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나는 삐끼다], 이재현, 푸른미디어, 1998, (220518)

바람과 술 2022. 5. 18. 02:03

머리말

 

문화비평의 작업은 바르트가 말한 대로, 일상 현실에 만연된 '신화'의 허구성을 까발리는 것이다. 문화비평이란 결국 삶의 비평이고 삶의 기술이다. 문화비평이란 삶을 역동적으로 적극적으로 살아내기 위한 기술이고 지인 것이다. 

 

1. 난 아무래도 간첩인가 보다

 

난 '표에 의한 심판' 따위의 말도 안 되는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을 뿐더러, 또 이번 선거는 애당초 메뉴 자체가 맘에 들지 않았다. 골라 먹고 싶은 게 없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투표라는 형식 이외에는 정치적 선택이 불가능하다는 게 매우 불만이었다. 

 

폴 발레리가 아주 명쾌하게 지적한 것처럼, "정치란, 대중이 의당 자기와 관련되는 일에 참여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은 제도정치와 '민중'과의 휴먼 인터페이스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 번만이라도 사적인 것을, 제대로 추구해보다는 것이다. 자유주의라도 끝까지 밀고나가 보자는 것이다. 

 

김수영의 말을 빌자면, 모든 문화는 '불온'하다. 그건 도무지 건전할 수 없다. 문화적인 것은 상식에 의해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정상적인 것이란 고역 썩은 물에 불과하다. '정상'에 대한 '상식'은 늘 파시즘에게 빌미를 준다. 

 

2. 검열이 똥이다

 

어젠더 세팅이란 회의에서 토의 안건을 성립시키는 일을 가리키는데, 더 넓혀서는, 특정한 현상이나 사실을 사회적인 이슈나 문제로 부각시켜 내는 것을 말한다. 

 

검열의 문제를 현실에서의 모든 차별과 관련지어 애기하면, 논의가 확대되고 복잡하니까, 검열 자체만 가지고 우리가 따질 수 있는 문제의 범주를 나눠 보자. ① 우선, 다시 정치적 검열에 관해 말해 보자. 일체의 정치적 검열은 없어져야 한다. 검열의 권력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성과 폭력만이 아니다. 지배 권력 내지 지배 담론이 힘 안 들이고 쉽게 '반사회적, 반국가적, 반윤리적'이라고 낙인 찍어버리는 문제들도 대상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이런 문제들과 관련된 문화적 표현물에 대한 검열의 정당성 여부를 따지는 문제는 곧바로 정치적 검열의 문제로 넘어가 버린다. ② 그 다음, 정치적 검열과 풍속의 검열을 분리해서 다루자는 접근 방법에 관해서 말해 보자. 분명히, 양자는 개념적으로 서로 다른 것이다. 한국 사회의 경우 역사적으로 양자가 너무 깊게 서로 꼬여 있는 데다가, 공식적인 담론의 장에서는 검열의 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목소리만이 판쳐 왔다는 데에 큰 문제가 있다. 심지어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사람이나 집단조차도 풍속상의 검열에 대해서는 정치적 보수주의자와 다름없다. ③ 풍속의 문제에 관해서, 검열의 논리가 기대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아주 얄팍한 인식론적 인과론이다. 실제로 이 담론은 부수적으로 적지 않은 담론 구성물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실의 통념적 의미 작용을 거치면서 다른 크고 작은 담론들을 흡수해서 뒤섞여 있기에, 사실 깨드리기란 쉽지 않다 일단, 더 나누어서 따져 가야 한다. ③-1. 성과 폭력 그 자체와 그를 다룬 재현물의 구분 문제. 그러니까 현실 그 자체와 그에 대한 재현물의 구분 문제. 양자의 관련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 ③-2. 아주 노골적인 성과 폭력, 그러니까 예컨대, 표준적 섹스에 대한 이성애적 가부장제의 표상을 넘어서는 다양한 성적 차이들의 행위와 관계들을 용납할 수 있는가의 문제. ③-3. 성과 폭력을 다루되 용납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즉 에로티카와 포르노그래피의 구분 문제. ③-4. 성과 폭력이 주제상 복합적으로 연결된 내러티브, 혹은 이미지를 갖는 재현물의 문제. 즉 각각의 주제로 환원해서 따지기에는 정서적 부담이 너무 큰 범주의 문제. ③-5. 과연, 이 영향이 실증되거나 논증되고 있는가의 문제. ③-6. 수용자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 이를 테면, 몇 살까지는 되고 안 되고 하는 문제. ③-7. 재현물이 속한 장르나 매체의 차이에 따른 문제. ③-8. 재현물을 생산, 유통, 판매하는 사람의 의도와 목적에 관한 문제. 예컨대, 상업적이냐의 여부 그리고 성적 자극, 흥분 및 만족을 가져다 줄 목적이 있었느냐의 여부. ③-9. 재현물을 만드는 과정에 동원된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에 관한 문제. ③-10. 검열을 한다면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 즉 검열의 정당성과 합법성 그리고 절차, 수단 및 과정에 관한 문제. ③-11. 검열이 예외를 인정할 수 있는 범위의 문제, 즉 문학적, 예술적, 과학적, 학술적 목적이나 가치를 갖는 것이 '어느 정도' 안에서 인정될 수 있는가의 문제. ③-12. 검열의 특수한 형태로서 소위 등급제에 관한 문제.   

 

더 큰 문제는 국민의 통합이라는 사고틀 자체에 있다. '국민의 화합'이라는 것은 일종의 파시즘에 불과하다. 그것은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의 소산이며, 현존하는 다양성과 차이에 대한 공포심을 드러내는 것일 따름이다. 서로 다르게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야말로 참된 개성의 바탕이다. 어쩌다가 통합이 성취된 듯 보인다고 하더라도, 바로 그러한 착가과 허위 의식의 함정에 빠지게 되면, 현존하는 사회 문제들을 호도하고 간과할 수 밖에 없다. 국민 통합 운운하는 구호 밑에는 문화적 차이에 대한 공존은 불허하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차이란 억지로 통합되지 않는 것이며, 문화적 차이야말로 생산적이고 역동적인 힘이다.   

 

3. 놀지도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

 

4. 남과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