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중적 감수성의 탄생 : 도박,백화점,유행],강심호,살림,2005,(080518).

바람과 술 2008. 6. 15. 06:24

식민지 조선의 마지막 출구, 도박

 

놀이와 도박 그리고 자본주의

: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할 것은 바로 자본주의적인 사회에서의 도박이다. 즉, 도박이 단순한 놀이와 향락이 아니라 적극적인 생계의 수단 혹은 성공의 도구로 파악되는 상황은 이 땅에 자본주의적 경제체제가 도입되었던 시기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노름 - 과도기 사회의 운명적인 삶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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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도박 -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자그마한 틈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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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화된 도박 - 욕망의 관리된 배출구

: 수익 발생에 대한 합리적 계산과 전망이 없이 무분별하게 투자가 이루어지고 그로 말미암은 손실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면, 이러한 손실은 단순히 손해 당사자의 '개인'문제를 넘어서서 '자본'의 효율적인 유통과 관린의 측면에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양산하게 된다. 그 때문에 자본주의 국가는 도박을 '이중적 제도화'의 과정을 통해 통제한다. 즉, 사적 영역의 오락성 도박을 제외한 나머지 도박은 형법으로 금지시키고 합법적인 영역에서 투기를 막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적인 보완을 하는 반면, 국가가 운영하거나 허용하는 도박은 탈범죄화 시킨다. 막대한 재정적 수입을 얻을 수 있는 도박을 산업의 한 형태로 양성하는 한편, 그에 따른 문제는 모두 개인의 자제력과 선택의 측면으로 돌림으로써 문제를 은폐하는 성향을 띤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에서 일반 대중들에게 주어진 희망이란 이렇게 가느다란 행운에의 희망일 뿐이다. 기회가 도처에 널려있는 듯하지만 그 기회는 아무에게나 돌아오지 않는다. 

도박성 - 식민지 자본주의의 한 양상

: 식민지 시대에 조선인들의 사업이란 그 역시 투기성을 동반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자본주의의 뚜렷한 특성이 아닐까. 우리 문학에서 토지를 바탕으로 한 전근대적인 치부 외에 자본주의적인 정신을 드러낸 작품이 드문 것은 바로 이러한 식민지적 자본주의의 특성인 도박성(투기성)에 기인한 때문은 아닐까.

 

유행, 대중적 감수성, 문학의 변모

 

유행의 힘

: 식민지 시대 유행의 힘은 당대 사람들에게도 놀라운 것이었던 모양이다. 유행은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다가와서 어느 틈엔가 욕망을 설득하여 거기에 추종하게 만든다. 논리적이거나 이서적인 방식으로 계몽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의 형태로 우리의 감각 속에 각인되는 방식으로 욕망을 설득한다. 그것은 상품의 형태로 우리에게 꿈과 함께 주입되며, 유토피아나 신분상승 달콤한 낭만 등의 환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는 마침내는 우리 모두를 일정한 삶의 패턴으로 포섭하게 된다. 식민지 시대 1920년대 말부터 불기 시작한 본격적인 유행의 물결은 1930년대에 들어와서 더욱 거세어졌고, 많은 사람들이 그 유행에 따라 조금씩 변해갔다. 원래 자본이라는 것은 공간적으로 끝없이 시장을 창출해가지만, 삶의 미세한 영역 하나하나에서도 시장을 만들어낸다. 유행은 사람의 외양만을 바꾼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자아까지도 변모시킬 만큼 놀랍고도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유행은 당대 사람들에게 삶의 모델을 제시했고, 그 패턴에 따라 무섭게 사람드을 변모시켰다.

거리의 패션, 여학생

: 1899년 김윤창의 딸이자 윤치호의 부인인 윤고려가 양장을 한 것이 양장스타일의 효시가 된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화려한 양장차림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지만, 이런 스타일은 아직까지 유행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아주 희귀한 옷차림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유행 스타일은 대부분 여학생들에게서 비롯한 것이었다. 이 당시에 가장 주목할 만한 유행의 형태는 여학생들의 머리 모양일 것이다. 이런 여학생들의 스타일은 대중적으로 크게 주목받았고 기생들도 여학생 복장을 흉내 내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유행은 맹목적인 영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즉, 상품경제가 서서히 정착되면서 싹튼 소비문화가 대중적으로 확산되면서 그 변화의 속도도 정신없이 빨라졌으며, 유행도 점차 사치스럽게 변해가게 되었다. 개화기 이래로 1930년대까지 여학생은 유행을 선도하면서 주변의 온갖 사람들에게 일정한 삶의 패턴을 전파하는 거리의 패션리더였다. 하지만 1930년대에 이르면 이들은 새로운 정신의 선각자로서의 유행 선도자로서가 아니라, 돈만 있으면 구매할 수 있는 사치품이나 장식품을 걸친 상품으로 인식된다. 

대중적 감수성의 형성

: 1930년대 이르면 신문과 잡지의 성격이 상업적으로 현저히 변질된다. 각 신문사들이 증면 경쟁을 벌인 이후 동경이나 대판(오사카) 등지의 상품광고를 유치하기 위해 광고주들에게 선심공세를 펼치는 등 경영의 합리화를 내세우면서 상업주의로 나아갔다. 잡지 역시 동인지 형태를 벗어나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생활정보를 빙자하여 화장품 고르는 법, 우산 빠는 법, 옷 입는 법, 다이어트 등이 총망라되어 있으며, 향수광고 등의 광고가 여성들의 눈길을 유혹하고 있었다. 지금의 패션잡지와 다를 바가 없다. 잘 모르는 사람의 외양을 곧바로 영화배우의 이미지와 비교해서 묘사하는 대목은 1930년대 영화의 영향력을 드러냄과 동시에 당대의 유행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영화와 잡지가 유행을 전파하는 소비문화의 첨병이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미지'를 살포하는 기능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사진의 발달이라는 측면을 유행과 관련해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사진 이전에는 사람이나 장소 또는 사물의 모습이 저마다 고유한 물질적 실체에 꼼짝없이 매여있었다. 사진으로 인해 이미지가 사물 자체보다 더 중요해지고 급기야 사실상 사물을 폐기할 수도 있게 되었다. 표면이 객관적인 그 자체의 생명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형태는 물질과 분리되었고 외관과 실체 사이의 연관성이 끊어지게 된 것이다. 이제 물질의 본질 자체보다는 표면이 주도권을 갖게 된 것이다. 그와 동시에 물질의 본질적인 부분인 '사용가치'도 끝장을 보게 된다. 사용가치는 그저 교환가치, 그리고 기호가치를 뒷받침해주는 허상으로 기능할 뿐이다. 1930년대의 영화와 잡지는 사진에서 비롯한 이와 같은 이미지의 힘을 당시 대중들에게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 

문학작품에 삼투한 대중적 감수성 - 이효석의 경우

: 1930년대를 전후해서 신문이나 잡지 광고에서 두드러진 변화는 등장하는 사진이나 삽화에서 이전의 동양적인 여성이 서구적인 체형과 외모를 갖춘 여성들로 변화한다는 점이다. 시각적인 정보를 통해 본질을 재구성하는 것은 바로 이미지의 효과다. 본질과는 무관하게 분리된 표면들의 조합이 다시 본질을 재구성해서 상상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스타일이 '교양'있음을 연상시키는 것이 바로 상품이나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상상영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1930년대의 대중적 감수성은 '외관에 대한 집착'과 '깨지기 쉬운 자아가 상품의 소비와 결합'되어 있는 형국이었다. 상품과 광고, 그리고 대중매체가 만들어내는 매끈한 표면의 이미지들은 유행의 형태로 1930년대 사람들의 삶에 스며들어 내적인 측면을 침식시키고, 주체를 새롭게 변모시켰던 것이다. 

 

백화점과 소비의 몽환극

 

진고개로 몰려드는 사람들

:  1930년대의 서울, 즉 경성은 일제의 도시계획에 따라 새로 확충된 도로로 인해 공간적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북촌이라고 불리는 조선인 거주 지역과 남촌이라고 불리는 일본인 거주 지역이 그것이다. 그리고 북촌과 남촌을 중심으로 종로와 본정(명동)이라는 두 상권이 형성된다. 그런데 이 당시 종로의 상인들은 큰 고민에 빠져 있었다. 사람들이 엄연한 조선인들이 운영하는 상점들을 놓아두고 굳이 전차를 타고, 일본어를 제대로 못해서 벙어리 행세를 해가면서도 진고개로 달려가 물건사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물건 자체가 상품의 가치가 되지만 점차 품질이 중요시되고, 그러다가 기술이 발달해서 품질이 평준화되면 그 다음으로는 상품을 둘러싼 분위기(브랜드, 기호가치)가 상품의 가치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

백화점의 유혹

: 1930년대 경성에는 1932년 1월 종로 네거리에 동아백화점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일본인 상인들이 설립한 미쓰코시(삼월), 조지아(정자옥), 미나카이(삼중정), 히라타(평전) 백화점 등 4개의 백화점이 있었다. 물론 모두 일본인 상가 지역에 밀집해 있었다. 이 백화점들로 인해 본정, 즉 진고개는 이미 1920년대 말부터 '불야성을 이룬 별천지'였다. 게다가 백화점은 꼭 상품을 사지 않더라도 구경거리 자체를 제공한다.

민족백화점의 탄생

: 1932년 조선인에 의해 화신백화점과 동아백화점이 개점된다. 이 두 백화점의 등장으로 꽤 많은 조선인들은 불편한 마음으로 일본인 백화점을 찾는 대신 맘 편하게 '민족백화점'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민족백화점'의 강조는 상업전략의 하나였을 뿐이다(화신백화점 박흥식의 경우 적극적인 친일파였음). 조선인이 화신백화점을 이용한다는 사실은 다만 심리적인 만족일 뿐이었다.

상품을 둘러싼 기호의 소비

: 백화점의 쇼윈도우는 새로운 유행을 전파하는 공간이 되었다. 광고와 함께 도시에서 우리 소비활동의 흐름의 중심이 되는 쇼윈도우는 유행의 논리를 끊임없이 전파하여 전 사회를 균질화시키는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장소다. 자본주의적 상품경제는 이처럼 유행과 대중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욕망을 표준화한다. 그리고 상품의 소비를 통해 표준화된 욕망을 충족시키도록 요구한다. 

가장(假裝)하고 나타난 근대의 메이크업

: 백화점을 진정으로 소비할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일 뿐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소수들이 만들어 내는 욕망의 표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값싼 세일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대리 충족할 뿐이다.

계산된 몽환극

: 백화점은 구매 활동의 성질뿐만 아니라 상품을 둘러싼 정보의 성질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그것은 '소비자 라이프스타일'의 출현과 함께 인격과 사물 간의 새로운 상호작용의 방식을 만들어 낸다. 그 안에서 소비자들은 이국적인 세계와 소비재의 환상적인 표현을 흡수하면서 '자유롭게 떠도는 욕망'을 자극받게 되는 것이다. 근대적 소비사회에서 소비란 단순히 상품의 사용가치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상품에 부여된 행복, 분위기 등의 기호적인 의미를 소비하는 것이다. 

도시풍경의 은유적 소묘

: 근대적인 도시풍경이 약속하는 풍요와 에로틱한 정취의 인공낙원은 당시 식민지인들, 특히 인텔리에게는 일상의 영역이 아니라 헛된 가상이자 기만적인 약속일뿐이었다. 

재난의 그림자가 드리운 도시적 삶

 

소비문화의 확산과 '구별 짓는 주체'의 등장

 

이념의 상대화와 신성한 대체물 찾기

문화영역의 변질로 인한 대등욕망의 세속화

: 원래 자본의 힘은 교묘한 방식으로 문화영역을 경제영역으로 환원시킨다. 정통취향의 구조를 규정하는데 경제자본(산업, 기업, 금융 부르조아지와 관련되며 일반적으로 지성용 취향)이 지배할 것인가, 문화자본(근대예술, 고급용이며 성찰적이고 우주론적인 정통이 정당화되는 부르조아 지성인의 취향)이 지배할 것인가의 문제를 부르디외는 '위계들의 위계(hierarchy of hierarchy)라고 칭했다. 이때 경제적인 자본, 그러니까 금전의 힘이라는 것은 문화자본으로 직접 환원될 수는 없다. 따라서 경제자본은 문화자본을 취득하기 위해 높은 배당금을 지불해야 한다. 나름대로 투자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소비문화의 확산과 '구별짓기 주체'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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