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들

바람과 술 2008. 6. 15. 04:11

참고 :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들]은 '1. 포이에르바하에 대하여'라는 표제 아래 1844~1847년의 맑스의 비망록에 들어 있다. 이 메모는 1888년에 엥겔스에 의해 처음으로 출판되었고, 게다가 엥겔스의 저서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전 철학의 종말]의 교정 단행본의 부록으로 출판되었다.

 

알립니다 :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들] 전문은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1], 김세균 감수, 박종철 출판사, 1991년. p185 ~ p189 의 전문을 수록한 것입니다.

 

칼 맑스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들]

1. 포이에르바하에 대하여

 

1. 지금까지의 모든 유물론(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을 포함하여)의 주요한 결함은 대상, 현실, 감성이 오직 객체의 혹은 관조의 형식 아래에서만 파악되고 있다는 것 ; 그리고 감성적 인간 활동으로서, 실천으로서 파악되지 않고, 주체적으로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능동적 측면은 유물론에 대립해서 관념론에 의하여-물론 관념론은 현실적 감성적 행위 자체를 알지 못 한다-추상적으로 발전된다. 포이에르바하는 감성적인 객체들-사유 객체들과 현실적으로 구별되는 객체들-을 추구한다 : 그러나 그는 인간의 활동 자체를 대상적 활동으로서 파악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그는 [기독교의 본질]에서 이론적 태도만을 진정으로 인간적인 태도라고 간주하며 반면에 실천은 오직 그 더러운 유태인적 현상 형태 속에서 파악되고 고정된다. 그러므로 그는 '혁명적', '실천적.비판적' 활동의 의미를 개념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2. 대상적 진리가 인간의 사유에 들어오는가 않는가의 문제는-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적 문제이다. 실천 속에서 인간은 진리를, 즉 현실성과 힘, 자신의 사유의 차안성을 증명해야 한다. 사유-실천으로부터 고립된-의 현실성이나 비현실성에 관한 논쟁은 순전히 스콜라주의적 문제이다.

 

3. 환경의 변화와 교육에 관한 유물론적 교의는 환경이 인간들에 의해 변화되며 교육자 자신도 교육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다. 그러므로 그 유물론적 교의는 필연적으로 사회를 두 부분-그중의 하나는 사회를 초월해 있다-으로 탐구하지 않을 수 없다. 환경의 변화 A(``)ndern[s]와 인간 활동의 변화  A(``)ndern[s] 혹은 자기 변화와의 일치는 오직 혁명적 실천으로서만 파악될 수 있고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4. 포이에르바하는 종교적 자기 소외라는 사실, 종교적인 세계 및 세속적인 세계로의 세계의 이원화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의 작업은 종교적 세계를 그것의 세속적 기초로 해소한 데에 그 요체가 있다. 그러나 세속적 기초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위로 올라간 구름 속에 하나의 자립적인 영역으로 스스로를 고정시킨다는 사실은 이러한 세속적 기초의 자기 분열과 자기 모순으로부터만 설명될 수 있다. 따라서 세속적 기초 자체가 자기 자신 안에서, 자신의 모순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뿐 아니라 실천적으로 혁명화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를 들면 세속적 가족이 신성 가족의 비밀로서 폭로된 이후에 이제 전자 자체가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파괴되어야 한다.

 

5. 추상적 사유에 만족하지 않는 포이에르바라는 직관[혹은 관조]을 추구한다 ; 그러나 그는 감성을 실천적, 인간적.감성적 활동으로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6. 포이에르바하는 종교적 본질을 인간의 본질로 용해시킨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은 각각의 개체 속에 내재하는 추상물이 아니다. 인간의 본질은 그 현실에 있어서 사회적 관계들의 앙상블 ensemble 이다. 이러한 현실적 본질의 비판 속으로 파고들지 않는 포이에르바하는 따라서 : 1. 역사적 과정을 도외시하고 종교적 심성을 그 자체로서 고정시키고 하나의 추상적-고립된-인간 개체를 전제하지 않을 수 없다. 2. 따라서 그 본질은 '유 類' 로서만, 내적이고 침묵하는, 많은 개체들을 오직 자연적으로 묶고 있는 일반성으로서만 이해할 수 있다.

 

7. 따라서 포이에르바하는 '종교적 심성'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 산물임을, 그리고 그가 분석하고 있는 추상적 개체가 하나의 특정한 사회 형태에 속함을 알지 못한다.

 

8. 모든 사회적 생활은 본질적으로 실천적이다. 이론을 신비주의 Mystizism[us]로 이끌고 가는 모든 신비들은 인간의 실천에서 그리고 이 실천의 개념적 파악 Begreifen에서 그 합리적인 해결을 얻는다.

 

9. 관조[직관]하는 유물론, 즉 감성을 실천적 활동으로서 개념 파악하지 않는 유물론이 도달하는 정점은 각각의 개체들 및 시민 사회의 관조[혹은 직관]이다.

 

10. 낡은 유물론의 입지점은 시민 사회이며, 새로운 유물론의 입지점은 인간적 사회 혹은 사회적 인류이다.

 

11.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다양하게 해석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