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미시마유키오 대 동경대전공투1969~2000],김항옮김,새물결,2006,(070303)

바람과 술 2008. 6. 15. 04:13

1부 미시마 유키오 대 동경대 전공투 1969년

 

눈동자 속의 불안

 

미시마 : ~ 나는 일본인의 안심해버린 눈속에서 뭔가 불안을 읽어내려 합니다. 테레즈 데케루는 여자지만 남자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군들과 나 사이에 어떤 공감이 있을까 하고 이야기하러 왔지만, 나는 결코 제군들의 지지자가 아닙니다. 제군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에 불 타 여기에 온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서로 상대를 이래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고 오늘은 이야기로 한판 붙어보고 싶습니다. ~

 

자아와 육체

 

미시마 : ~ 나는 어떻게든 육체의 확장을 꾀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해본 결과, 육체란 어떤 의미에서 정신과 비교해서 아주 보수적이라는 사실, 그리고 정신이란 얼마든지 첨예하고 진보적이 될 수 있는 반면 육체란 단련시키면 시킬수록 동물적인 자기 보존 본능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 이것이 육체에 대한 흥미로운 발견이었습니다. 육체란 그렇게 존재 자체 이외와는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며 존재 외부의 것은 아무것도 터치하지 않습니다. ~

 

타자의 존재란

 

미시마 : ~ 그래서 지금 타자와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데, 나도 타자라는 것을 원하게 되었습니다. 나도 전에는 소설가로서 오직 에로틱하게만 세계와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오에 겐자부로와 많이 비슷하죠. 이런 게 점점 싫어졌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하나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졌습니다. 당연히 대립을 낳게 되죠. 대립은 타자라는 일루전을 만들어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공산주의를 적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어디까지나 공산주의를 적으로 삼아 싸운다는 것, 공산주의를 주체성 있는 타자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

 

자연 대 인간

 

미시마 : ~  또한 발레리가 '질서란 반자연적 기획'이라고 했듯이, 서양은 자연과 인간의 대립 속에서 인간주의를 발굴해왔습니다. 그리고 서양 정신은 모두 자연이라는 애매모호한 것들에 대해 인간 의지를 통해 저항하고, 정복하고, 극복하여 완전히 새로운 질서로 재편하는 반자연적 행위에서 인간적인 의미를 찾아왔다고 생각합니다. ~

 

계급 투쟁과 '자연'으로 돌아가는 투쟁

 

미시마 : ~ 그리고 사물이 생산 관계에서 동 떨어져 전투 목적을 위해 쓰이고, 제군은 이를 통해 사물에 눈뜨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제군 자체의 존재도 생산 관계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런 일을 통해 제군은 생산 관계의 근본에, 노동 대상으로서의 자연에 도달하려고 것 아닙니까? 그러한 움직임이 제군들의 폭력의 본원적 충동 아닙니까?

 

게임 또는 유희의 시간과 공간

 

전공투 A : ~ 이 문제점을 C군은 유회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물 그 자체와의 만남, 즉 사물의 개체성이 갖는 여타의 관계성이 모두 사상되고, 사물 그 자체로 자기와 만나는 것, 그러한 순간에 느낄 수 있는 유희의 감각, 이런 것만을 목적으로 삼는 것, 아마 이런 일이 혁명으로 이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이에 반해 미시마 씨는 아까부터 시간을 열심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속되지 못한다고, 그렇죠?

 

지속과 관계 맺기의 논리

 

미시마 : ~ 두 가지만 질문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이름이 없는 세계, 즉 스스로 명명당하는 일 없이 - 이미 이름이란 하나의 전승이니까 - 이름 없이 세계에서 어떻게 관계 맺기가 가능한가를 묻고 싶네요. 그리고 목적론적 관점을 빼고, 목적론을 빼고 스스로 존재하면서 동시에 사물을 이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

 

천황과 민중을 잇는 멘탤러티

 

미시마 : ~ 왜냐하면 종전이 되기 전 쇼와 원년때의 천황 친정과 현재 말하는 직접 민주주의는 정치 개념상 거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이건 아주 공소(내용이 없고 짜이지 아니하여 허술함)한 정치 개념인데, 거기에는 하나의 공통 요소가 있어, 국민의 의사가 중간 권력 구조의 매개물을 거치지 않고 국가의지와 직결하는 것을 꿈꾸는 것이 그것이지. ~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사유 방식

 

미시마 : ~ 이건 약간 문제가 다를지도 모르지만, 미래를 부정형으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딱딱한 물상처럼 생각하느가에 따라 현재, 지금 여기에서의 행동 근거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미래로부터 불안을 느끼는지 아니면 과거로부터 불안을 느끼는지, 즉 키에르케고르의 불안의 근거는 어디일까를 나는 때때로 생각하곤 합니다. ~

 

관념과 현실에서의 '미'

 

미시마 : ~ 당신은 미를 미로서 완결시키기 위해 어떤 방법을 갖고 있습니까? 한번 이야기 해 보세요. ~

 

천황과 프리섹스와 신인 분리 사상

 

미시마 : ~ 왜 거기서 천황을 끌어들이는가 하는 정신 구조 말이죠? 음, 현재 일본의 정세론부터 시작할까요. 현재 일본에서는 여러분들 자신이 천황을 끌어들이지 않고는 공산당에 대항할 수 없습니다. 현 상태에서 논리적으로 말입니다. 나는 이전부터 그렇게 생각해왔습니다. ~

 

사물과 말과 예술의 세계

 

미시마 : ~ 그러니까 예술이란 단지 사물이라고 말하면 되지 않느냐는 겁니다. 사물, 즉 존재하는 사물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 예술 작품의 가치 문제가 개입되니까. 당신 사고방식에서는 가치 문제가 개입될 수 없어. 이미 현상 형태에서의 형태가 다릅니다. 그리고 형식도. 이를 개성의 확립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렇다면 예술은 확실히 그것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

 

'천황.미시마.전공투'라는 이름에 대해

 

미시마 : ~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관념에 이름이 붙지 않으면 관념은 관념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당신과 나의 본질적인 차이는 결국 이름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즉 사물에 이름이 있냐 없냐. ~

 

우리는 역시 적대하지 않을 수 없다

 

미시마 : ~ 그리고 나는 제군들의 열정을 믿습니다. 그것만은 믿습니다. 다른 것은 일절 믿지 않아도 그것만은 믿는다는 사실은 알아주기 바랍니다.

전공투 G : 그래서 공투할 겁니까, 말 겁니까?

미시마 : 지금 제안은 아주 묘한 꼬드김이라 아주 유혹적이지만, 나는 공투를 거부합니다.

 

사막의 주민들에게 보내는 논리적 조사 - 미시마 유키오

 

나는 힘을 행사하면서 사랑받는 힘, 지지받는 힘이고자 하는 생각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한 사고방식은 책임 관념을 누락시키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자기 속에서 책임을 포착하려면 악귀찰나가 되어 세상 사람들의 증오의 표적이 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도의의 변혁이 성공한 예는 없다. 자기만이 언제나 옳다고 봐달라는 것은 계집애의 논리가 아닌가.

하지만 그들은 시간을 비연속성으로 포착학 모든 과거와 기억으로부터 단절하여, 자유와 해방이 일순간의 해방구라는 공간에 충만할 것을 원하고, 단지 2, 3분 동안밖에 지속되지 않더라도 해방구가 노상방뇨로 흠뻑 젖기를 우너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비연속의 공간이 어떻게 미래로 이어질 수 있는가? 이것이 나와 전공투 제군과의 논쟁에서 흥미로운 논점이었다. 나는 과거를 하나의 연속성으로, 역사로, 전통으로, 그리고 현재를 과거의 최종적인 성과로 생각하며, 현재의 일순간에 전력을 투입하는 것이 과거와 역사와 전통의 최종적인 성과를 보증하는 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현재의 일순간 일순간에 대한 모든 정신과 육체의 투입은 결코 그 한 점에 머무르지 않으며, 자기를 현재로 이어주는 과거의 의식과 잠재의식, 자기가 속한 시대 등을 초월하는, 즉 근대적 사고나 의식의 모든 것을 초월하는 데까지 나아가서 현재의 결정이 성취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따라서 현재는 죽음을 위한 최종적인 성과이므로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래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미래에 대한 과거의 과정으로서의 자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아를 과정, 도구, 수단 또는 방법으로 생각하는 사고는 모두 허무하며, 자아는 있는 그곳에서의 성취물이자 성과이며, 바로 그곳에서 끝나야 한다.

나는 그들의 논리성을 인정하더라도 그들이 노리는 권력이 그다지 논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들이 적대하는 권력 자체의 비논리성이야말로 나 또한 싸워야 할 커다란 대상이라는 사실은 말할 필요가 없다. 내가 그러한 권력을 진정 논리적으로 만드는 일에 성공했을 때 3파 전학련 또한 그와 마찬가지로 진정한 적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닐는지?

 

미시마 유키오와 우리의 입장 : 금기와의 결별 - 동경대 전공투

 

혁명은 개체의 차원에서는 환상에 의해 지탱된다고 할 수 있지만, 환상으로는 혁명이 불가능함도 자명한 일이다. 스스로 정치를 말하고자 한다면, 스스로의 삶이 지상의 공동체의 관계성에 주박된 지점으로부터 보편화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정치가 출생하는 땅에서는 결코 의와 악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며 환상이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환상을 낳는 근거로서의 자기 삶과 공동체의 연관이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또한 정치 과정에서 등장하는 것은 지상의 공동체에 대한 여러 입장을 근거로 출생하는 정치적인 공동체인 것이다.

미시마의 태양이 천황이라면 나의 태양은 5월 혁명이 외친 선언, 즉 '명석함이란 태양에 가장 가까운 상처이다'라는, 자악 도달해야 할 이상과 진흙탕인 현실 사이에서 행위를 낳는 것이다. 비록 기성의 좌익 운동과 단절하는 지점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동경대 투쟁은 미완이며 하나의 서막이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처참함 백년 전쟁이 가까워 온 것을 예감할 수 있다.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는지 ...........

 

어떤 데마고고스의 패배 - 동경대 전공투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 육체만이 무장될 수 있다.

관계는 관계일 뿐이다. 인간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것인 이상 사물에는 어떤 힘도 미치지 못한다. 자기를 어떤 방식이든지 다른 것과 관계 맺지 않으면 존재의 공포를 견딜 수 없는 자의 환상은 국가를 낳고, 정치를 낳고, 관계에 의해 존재하고, 그리고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시간의 지속과 공간의 창출 - 동경대 전공투

 

인간이 사물의 절대성을 인식하는 것은 초월 지향에 의한 행동이 있고 나서이다. 그리고 만남이란 다른 사물, 질서와의 관계를 부정하고, 사물 그 자체와 직면하는 일이며, 그러한 직면을 형성하는 �가 되는 일을 통해 개인은 공간을 만들어 소유한다. 그때 육체와 정신은 일치한다. 존재는 회복된다. 이렇게 육체를 행사하라는 무거운 사슬을 끊고 육체 속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인간의 자유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즉시 대상에 흡수되어 자기가 외재화된다면, 다시 공간을 구할 일이다. 영구 혁명.

당연히 우리는 미래 지향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단순히 과거에 미래를 연결시키고, 과거로 남는 따위의 일은 하지 않는다. 있는 것은 현재, 그것뿐이다. 원래 과어에 사�바히는 것이 부르주아이다. 과거에 있던 그대로 존중하면서, 현재의 일순간에 모든 것을 건다는 미시마 씨 쪽이 더욱 모순이 아닌가?

 

2부 미시마 유키오 대 동경대 전공투 1969 ~ 2000

 

근대 비판 1 - 좌우 대립을 넘어서

 

근대의 초극 - 미시마 유키오 대 동경대 전공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