만 달러)의 차이가 약 3400만 달러에 이르렀다.

 

현시 선호법은 임금에 기반한 방법의 정반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추가적인 리스크를 감수하는 데 사람들이 얼마나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하는가(수용의사)를 분석하는 대신, 현시 선호법은 사람들이 리스크를 줄이는 데 얼마만큼 돈을 지불할 용의(지불 의사)가 있는지를 조사한다.  

 

3장 ‘법 앞의 평등’은 없다 54

 

합의금으로 생명의 가치를 결정하는 일이 불공정의 여지가 있다는 사실은 다른 방식으로도 나타난다. 민사소송 판결의 일정 정도는 법적 대리인의 수준과 관련이 깊다. 부유한 개인이나 기업은 큰 액수의 보상금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배심원과 법리 논쟁을 가려낼 법률전문가 팀을 꾸릴 수 있다. 돈이 많은 원고와 가난한 원고가 고용할 수 있는 변호사의 수준이 크게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생명의 가치를 결정하는 일이 상당 부분 법적 대리인에 의해 좌우되는 사법제도를 과연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4장 생명 가격표가 수돗물의 수질을 결정한다? 86

 

편익과 비용을 설명하는 이런 정보규제국의 공식 권한은 매우 합리적이고 공정한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특별 이익 집단이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부 과정에 숨어 있다. 비용편익분석은 정치인, 관료, 업계 전문가, 특별 이익 집단에 휘둘려 쉽게 조작되고 왜곡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모두가 자신의 우선순위와 이익을 반영한 각기 다른 가정을 사용하기 때문에 비용편익분석에 사용되는 핵심 가정과 투입 변수가 기관, 연구자, 이권이 걸린 이들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비교편익분석에는 공정성, 삶의 질 등 정량화하기 어려운 요소들도 고려 대상이 되지만, 단지 수치화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러한 요소들은 거의 참작되지 않거나 때로는 완전히 무시된다. 그 대신 예방 가능한 사망의 수나 통계적 생명 가치처럼 수치화할 수 있는 가치들이 규제기관이 수행하는 비용편익분석에서 편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특별 이익 집단이 비용편익분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용편익분석의 복잡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1930년대 이후부터 미국의 규제 기관이 사용하고 있는 분석 도구 중 하나인 비용편익분석은 의사 결정이나 사업 및 정책에 수반되는 비용과 편익을 계산하여 비교하여 조직적 과정이다. 비용편익분석은 정립된 표준 방법론을 따르며 그 절차는 다음과 같다. ① 고려 대상인 규제(새로운 규제를 만들지 않은 대안 포함) 식별하기. ② 누구의 비용과 편익을 고려할 것인가 파악하기. ③ 측정 지표를 정하고 비용과 편익 목록 만들기. ④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용과 편익을 정량적으로 예측하기. ⑤ 모든 비용과 편익에 달러 가치를 부과하여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잠재적 영향을 금전으로 환산하기. ⑥ 시간의 흐름을 고려한 비용과 편익 할인을 통해 각 비용과 편익의 현재 가치 환산하기. ⑦ ⑥번의 항목을 정리하여 도입 가능한 모든 규제의 순 현재 가치 계산하기. ⑧ 민감도 분석 수행하기. ⑨ 제안하기.

 

비용편익분석은 생명을 구하는 일과 관련된 편익에 0이 아닌 할인율을 적용함으로써 노골적으로 미래 세대의 생명 가치가 현 세대의 생명가치보다 낮다고 가정한다. 이것은 위험한 가정으로, 자연스럽게 미래 세대의 이익이나 후생을 무시하는 근시안적인 결정으로 이어진다. 3%의 할인율에서는 오늘날 5000명의 사망이 100년 후 10만 명의 사망과 동일한 가치를 갖는다. 다시 말해 3%의 할인율을 적용하면 현 세대의생명의 100년 후 후대의 생명보다 약 20배나 거 다치 있다는 말이 된다. 통계적 생명 가치가 편익에 입력되고 나면 할인율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합리적 해결 방법이 있다. 바로 할인율에 대한 비용편익분석 결과의 민감도를 테스트하는 것이다. 민감도 분석의 표준 방식은 할인율에 다양한 변화를 주어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일정한 할인율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감소하는 할인율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미래 세대의 생명이 현 세대의 생명보다 가치가 낮게 평가되는 문제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하지만, 이 문제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는 있다. 

 

비용편익분석의 결함 중 하나는 통계적 생명 가치를 가장 중요한 투입 변수로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이제껏 확인한 것처럼 이 생명 가격표에는 엄청나게 많은 이론적, 실질적 문제가 따른다. 그러나 통계적 생명 가치의 추정치가 웬만한 사람들의 기대 소득보다 훨씬 높은 액수라는 장점이 있어 평균적인 재정적 영향을 기준으로 비용편인분석을 수행한 경우보다 통계적 생명 가치를 사용한 편익이 훨씬 높게 나타난다. 비용편익분석이 지닌 또 다른 결함은 통계적 생명 가치가 실제로는 위험이 증가하는 순간이 아니라 사망이 발생하는 순간을 의미하는 데 쓰인다는 점이다. 이는 통계적 생명 가치가 실제로는 위험이 증가하는 순간이 아니라 사망이 발생하는 순간을 의미하는 데 쓰인다는 점이다. 이는 통계적 생명 가치가 본래 사망 자체가 아니라 사망 위험의 증가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미 변경은 실제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통계적 생명 가치가 본래 뜻과 다르게 사용되면서 편익이 먼 미래에 발생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데다가 할인이 적용되면 그 크기마저도 급격히 작아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세 번째 결함은 할인이 적용되는 방식이다. 통계적 생명 가치가 입력되고 나면 인간의 생명은 돈으로 환산된다. 이렇게 돈으로 환산된 생명은 마치 복리가 적용되는 금융 투자 상품처럼 취급된다. 인간의 생명 가차에 할인을 적용하면 미래 세대의 생명이 현 세대의 생명보다 가치가 낮게 평가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네 번째 결함은 비용편익분석에 내재되어 있는 문제로, 정량화할 수 없거나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들이 자주 간과되거나 그 영향력이 미미하다는 점이다. 다섯 번째 결함은 비용 요소가 상대적으로 명확하고 과장되는 경우가 많은 반면 편익 요소들은 불명확하고 과소평가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여섯 번째 결험은 공정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새로운 규제가 도입되면 가장 많은 혜택을 누리는 이는 누구이고, 가장 큰 손해를 입는 것은 누구인지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일곱 번째 결함은 악용의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이는 규제안에 대한 비용 및 편익의 추정치가 분석을 수행하는 주체의 이해관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사실로 입증된다.  

 

5장 기업은 인간의 생명으로 이윤을 극대화한다? 118

 

6장 나도 할아버지처럼 죽을래요 152

 

지금까지 보았던 다른 종류의 생명 가격표와는 달리 생명보험에서는 공정성이 가격을 결정하는 데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생명보험의 생명 가격표는 소비자가 결정한다. 경제학자, 기업의 재무 분석가, 규제 기관처럼 타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가 더 큰 보장 범위의 보험에 가입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럴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그건 그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둘째, 생명보험은 경쟁 시장이 있다. 이는 경제 전문가들이 가격표의 추산치를 계산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가격표를 설문 조사로 추론하거나 사람들의 지불 의사를 통해 추정하는 통계적 생명 가치와는 달리 생명보험의 보험료는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가격표다. 셋째, 생명보험의 값은 사망 위험은 기준으로 한다. 한 사람의 사망위험을 계산하는 산출법은 수백 년 전부터 잘 알려진 단순 명료한 개념인 생명표를 기준으로 한다. 마지막으로, 생명보험을 판매하는 기업들은 공정성에 대한 우려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자신들의 상품이 공정하게 판매되도록 해야 할 의무도 없다.  

 

7장 생명 가격표와 삶의 질 172

 

8장 아이를 낳아도 될까? 206

 

9장 고장 난 계산기 234

 

오랜 구조 구호인 '여성과 아이 먼저'는 단순한 상투적 문구가 아니다. 타이타닉 호의 기록을 보면 누가 구명보트에 올랐고 누가 죽었는지 예측해 보는 데 성별과 나이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남성 승객은 20% 생존한 데 반해, 여성 승객은 74%, 어린아니 승객은 50%가 생존했다. 신분 역시 생존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는데, 일등석 승객의 62%가 생존한 반면, 일반적 승객은 41%, 삼등석 승객은 25%만 살아났았다. 

 

10장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264

 

우리의 생명에는 태어난 순간부터 죽은 순간까지 가격표가 매겨진다. 철학자들이 생명의 가치 평가 방법이나 자원의 공정한 배분을 설명하는 고상한 개념을 만들어 냈지만, 이런 개념들은 현실 세계의 생명 가격표와 매일같이 충돌을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