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머무르다

창덕궁

바람과 술 2008. 6. 15. 15:06
 

창덕궁(昌德宮) : 창덕궁은 태종 5년(1405년) 정궁인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지어진 조선의 궁궐이다. 임진왜란(1592 ~ 1598년)으로 서울의 모든 궁궐이 불탄 후, 경복궁은 불길하다는 이유로 고종 2년(1865년)까지 폐허로 방치되었으나, 창덕궁은 광해군(1608 ~ 1623년) 때 곧바로 재건되어 가장 오랫동안 실질적인 조선의 정궁으로 사용되었다. 평지에 지어진 경복궁의 주요 건물들이 남북을 축으로 하는 일직선을 따라 엄격하게 배치된 데 비해, 산자락에 자리잡은 창덕궁의 건물들과 정자들은 산의 지형지세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다. 창덕궁은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점(영친왕과 이방자 여사가 일제 식민지 시대에도 거주하고 있어서 일본에 의한 고의적인 훼손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다)과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가 뛰어난 점이 인정되어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창덕궁 주요 볼거리

 

돈화문(敦化門) : 창덕궁의 정문으로 태종 12년(1412년) 처음 지어 졌고 광해군 원년(1609년)에 중건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궁궐의 정문 중 가장 오해되었다. '돈화'는 백성을 가르치어 감화시킨다는 뜻이다.

인정전(仁政殿) : 창덕궁의 으뜸되는 건물이다.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왕의 공식적인 행사를 거행하던 의식의 공간이다. 인정전은 태종 5년(1405년) 창덕궁을 조성할 때 세워진 후, 임진왜란으로 불타 광해군 1년(1609년)에 복원되었다. 현재의 인정전은 순조 3년(1803년)의 화재로 그 이듬해 재건된 것이다. 또한, 순조 1년(1908년) 내부의 일부가 서양식으로 고쳐 졌다. 인정전의 정문인 인정문은 인정전과 함께 세워졌으며 현재의 것은 화재로 불탄 것을 순조 3년(1803년)에 재건된 것이다.

선정전(宣政殿) : 선정전은 임금의 집무실이다. '선정'이란 정치를 베푼다는 뜻이다. 선전정이 처음 지워진 것은 세조 7년(1461년)이다. 임진왜란을 포함한 여러 차례의 화재로 불타 인조 25년(1647년)에 재건되었다. 현재 궁궐에 남아 있는 유일한 청기와 건물이다.

희정당(熙政堂) : 처음에는 임금의 침전으로 사용되었으나 나중에는 임금의 집무공간으로도 사용되었다. 지금의 희정당은 원해의 모습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인 1917년 화재로 소실되어 1920년 경복궁의 왕의 침전인 강녕전을 헐어다 지어 졌다. 이 때 내부의 일부는 서양식으로 꾸며 졌다.

애련지(愛蓮池) 지역 : 애련지는 언제 만들어 졌는지 알 수 없고, 애련정은 숙종 18년(1962년)에 세워졌다. '애련'이란 준자의 덕으로 상징되는 연꽃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애련지 옆의 돌로 된 문은 불로문(不老門)이다. '불로'란 늙지 않는다는 뜻으로 임금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연경당(演慶堂) : 원래 이 집은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가 아버지인 순조의 덕을 칭송하기 위한 존호를 올린 것을 기념하기 위해 순조 28년(1828년) 지어 졌다. 이 집은 대궐에 있으면서도 단청이 되어 있지 않고, 사랑채와 안채로 남녀의 공간이 구분되어 있어 조선시대 사대부 집을 연상시킨다.

낙선재(樂善齋) 지역 : 이 지역에는 왼쪽부터 차례대로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가 있다. 본래는 세자의 거처인 동궁이 있던 자리이다. 낙선재는 헌종 13년(1847년) 임금의 거처로 지어 졌다. 낙선재는 헌종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며 책을 볼 수 있게 지어진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었다. 대궐에 있는 집이면서도 사치스러움을 경계하여 단청을 하지 않았다. 또한, 낙선재는 창덕궁에서 가장 최근까지 사용되었던 건물로 영왕의 비인 이방자 여사가 1989년까지 이 곳에서 생활하였다. 석복헌은 헌종 14년(1848년) 지어 졌다. 헌종의 후사를 위해 간택된 경빈김씨가 임금과 대왕대비를 가까이서 모실 수 있도록 헌종의 침소인 낙선재와 대왕대비의 침소인 수강재 사이에 지어 졌다. 수강재는 정조 9년(1785년) 지어 진 후, 헌종 14년(1848년) 육순을 맞이했던 헌종의 할머니 순원왕후의 거처로 고쳐 졌다. 수강재의 뒤쪽 언덕에 보이는 정자는 취운정이다. 숙종 12년(1686년)에 지어 졌으며, 이 일대의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부용지(芙蓉池) 지역 : 부용지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동양의 전통적 우주관에 의해 조성된 연못이다. 사각형의 연못은 땅을 의미하며, 가운데 둥근 섬은 하늘을 상징하고 있다. 두 다리를 연못에 담그고 있는 부용정은 사방으로 지붕이 돌출된 열 십자 형태의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부용정은 맞은편 언덕 위에 자리잡은 이 층 집은 주합루로 정조 즉위년(1776년)에 지어 졌다. 원래 일 층에는 규장각이 있었다. 주합루와 규장각은 학문연구 기관인 동시에 임금이 지은 글이나 글씨 및 임금의 초상화 등을 보관하던 곳이다. 현재 걸려 있는 주합루의 현판은 정조가 친히 쓴 글이다. 부용정과 주합루 사이 연못 앞에 잇는 건물은 영화당으로 그 앞뜰인 춘당대에서 열리는 문무의 과거를 임금이 직접 주관하기도 했던 곳이다. 지금 걸려 있는 현판은 영조가 직접 쓴 것이다.

금천교(錦川橋) : 금천교는 태종 11년(1411년) 조성된, 서울에 남아있는 옛 다리 중 가장 오래된 돌다리이다. 전통적으로 궁궐에 들어갈 때는 꼭 시냇물을 건너서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이는 시냇물이 풍수설에 의한 명당수의 역할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대조전(大造殿) : 왕비의 침전이다. 1917년 화재로 소실되어 1920년 경복궁의 왕비 침전인 교태전을 옮겨 지은 것으로 배부는 일부 서양식으로 꾸며 졌다.

기오헌(寄傲軒)과 의두합(倚斗閤) : 애련지를 바라보고 있는 작은 두 건물은 기오헌과 의두합이다. 이 두 건물은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가 사색을 하며 책을 즐겨 읽었던 장소라고 전해진다.

옥류천(玉流川) 지역 : 창덕궁의 후원 북쪽 깊은 골짜기에 흐르는 개울을 옥류천이라 한다. 인조 14년(1636년), 널찍한 바위인 소요함위에 U자형의 흠을 파서 물을 돌게 하여 임금이 신하들과 더불어 술잔을 띄우며 시를 짓기도 하였다. 소요함을 중심으로 소요정, 태극정, 창의정, 농산정, 취한정이라는 5개의 정자가 모여 있다.

존덕정(尊德亭) 지역 : 이 곳에는 네 동의 정자가 두 개의 연못 주위에 배치되어 있다. 지붕처마가 두 겹으로 되어 있는 정자는 존덕정으로 인조 22년(1644년)에 세워 졌다. 천정에는 청룡과 황룡이 어우러져 있는 그림이 있으며, 그 아래로 정조가 쓴 글이 걸려 있다. 존덕정 바로 위쪽에 있는 옆으로 길쭉한 정자가 폄우사이다. '폄우'한 어리석음을 경계하여 고친다는 뜻으로 효명세자는 이 곳에서 독서를 하기도 했다. 부채살 모양의 지붕을 하고 있는 정자는 관람정으로 1800년대의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그 이후에 지어 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관람정 맞은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정자는 승재정(勝在亭)으로 이 역시 1800년대 이후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승재'한 뛰어난 경치가 있다는 뜻이다.

회화나무 : 돈화문 주변 여덟 그루의 회화나무는 수령이 300 ~ 400년으로 추정된다. 돈화문 주변은 조정의 관료들이 집무하는 관청이 배치되어 외조(外朝)의 공간으로, 이 곳에 회화나무를 심은 것은 '궁궐 정문 안쪽에 괴목(회화나무와 느티나무)을 심고 그 나무 아래서 삼공(三公)이 나랏일을 의논하게 하였다'는 중국 고사에 의한 것이다.

향나무 : 동궐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향나무는 수령이 75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2m, 뿌리부분 둘레 5.9m로 여러 방향으로 뻗어있는 가지는 뒤틀리며 자라있다. 향나무의 목재는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제사 때 향을 피우는 재료로 사용되는데, 이 곳에 향나무가 심어진 것은 동측 선원전이 제례의 공간인 것과 관련이 있다.

다래나무 : 후원의 안쪽 숲에 위치한 다래나무는 수령이 650년으로 추정되고 높이 20m, 굵은 줄기 둘레 72cm 이며, 6개 정도의 굵은 줄기가 사방으로 뻗어 이리저리 엉키면서 자라있다. 다래나무는 암수딴그루인데, 창덕궁의 다래나무는 수나무여서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다래나무 중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크다.

뽕나무 : 수령은 400년으로 추정되며, 창덕궁에 남아있는 뽕나무 중 가장 수형이 아름답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양잠을 장려하는 태종의 정책에 의해 궁궐 내에 뽕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창경궁의 관덕정 남쪽에 양잠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잠단(蠶壇)이 있었으며, 주합루 옆 서향각에서 왕비가 양잠을 직접 시연하는 친참례를 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관람안내

 

일반관람

한국어 : 3월 09:15~16:45(매시간 15분, 45분) / 4월~10월 09:15~17:15(매시간 15분, 45분) / 11월~2월 09:15~15:45(매시간 15분, 45분)

일어 : 3월~10월 09:30, 10:30, 12:30, 14:30, 16:30 / 11월~2월 09:30. 10:30, 12:30, 14:30

영어 11:30, 13:30, 15:30

중국어 11:00, 15:00

특별관람(옥류천)

4월~11월 10:00, 13:00, 14:00 (12월~3월은 관람 없음)

특별관람(낙선재)

10:20, 16:00

자유관람 : 09:15~18:30(매주 목요일) 입장마감은 16:30 (12월~3월 관람 없음)

 

관람요금

 

일반관람 : 대인(만19세~만64세) 3,000원 소인(만7세~만18세) 1,500원 무료대상 만6세이하, 만65세이상

특별관람 : 대인(만19세~만64세) 5,000원 소인(만7세~만18세) 5,000원 무료대상 만6세이하

자유관람 : 대인(만19세~만64세) 15,000원 소인(만7세~만18세) 7,500원 무료대상 만6세이하

 

찾아가는 길

지하철 :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 / 1.3.5호선 종로3가역 6번 출구 / 현대 계동 사옥 방향

 

- 궁궐은 계절에 따라 그 느낌이 정말 많이 바뀐다. 가능하다면 봄, 여름, 가을, 겨울에 한번씩 찾아가 보자.

- 마치 보물 찾기를 하듯이 약간의 공부를 하고 가서 공부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보자. 그런 분명 찾게되는 보물이 있다.

- 이용 수칙을 꼭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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