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리액션의 예술, 일본대중문화], 김필동, 새움, 2001, (080209).

바람과 술 2008. 6. 15. 06:18

머리말 - 일본 대중문화 제대로 알고 말하자

 

제1부 일본 대중문화가 밀려온다

 

일본 대중문화 평론가에게 드리는 고언 [김지룡.이규형은 '평론가'의 탈을 벗어라]

 

우리 사회도 한일문화교류라는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여 보다 성숙된 의식으로 일본의 문화 및 일본의 대중문화를 응시해야 할 때이다. 우리 독자들이, 소위 일본의 TV.연예뉴스나 섹스문화, 그리고 청소년들의 문화세계만을 대상으로 하여 그것이 마치 일본의 문화 내지는 대중문화 세계의 전부인 양 떠들어대는 일부 몰지각한 평론가들의 언어유희에 언제까지 현혹되어야만 하겠는가,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라는 새로운 상황의 전개가 그들의 뻔뻔스러움을 조장하고 그들의 주머니만 채워주는 비극적인 상황으로 이어진다면 이야말로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는가. 냉정하게 일본 대중문화의 실체를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할 때이다.

 

첫번째 이야기 대중문화란

 

두번째 이야기 일본 대중문화가 해부되고 있다

 

대중문화에 국경이 없다

:

일본 대중문화 개봉에 즈음하여

:

 

세번째 이야기 일본 대중문화 개방과정과 찬.반 논쟁의 허와 실

 

국교정상화 이후의 33년

:

앞서가는 대통령

:

개방의 폐해가 지적되고

:

정부는 움직이고 있었지만

:

우리의 준비는 과연 철저했는가

:

 

네번째 이야기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배경

 

일본의 대중문화는 1950년대 후반 일본의 경제부흥을 토양으로 본격적으로 생육하여 전후 일본의 고도경제성장의 주역들로부터 아낌없는 사랑을 받으며 그 지지기반을 넓혀왔다. 그러나 1980년대에 접어들어 대중문화 내부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기면서 청소년문화와 성인문화로 양극화되는 현상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에 접어들어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면서 청소년문화가 성인문화를 압도하는 형태를 띠고 있는 게 현재 일본 대중문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려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

정치적 고려

:

시차 없이 공유되는 일본 문화

:

우리 문화산업의 육성을 위해

:

전향적인 국민여론의 반영

:

 

다섯번째 이야기 일본 대중문화 완전 개방 이후를 생각한다

 

일본 대중문화의 특징

:

의연함과 냉철함이 필요하다

: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

 

여섯번째 이야기 정서의 충돌과 창조의 굴레에서

 

공생의 문화 창조를 위해

:

이미 운명의 배를 함께 탔다

:

문화적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

아픔을 감내하고 내일을 준비하자

:

 

제2부 이것이 일본 대중문화다

 

첫번째 이야기 일본 대중문화의 등장

 

대중문화의 개화

:

전후 부흥의 성공

: 일본의 경우 1920년대에는 이미 대중문화가 개화하고 있었다. '다이쇼 데모크라시'라는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백화점이나 빌딩이 난립하는 대도시가 출현하였고, 라디오방송이 개시되었으며, 카이조우샤가 발행한 1엔짜리 문학전집이 붐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의 대중문화는 소위 샐러리맨 사회와 가정의 중간에 위치하는 '가두'적 상황으로서의 출현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아직까지는 제한적 위치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전후 부흥의 성공

: 일본 사회에서 '대중문화'라는 용어가 생명력을 갖고 더욱 보편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후반부터였다.

대중문화의 만개

: 국민 다수의 의식생화의 개선과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가치관의 변화는 비로소 자신들도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해갈 수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보다 나은 생활에의 욕망을 품게 하는 등, 전반적으로 일본국민들로 하여금 삶의 의욕과 활력을 느끼며 패전의 멍에로부터 완전히 자신감을 회복해가도록 만들었다. 국민의 생활약식을 크게 변화시킨 TV, 냉장고, 전기세탁기 등. 소위 '삼종의 신기'로 불리워진 가전제품들이 일본사회에 급속히 보급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1950년대 중.후반 무렵부터이다. 나아가 전체 국민의 의식세세에 서서히 '여가'와 '여유'의 두 글자를 각인시켰다. 여기에 전후의 교육개혁에 의한 교육내용의 질적 전환과 교육수준의 향상, 교육 수혜층의 급속한 확대 등으로 인한 '대중교육사회'의 출현, 그리고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인한 다양한 정보의 신속하고 광범위한 전파, 그에 따른 다야안 '붐'과 유행의 창출. 이것이 문화의 대중화 현상에 박차를 가하면서, 바야흐로 '대중문화'라는 용어가 일본사회에 완전히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두번째 이야기 일본 대중문화의 보급

 

TV 시대의 개막

: 전후 일본 사회의 경제발전과 더불어 본격화되기 시작한 문화의 대중화 현상은 매스미디어의 다양화와 정보전달의 대량화에 의해 급속도로 진행되어 갔다. 그 중에서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역시 TV의 보급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NHK에 이어 1952년경부터 시작된 민간상업방송도 문화의 대중화 현상에 박차를 가하게 되고, 상업방송을 통해 전파되는 선전내용들은 소비문화를 부추기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TV가 현실적으로 일본인들의 생활양식을 크게 변화시키느 주역으로 등장하게 되면서 한편으로 '일억총백치화'도 선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활자문화의 대중화

: 문화의 대중화 경향은 방송뿐만 아니라 신문.잡지를 통해서도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스포츠신문들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관련 뉴스들을 집중적으로 보도해, 대중잡지와 더불어 이 무렵 대중문화 보급에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특히 1959년 현 천황의 결혼을 전후로 해서는 주간지 붐이 폭발하면서 그해에만 20여 개의 주간지가 창간되었다고 한다(미치붐). 문단에 있어서도 대중화 경향은 예외가 아니었다.

일본 영화의 대중화

: 일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가 최초로 상영된 것은 1899년 6월 20일 도쿄의 가부키좌에서였다. 그로부터 약 20여 년이 지난 1910년경부터 영화는 이른바 도시인들의 생활의 일부로서 자리잡기 시작하였고, 대중오락으로 빠질 수 없는 여가수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영화는 어른들의 여가수단으로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1940년대 후반부터 일본의 영화는 대중들의 일상 속에 깊숙이 침투하여 전후 대중문화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전후 최초의 영화로서 1945년 10월에 개봉된 <산들바람>의 주제가였던 '사과의 노래'는 폭발적인 인기를 모아, 당시 레코드 판매기록으로도 12만 매를 넘었다고 한다. 이 무렵부터 영화는 바야흐로 일본국민들에게 있어서 제1급의 오락문화로서 자리잡기 시작한다.

가요의 대중화

: 1914년 마츠이 스마코에 의해 불리워진 '카추사의 노래'는 일본 가요사에 있어서 두 가지 측면에서 획기적인 노래였다. 1. 작곡가인 나카야마 신페이에 의한 선율의 새로움 2. 매스미디어와의 결합. 이것은 바로 대중가요가 레코드나 라디오 등의 매스미디어와 전략적 결합을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의 대중가요는 이러한 미디어 매체와 분리해서는 생각해 볼 수 조차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각 분야에서 국민들의 사랑과 성원 속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일본의 대중문화는 2차대전의 패전으로 인해 침체되어 있던 국민들의 감정에 새로운 의욕과 활기를 불어넣었고, 고도성장과 더불어 그칠 줄 모르는 성장을 거듭해나갔다.

 

세번째 이야기 일본 대중문화와 워커호릭세대

 

일본 패전 이후 신문지면에서 '휴일 노이로제'라는 용어가 자주 보이는데, 일본인들이 지나치게 근로의욕에 사로잡혀 모처럼의 여가가 주어져도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정신적인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음을 지적한 후,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면 평소부터 여가를 활용할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고까지 지적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워커호릭인가

:  

대중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들

:

대중문화를 융성을 주도한 주체들

: 이 무렵 대중문화의 향유자이면서 대중문화의 융성을 주도한 주체들이 과연 누구였을까? 그 주체는 바로 다름 아닌 전후 경제부흥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여 노력한 사람들로 20~30대를 주류로 하는 도시근로자였다. 요컨대 전후 민주주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여 일본 사회의 주툭을 이루고 있언 20~30대의 계층은 일과 여가문화를 적절히 구분하며 결코 퇴폐적이거나 향략적이지 않으면서 전후 일본의 대중문화의 주체적 담당자로서 자리잡고 있었고, 그들에 의해 일본의 대중문화는 확실히 지지층을 형성하며 성장가도를 달리게 된 것이다.

 

네번째 이야기 일본 대중문화와 샐러리맨들

 

전후 일본 경제는 고도성장기에는 농촌에서 도시로 젊은이들이 대규모 인구이동이 일어났다. 1960년부터 1975년에 걸쳐, 약 1천500만 정도가 도쿄.오사카.나고야의 3대 도시로 유입되었다. '일본의 전후 고동경제성장은 이 시리즈와 함께 시작하여 이 시리즈로 끝났다'고 일컬어지는, 소위 '샐러리맨 영화'의 탄생을 보면 더욱 명료해진다. 무엇보다 이 시리즈의 성공은 전후 부흥에 매진한 샐러리맨들의 애환을 여과 없이 전달함으로써 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는 데 있다.

대중문화는 리액션의 예술이다

: 1960년대 샐러리맨 시리즈가 대중들의 적극적인 지지 속에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었던 것은 대중들의 열화 같은 리액션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섯번째 이야기 일본 대중문화와 지지기반의 변화

 

패전 직후, 자신들이 미국에 비해 확실히 열등한 나라라는 사실을 강하게 인식한 일본인들이 많았다.이로 인해 믹구의 점령정책이 이루어지고 있던 당시 미국 문화를 대하는 일본인들의 의식은 가히 '숭배'에 가까웠다. 다시 말해 당시 일본에 있어서 미국은 바로 자신들이 도달해야 할 '이상적인 나라' 그 자체였던 것이다.

미국 병사의 감동

:

대중문화의 지각변동

: 땀과 피의 결실로 일본의 풍요로움을 구축한, 그러면서 동시에 전후 대중문화의 흐름을 주도하던 주체적인 세대들은 이제 물러나고 1980년대 이후 속성의 변화와 함께 대중문화를 향유하는 주체도 점점 청소년층으로 바뀌기 시작하게 된다. 이로 인해 1950~60년대를 거치면서 각 분야에서 폭넓은 대중들의 지지를 획득하며 성장해온 대중문화도 1980년대에 접어들어 서서히 '탈대중화' 현상을 보이면서, 그 존재기반에도 큰 변화를 불러오게 된다. 소위 마니아층이나 청소년을 중심으로 한 세력에게로 무게 중심이 옮겨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여기세 컴퓨터 문화의 급격한 보급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만화시자으이 급신장, 훼미콘 소프트의 폭발적 인기 등이 기존의 대중문화 속에서 청소년문화가 차지하는 비중을 점점 더 확대 강화시키고 있다.

대중문화지지 기반의 변화

: 이러한 변화를 바탕으로 일본의 대중문화는 1980년대를 기점으로 소위 '성인문화'와 '청소년문화'로 양분되는 경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두 문화간의 괴리감도 갈수록 심화되어 오늘날에는 상호이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으로 치달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섯번째 이야기 일본 대중문화 속의 십대들

 

풍요를 만끽하는 십대문화의 부상

: 1970년대 후반부터 끝없는 풍요로움 속에 사춘기를 보냈고 대량소비문화라는 거대한 파도를 뒤집어쓰면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세력으로 성장하였으며, 그들의 문화는 워커호릭세대가 주도한 기존의 성인문화 속의 종속적인 문화로 여겨져, 대중문화 전체에서 그다지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는 인스턴트 문화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다. 적어도 기성세대들의 인식에서 보면 기존의 정상적인 소비세계로부터 궤도를 이탈한 불량스러운 청소년들의 특이한 소비문화로 밖에 비춰지지 않았던 것이다.

10대 문화의 파괴력

:

스포츠문화의 지각변동

: 과거 스포츠계를 주름잡았던 스타들의 2세들이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한 것도 특기할 만한 일이다.

10대 문화의 병리

: 각 분야에서 10대 스타들이 대중문화의 중심에 떠오르고 그들을 추종하는 소년소녀들이 1980년대 대량소비와 새로운 대중문화의 중심에 서게되면서 갈등도 적지 않게 표출되었고, 10대들을 둘러싼 사회병리현상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비록 일본의 대중문화 속에서 청소년문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조금씩 높아져 현재에는 일본대중문화의 주류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는 하더라도, 그들의 문화가 일본대중문화의 전체상은 결코 아니다.

 

일곱번째 이야기 일본 대중문화 속의 Sex와 Sports

 

터부로부터의 해방 - 성 의식에 일대 변화가 일어나고

: 가정에서의 여성들의 가사노동의 경감, 그로 인한 여성들의 사회진출의 확대는 여성들의 지위향상으로 이어졌고 의식에도 상당한 변화를 불러오기 시작했다. 전후 최대의 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켰던 '안보투쟁'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던 1960년 6월 25일, 이케다서점에서 출판된 한권의 책은 일본사회에 성의식의 혁명을 불러일으키며 최대의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일본적십자사 산부인과 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의학박사 샤곳 캔씨가 쓴 [성생활의 지혜]라는 책이 그것이다. 샤곳 캔씨는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나의 섹스 스타일이 이상한 것이 아니냐'라는 상담이 급증하는 현상을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본 성문화의 전면 개화

: 1960년을 전후로 하여 일본의 대중잡지가 폭발적인 붐을 이루고 있을 때 누드 사진을 게재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대는 변화여 196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세미누드를 [헤이본펀치]라는 잡지에 선보인 것을 계기로 대중잡지에 탤런트들의 누드사진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접어들면서부타는 포르노영화의 유행과 함께 포르노배우의 과감한 노출 사진들이 주간지를 지배하기 시작했는데, 여대생들의 누드사진도 선보이기 시작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196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일본사회에서 성에 대한 개방적 기운이 사회전반에 걸쳐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영화계에서 성에 대한 개방적 기운이 일기 시작한 것은 패전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태양족 영화는 노출이 심하다거나 성행위의 표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젊은 청년들의 여성에 대한 공격적인 태도가 긍정적으로 묘사되면서 문제를 낳아 남녀간 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970년대 중반에 접어들어 성기의 노출과 직접적인 성행위의 타당성 여부를 놓고 일본사회에 일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마침내 영화에 있어서 성 표현의 전면 개화를 이끌어내게 된다. 1968년 4월 아사히TV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와이드 모닝쇼'에서 공중파 방송으로는 처음으로 '섹스코너'를 설치하여 성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사회적 환경의 변화로 인해 성 문제가 국민들의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을 때 공중파가 국민들의 욕구를 과감하게 흡수함으로써 일거에 국민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던 것이다. 공중파에 의한 성 문제의 적극적인 접근은 적어도 일본의 여성들에게 성은 더 이상 음지에서나 거론되는 부끄러운 것, 혹은 창피한 것은 아니라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주었고, 일본 사회에 전반적으로 성 해방 사상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성 개방의 끝은 어디인가

: 최근 일본 사회에서는 성적 쾌락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것에 대한 혐오심리로서 '섹스리스'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만, 이러한 현상은 또 다른 부작용을 잉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인과 스포츠문화

: 1964년 도쿄올림픽 여자배구전 소련과 일본의 경기, TV 시청률 85%.

일본의 프로야구

:

열도를 움직이는 교진군

:

별들의 향연에 열도는 술렁이고

:

on신화"는 이렇게 탄생했다

:

선동렬의 열도 입성, 그리고 교훈

:

 

여덟번째 이야기 그때 일본은 울었다

 

일본 영화계의 '천황' 쿠로사와 아키라

:

미소라 히바리와 쇼와의 종언

:

 

아홉번째 이야기 일본인들의 대중문화 사랑

 

'선생님'을 존경한다

:

대중문화인을 기념하는 풍토

:

 

제3부 일본 대중문화, 그리고 한국

 

첫번째 이야기 대중문화가 일본 사회에 남긴 폐해

 

고도경제성장의 그늘

: 일본의 대중들은 전후 일본 사회에 정착된 관리사회의 부작용과 그것이 갖고 있는 억압적인 관리체제로부터 일탈하기 위한 몸부림을 시작했다. 이러한 대중들의 해방욕구는 1960년대 고도경제성장의 주역들이었던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흘린 땀의 대가를 마치 물질로 보상받기라도 하겠다는 듯 철저한 소비문화에 젖어들게 만들었다.

비판의식의 상실

:

대중문화의 저속질주

:

매스컴의 광란

:

 

두번째 이야기 일본 대중문화가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는 것

 

우리가 알아야 할 것

: 1. 일본의 대중문화는 일본의 고도경제성장과 더불어 융성하여 1970년대 후반부터 그 성격을 달리하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항상 국민과 호흡을 같이하며 성장발전 해왔다는 것이다 2. 일본 대중문화는 일본 사회로부터 매우 존중받는 세계로 자리잡아왔다는 것이다 3. 일본의 대중문화계는 대중들의 욕구와 그들이 이 시대에 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파악하여 그것을 적극적으로 반영함으로써 대중들의 확실한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4. 일본의 대중문화계는 각 분야에서 스타의 계보를 형성하여 지속적으로 스타를 양산해내고 있으며, 그 떠오른 스타를 통해 대중문화의 중단 없는 발전을 추구하고 아울러 그 지지기반을 재생산해가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5. 일본 대중문화의 각 분야에서는 스타를 의식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6. 일본 대중문화계를 대표하는 스타들은 자신의 활동 무대를 벗어나서 정치나 경영일선에 뛰어드는 일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7. 일본의 대중문화계는 일본 사회에 엄청난 경제적 파급효과를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세번째 이야기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의 대중문화 사랑

 

'딴따라' 예찬론이 필요하다

:

대중문화의 발전을 가로막는 외압의 존재

:

대중문화인들의 의식의 문제

:

대중문화가 떠오르고 있다

:

 

네번째 이야기 한국 대중문화가 주목받고 있다

 

<쉬리>는 말하고 있다

:

 

다섯번째 이야기 한일 대중문화 교로는 어떤 의미를 던지고 있는가

 

'아시아의 문화'를 창조할 것이다

:

정치.경제교류의 질적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

 

여섯번째 이야기 한일문화교류와 천황의 방한 문제를 생각한다

 

정부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

정부는 좀더 냉정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