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독약의 세계사],시부사와 다쓰히코,오근영,가람기획,2003,(080926).

바람과 술 2008. 9. 26. 01:06

고대인은 알고 있었다

 

독이라는 말은 고대로부터 마술이나 주술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듯하다. 과학적인 사인규명 방법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던 시대에는 어떤 인물의 뜻하지 않은 죽음은 종종 악마의 소행이나 주술의 실행과 관계가 있다고 여겨졌고, 주술사로 지목된 남자가 여자가 부당하게 그 죽음에 책임을 져야만 하는 경우도 많았다. 독을 투여하는 방법도 시대나 지방에 따라 달랐다.

 

피로 물든 로마 궁정

 

동양과 이집트에서 서구 사회로 전래된 독약은 로마 궁정에서 비로소 대대적으로 활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난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의하면, 로마의 전설적인 초대 왕인 로물루스가 만든 최초의 법률은 '독을 넣거나 남의 아이를 몰래 데려오는 아내, 또한 열쇠 위조나 간통을 하는 아내를 쫓아낼 권리를 남편에게 부여하는 '법률'이었다. 그후 '12동판법'이라는 법률(기원전 454년)이 만들어져 독약이나 마술에 손을 대는 자에게 더욱 혹독한 벌을 주게 되었다. 기원전 82년, 당시의 집정관 술라가 제정한'코르넬리우스 법'에는 국외추방 및 재산몰수의 처벌도 할 수 있다는 취지의 조항이 추가되었다. 이때까지는 독물이 의사에 의해 자유롭게 판매되었기 때문에 자살자나 범죄자들이 종종 그들의 고객이 되었다. 후에 황제가 된 카이사르는 '율리우스 법'이라는 새로운 법률을 마련하여 독살범을 다른 살인범보다 더욱 무겁게 처벌하게 된다. 카이사르 이후 풍속의 퇴폐가 점점 더 극심해져서 역대 황제가 독을 정치상의 무기로 이용하자 살인자 곧, 살인 청부업자가 로마 거리의 명물로 등장했다. 고대 독물연구의 1인자로 확고한 보증을 받은 신비로운 일물을 소개하겠다. 바로 역사상 유명한 전쟁에서 호마와 싸운 폰투스(흑해 남쪽 연안에 있던 나라)의 대왕 미트라데스 에우파토르이다. 오늘날 '미트라다테스'라고 하면 해독제를 의미하는 보통명사가 되어 있을 정도이다. 미트라테스 왕은 '폰투스' 지방에서 서식하는 오리의 피를 해독제에 섞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오리가 유독성 물고기나 벌레를 먹고 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왕의 유물 가운데 발견된 해독제 처방의 비밀스런 기록은 폼페이우스가 로마로 가져갔고, 문법가 레네우스에 의해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이것이 후에 황제 네로의 시의 다모크라테스 등에 의해 개량에 개량을 거듭하여 중세에 전해져 모든 해독제의 모범의 되었다. 고대의 약학은 신화나 전설이 혼재되어 있다. 비교적 근대에 발견된 것을 제외하면 고대로부터 19세기 중엽까지 면면히 이어지는 고전적인 독약의 기본은 요컨대 동물, 식물, 광물이란 세 가지의 카테고리에 속했음을 알 수 있다. 고대의 독약처방은 비밀에 부쳐져 있거나, 혹은 지극히 엉성하고 애매한 형태로밖에 남아 있지 않다.

 

만드라골라의 환상

 

중세시대에, 미슐레가 일컬었던 '독의 대중화'를 조장한 것은 비단 마술가나 주술사들만이 아니었다. 주술사와 관련해 중세 독물학의 권위자로서 이름을 드날린 부류는, 근동지방에서 유럽의 여러 도시로 흘러들어간 유대인이었다. 유대인과 주술사와 함께 중세의 악마적인 계급으로 삼위일체를 형성했던 또 하나의 부류는 문둥병 환자였다. 당시 사람들은 전염병을 악마의 소행이라고 여겼으며, 유대인과 문둥병 환자를 악마의 친구로 간주했다. 의학이나 약학에 관한 지식이 13, 14세기에 크게 보급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 시대에, 특히 유럽에 전염병이 만연했디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시인이나 최초의 여행자가 쓴 이야기에는, 해독제가 될 뿐만 아니라 독이 되는 동물성 물질이나 광물성 물질에 관한 공상적인 기술이 있어서 당시 사람들의 관심을 강하게 끌었다. 마노, 혈석, 홍옥수, 붉은줄마노 등의 보석은 치료에 효능을 가진 것으로 여겨져서 특히 귀하게 다루어졌다. 이렇듯 보석에 관한 일종의 신비와 상징주의적인 학설은 중세에 탄생했다. 중세인이 부적이나 성양피지(유대인이 왼쪽 팔이나 이마에 감았던, 구약성성의 문구를 기록한 양피지), 해독제 등의 탐구에 열심이었던 것은 결국 그들의 순진성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상당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이것은 또한 중세의 정신을 지배했던 애매한 상징주의에 있어 독과 마술의 위협은 불가분의 관계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당시 의학의 중심은 살레르노, 몬테카시노, 트레이드, 코르도바 등이었는데 이들 대학과 나란히 방방곡곡의 수도원에서 약용식물을 재배했던 것이 나중에 본초서, 즉 식물학 서적을 발달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수도원에서는 식물은 물론이고 광물, 동물도 수집했는데 그것은 성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같은 종교의 환자를 실제로 치료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르자 가의 천재

 

 

성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밤

 

20세기에 들어와 등장하기 시작한 독약 가운데는 니코틴이 있다. 담배는 1559년,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2세가 리스본에 파견한 대장 장 니코에 의해 처음 유럽에 소개되었다. 라틴 명 니코티이나라는 식물의 명칭과 그 주요 알칼로이드인 니코틴의 이름은 이 니코에서 유래한다.

 

신기한 해독제

 

16세기 유럽의 저술가들이 한결같이 꼽고 있는 유해한 독물 가운데 두꺼비 독이라는 것이 있다. 16세기 당시에 가장 널리 이용되기 시작한 '독물계의 왕자'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은 비소다.

 

희대의 독살마 브랭빌리에 후작부인

 

 

흑미사와 독약

 

 

독초원에서 근대화학으로

 

비소가 독물계의 왕자라는 정설은 17세기 이후로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했는데, 그 뒤를 이어 19세기 동안 내내 힘을 키워온 것은 동염이다.

 

비소에 대한 학자들의 논쟁

 

 

여러가지 독살사건

 

 

교묘한 의사의 범죄

 

 

집단 살육의 시대

 

 

저자 후기

 

 

* (개인적인 생각) 책의 내용이 너무 잡다하다. 읽고 나도 남는게 없다. 별로 추천할 마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