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일본인의 조선정탐기 조선잡기],혼마 규스케,최혜주,김영사,2008,(081227)

바람과 술 2008. 12. 27. 20:11

조선잡기 서문 - 한산의 풍운이 정말로 급박하다

 

글머리에 - [조선잡기]는 어떤 책인가?

 

[조선잡기]는 혼마 규스케가 조선을 견문하고 정탐한 것을 기록한 글이다. 혼마 규스케는 [이륙신보] 특파원, 천우협, 흑룡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통감부와 총독부가 설치된 뒤에는 관리가 된 인물이다. [조선잡기]에는 근대 일본인의 시각으로 조선의 문화와 문물 풍속을 접하면서 느꼈던 여러 풍경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조선잡기]에서 드러나는 조선, 조선인의 주된 이미지는 순진함, 무사태평과 함께 불결, 나태, 부패 등이다. '문명국' 일본에서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제1부 지금은 기백이 완전히 죽었다

 

언어와 문장

: 언어는 팔도 가는 곳마다 모두 같다. 다만 곳에 따라 어조의 변이 및 사투리가 있을 뿐이다.

언문과 이두

: 언문이란 곧 조선 문자를 말한다. 그 구조는 우리 일본 글과 같다. 교묘한 것이 서양의 알파벳을 능가한다. 이두란 조선 음을 한자로 나타낸 것이다. 즉 우리나라의 만요가나와 같다. 조선 사람은 지금 이것을 사용하여 언문의 편리함을 모르는 자가 많다. 과연 이 한자를 숭상하는 폐단은 사대근성의 표상인가.

가야라는 국호

:

가라시

: 조선의 풍속은 매운 것을 좋아한다. 생선국.된장국 드을 조리하는데, 모두 고춧가루를 넣는다.

먹는다고 하는 말

: 조선에서 쓰는 '먹는다'라는 말의 의미는 매우 넓다.

대.중.소화

:

독립한 적이 드물다

:

한인은 단순하다

:

지금은 기백이 완전히 죽었다

:

어른에 대한 예식

:

싸움

:

무사태평

: 조선 사람은 담배를 매우 좋아하는 동물이다. 3척이나 되는 담뱃대를 걸어갈 때나 집에 있을 때나 앉아서나 누워서, 일을 쉬거나 침묵하는 사이에도 손에서 놓는 일이 없다. 조선 사람 일반의 습관은 밭을 갈 때나 물건을 운반할 때에도 반드시 이것을 입에 물고 있다. 특히 우스운 것은 우리 거류지에 목욕하러 오면서, 탕 안에서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일이다.

야비(野鄙)

: 기근이나 흉년에 대처하는 것을 배우려고 하면 조선에 가야 한다. 야외의 풀잎의 대부분은 바찬으로 올라온다.

기후

:

호랑이와 산고양이

:

 

2부 동학당의 괴수를 만나다

 

국왕전하

:

왕거

:

혼돈을 구별하지 못한다

:

상소

: 조선의 전제(專制)의 국체이면서도 상소라는 유교국의 유물을 남기고 있다. 이것은 백성의 뜻을 위에 미치게 하자는 취지로 인민의 상소를 수리하여 왕의 재결을 내리는 것이다. 대부분 중간에서 막아 국왕의 귀에까지 가지 못하게 하지만 형식만은 제법 갖추고 있다.

과거급제

:대과에 급제하고 관리에 임명된 자는 찢어진 갓을 쓰고 얼굴의 반은 먹으로, 반은 하얀 분으로 칠한다. 찢어진 의복을 입고 잘 차려입은 수십 인의 악사에 섞여서, 경성 안을 일주한다. 이것은 관리가 되었을 때의 오만한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한다.

법정

:

형벌

:

무관

: 무관이라고 하는 것은 문관에 대한 하나의 명칭에 지나지 않아, 감히 병졸들을 이끌고 나라를 지키지도 못한다.

병정

: 병사의 철포가 변해서 술 밑천이 된다. 병사 하나를 잡으려고 하면 마땅히 술로 해야 한다.

지방관

:

안성 군수

:

관인은 모두 도적

:

향응

:

나라를 근심하는 사람

:

동학당의 괴수를 만나다

: 다음 날 아침 헤어질 때, 그들은 편지에 경상도 상주 남면 거주 서병학, 동 문경 읍내 거주 박인병이라고 써서 나에게 주었다. 나중에 동학당이란 것이 봉기하고, 인심이 어수선했을 때, 한정의 조보를 보니, '부도(不圖) 서병학'이란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박인병의 어떠한지 소식을 알 수 없다.

 

3부 의식주와 기이한 풍속

 

묘지

: 조선의 풍속에는 묘지를 선택하는 것이 매우 엄격하다. 묘지를 좋은 곳에 얻으면 자손이 반드시 번영한다고 생각한다.

상인

:

혼인

: 조선의 법에 동성결혼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일본)의 풍속에는 장가드는데 호랑이날을 기피한다. 아마도 호랑이는 천리를 달려가서 천리를 돌아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은 도리어 호피를 가지고 신부의 가마를 싼다. 조선과 우리의 겉과 속이 다른 풍속이다.

조혼

:

조선의 부녀

:

창기

:

창기 집

:

처를 손님에게 내 놓는다

:

남색

:

가마

:

만국의 첫째

:

관의 종류와 모자를 써야 하는 법

:

평상복

:

두루 주머니

:

엿장수와 신발 수선

:

부인의 기호

: 조선의 중류 이상의 부녀는 다른 사람에게 얼굴을 보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풍습 때문에, 의복 장식품 등을 조달하는 것도 항상 모두 하인이 구해오도록 한다. 습속이라고는 하나 부자유 천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우리나라(일본)에서 수출하는 물품도 부녀의 용구가 되는 것이 매우 적다. 지금 만약 조선의 부녀들에게 용이하게 기호의 욕심을 채울 방법이 생긴다면 수출품의 액수가 필연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그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상인 집안의 부녀가 스스로 어학을 연구하여 조선의 부녀와 교제하고 이것으로 판로를 확장하는 데 있다.

우산

:

뜨개질

:

세탁과 다듬이질

:

어린아이의 장난감

:

서방과 어린아이

:

지게꾼

:

남자무당

:

질병자

:

방이라는 글자

:

남은 음식을 탐하는 것

:

상어고기

조선의 소금

:

정월놀이

:

풍년 춤

:

잉어 깃발

:

작은 백지 깃발

:

귀신을 쫓는 부적

:

: 조선인들은 개고기를 즐겨 먹는다. 집집마다 이것을 기르는 것은 반드시 집을 지켜 도둑을 경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대부분은 그 고기를 먹기 위해서 기를 뿐이다. 한 마리의 가격은 우리나라(일본)의 통화로 30~40전이다. 그러므로 귀한 손님이나 좋은 일이 있지 않으면 함부로 잡지 않는다. 한인이 개를 부르는데 '워리 워리'라고 한다.

고양이와 소

:

교외의 사냥

: 경성을 떠나 2리에 있는 양화도와 부산을 떠나 2리에 있는 엄궁은 모두 우리나라(일본)의 거류지인이 좋아해 사냥을 즐기러 나가는 곳이다. 

산목

:   

하마비

:

하늘의 재앙

:

변소

:

 

4부 시장과 거리, 양반과 평민

 

지폐에 대한 평

:

통화

:

통화의 운반

: 미곡 혹은 우피, 우골과 같은 물건을 사려고 내지에 들어가는 경우에 가장 불편을 느끼는 것은 통화가 무거운 것이라고 한다. 말 1필에 겨우 20관, 즉 30엔 밖에 실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운임은 통상 1리에 4, 5백문, 즉 14~15전이 필요하다. 내지에 들어가 30리를 갈 때는 4엔 50전의 운임이 필요하므로 이미 그 1할 5푼을 운반 때문에 쓰지 않을 수 없다.

객주

: 정부의 특허를 얻어서 한 지방의 물산을 매매하는 사람을 도객주라고 칭하고, 또 특허가 없어도 마음대로 도매상을 경영하는 자를 객주라고 한다.

경성의 금리

: 경성에서 금리는 매우 비싸다. 전당포의 이자는 10엔 이하 1할로, 10엔 이상은 7푼 5리 이다. 또 통상 상호 신용상의 임차 혹은 저당 차입 등은 모두 5푼 이자를 법으로 한다.

경성의 큰 통로

:

도로

:

인삼

: 인삼은 조선의 특유의 명산물이다. 그 산지는 경기도의 송도, 용인, 토산, 충정도의 청풍, 괴산, 전라도의 금산 등이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송도라고 한다.

경성의 책방

:

경성의 종루와 지방의 고루

:

시장

:

남대문의 아침 시장

:

한인의 물건 파는 광경

:

복권

: 만인설(萬人楔)은 일종의 복권으로서 지방관의 공인을 얻어서 가입자를 모집하고, 개표해서 당첨된 자에게 약속한 금전을 주는 것이다. 1표의 가치는 장소에 따라서 때에 따라서 차이가 있지만, 대개 5백문(일본돈 75전)을 통례로 한다. 5백문을 던져서 가입한 자에게는 번호가 적힌 표를 준다. 모인 금액의 1할을 지방관에게 준다. 잔금에 1등 5백관, 2등 3백관, 3등은 3백관이라는 계급을 둔다. 그리고 개표하는 당일에는 운영자가 1번부터 매도하기까지의 표를 넣은 상자를 갖고, 짚을 얹은 개표장에 와서 일단 높은 곳에 올라가 공중의 면전에서 표찰을 흔들면서 그 번호를 알린다. 그래서 당첨된 자는 그 1할을 운영료로 내는 구조이다.

가뭄

:

농기구

:

농작물을 재배하는 밭

:

제방

:

공동 정신

:

목축업

:

토지소유대장

:

절영도

: 처음 메이지 17년 폭동(1884년에 일어난 갑신정변을 말함)의 상금을 한 정부에서 반려했을 때, 한 정부는 크게 기뻐하여 이 섬을 우리나라(일본)에 기증한다고 했다. 우리 사신은 거절하고 받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한 정부가 그곳이 중요한 지역임을 안다. 우리나라(일본)도 앞서 이것을 거절한 것을 후회한다고 들었다.

친척의 변상

: 조선의 습관에서 다른 사람에게 부채가 있어도 변상할 길이 없을 때는, 부자 형제가 대신하여 갚을 것을 의무로 하고 있다. 만일 형제 부자가 대신 갚는 것이 불가능할 때는 그 9족 중의 사람으로 대신 변상시킨다. 그래서 우리나라(일본) 사람으로 조선의 채권자인 자는 이 습관을 이용해서 대금을 받아왔다. 그러나 요즈음 한인 중에도 이 습관의 부조리를 깨닫고 경상도 밀양부사 조 모와 같이 이미 그 부하에게 영을 내려 고래의 습관에 따라 일본인의 속임수에 속지 말라고 훈유했다. 이후 우리나라(일본)의 채권자는 매우 피해를 보고 있다.

양반과 상한

:

양반족

:

상한족

:

기생

:

노예제도

:

장례

:

여의사

:

정려문

:

일거양득

:

복통약

: 조선 사람이 우리나라(일본)와 통상하기 이전에는 설탕이 없었다. 내지의 사람 중에는 그 이야기를 들어도 아직 그것을 알지 못하는 자도 있다. 그러므로 설탕을 조금 주면 아까워서 바로 먹지 않고, 넣어 두었다가 복통약으로 사용하는 자가 있다.

에다

:

유일한 이로움

:

우두의사

:

인천

:

송도

:

조령

:

사원

:

통도사

:

 

5부 무예는 궁술만 남았다

 

무예

:

종교

: 선교사가 열심히 병원을 세우고 빈민교원을 설치하고 혹은 단신으로 스스로 내지에 들어와 고초를 맛보고 위험을 무릅쓰고 포교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권유하기를 힘쓰지 않음이 없다. 한인들은 그들이 열심히 하는데 감화되어 끝내는 나라 전체가 천제를 숭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알지 못한다. 아마, 포교가 목적하는 바가 다만 복음을 펴서 한인의 문화를 증진시키려는데 그치지 않는다면, 우리가 또한 무엇을 말할 거인가, 다만 그 열심에 감사할 뿐이다. 그렇지만 그 목적하는 바가 종교를 검으로 삼아 한인의 뇌를 가르고 그 혼을 빼앗아 드디어 그 살을 먹기에 이르게 되면 나는 잠자코 있을 수가 없다. 선교사의 목적이 종교에 있지 않고 그것에 있다면 조선 사람들은 깊이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석 무정

:

좋은 시화

:

속된 노래

: 조선의 속된 노래에 사랑하는 사람의 떠나가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깊은 정을 누르지 못하고, 그렇다고해도 소리를 질러 부르면 사람에게 웃음거리가 된다고 하는 내용이 있다.

기둥에 쓰는 글

:

시를 짓다

:

고 기와와 토우

:

골동품

:

 

6부 청국의 야심과 일본의 열세

 

방척주의(내버려둠)

:

일본인과 청국인의 세력비교

: 생각컨대 한인은 제어하기 쉬운 동물로서 감히 물을 필요도 없다고 해도, 지나인의 세력이 우리나라(일본) 사람을 능가하여 한인에게조차 경모를 초래하는 것은 우리 국권의 소장에 관계됨이 크다. 우리나라(일본) 사람이 세력을 떨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청국의 야심 한정의 유약 일본의 무위

: 우리나라(일본)는 금일에 있어서 조선에 대한 확고한 정책이 없다. 나는 이 일을 가지고 정말로 우리나라(일본)의 지사를 향해 호소한다. 우리 정부를 향해 도모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왜냐하면 현재의 우리 정부는 실력에 의한 정책에서 냉담한 자 같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아, 원활주의의 외교정책은 마침내 조선을 청국의 병탄에 일임하고 마는 것이 아닌가.

경서에 있는 일본 관리

:

싼 물건 판매

:

중국인

: 우리나라(일본) 사람은 쓸데없이 뜻밖의 이익을 얻으려고 욕심내서, 이러한 노동을 조롱하고 지나인을 천하게 본다. 한 재산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파산해서 빈손으로 귀국하는 자가 많다.

신문지

: 조선에서 신문은 우리나라(일본) 사람의 손에 의해 발간하는 것이 두 종류가 있을 뿐이다. 하나는 [조선신보]라고 하고 인천에서 발간한다. 다른 것을 [동아무역신문]이라고하고 부산에서 발간한다. 모두 우리나라(일본)의 가나를 섞어서 문장을 쓴다.

교육의 일반

:

일본어 학교

: 조선정부가 일본어 학생을 양성하기 위하여 설립한 것으로 경성의 일본공사관 앞에 있고, 생도는 불과 20여 명, 교사는 우리나라(일본) 사람 1명이다. 우리나라(일본) 사람 중에 정부의 고문으로 고빙된 자는 전후로 모두 물러나고, 어학교 교장만 우리나라(일본) 사람을 등용했다.

자본이 필요하지 않다

: 요컨대 조선은 무자본으로 자본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이 손을 댈 만한 나라이다. 그러므로 조선에서 자본이 적어서 상법에 손을 댈 수 없다고 하지 말라. 저 지나인을 보라. 한 푼의 자금도 없이 와서 거액의 재산을 얻어 귀국하는 자가 많지 않은가.

부정한 과세

:

부산에 있는 한국 부인

:

어민 보호

: 해관 보고에 의하면 전라도.경상도 양도의 연안에서 어업에 종사하는 우리나라(일본) 어선 수는 1,500척에 달한다. 기타 이외에도 항상 1천 척 이상의 어선이 출입하고 있다. 지금 가령 한 척에 타는 사람을 5명이라고 하면 1만 2천 명의 어부가 매해 양도 연안에서 어업에 종사하는 것이다. 이들 어부는 대부분 히로시마, 야마구치, 쓰시마 등의 출신으로 매해 수확 총계 150만 엔을 내려가지 않는다고 한다. 즉 한 사람의 소득 150~160엔 이상에 해당한다. 전라도.경상도 양도의 연안에서 어부의 수는 이와 같고, 어부의 이익도 이와 같다. 3항(인천.부산.원산), 경성에서 우리나라(일본) 사람의 무역액 6백 만엔 저옫에 비할 만하다.

조선에 있는 일본인 승려

:

우물 안의 개구리

:

 

7부 목욕탕인가 초열지옥인가

 

십리표

여름 여행

:

해주의 목욕탕

:

주인이 잡혀가다

:

조선의 옛 기물

:

선착장

:

약 행상

:

여행자의 휴대품

: 내지를 여행하려는 사람을 위하여 휴대해야 할 물품을 제시한다. 모포, 어깨에 메는 가방, 수첩, 연필, 키니네(물이 나쁘기 때문에 이창열에 걸리기 쉽다), 은화 약간(이것은 만일을 위해서이다. 1원에 한전 8백문 정도로 교환할 수 있다), 호신용기구(권총이나 도검), 수건, 치약, 비누, 소금. 다만 귀족적 여행자를 위해서는 아니다. 의복은 일본복도 괜찮고, 서양복도 괜찮다. 다만 내지인의 신용을 얻기 위해서는 서양복이 편리하다.

요리점과 여관

:

촌락

:

시가의 불결

:

길 옆의 부뚜막

:

도적

:

새옹지마

:

의심은 도깨비를 만든다

:

나쁜 새 퇴치

:

 

8부 잡조(雜俎) : 기타 자잘한 정탐 내용들

 

조선에는 육포라는 것이 이다. 소고기를 얇게 잘라서 말린 것으로 행군용, 여행용으로 휴대하기 편리하다/작년 가와카미 중장이 조선에 와서 관광한 다음에 어느 사람에게 말하기를, 조선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 3가지가 있다. 하나는 국왕이 현명해서 구미의 여러 제왕 사이에 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둘은 경성 사방의 풍광이 아름다운 것, 셋은 조선인의 의관이 한아(閑雅)한 것.

 

해제(최혜주) - 일본은 19세기 조선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혼마가 처음 조선에 온 것은 1893년 조선사정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부산에 머물고, 경성, 중부지방을 정탐하고 매약 행상을 하며 황해도와 경기도 충청도 지방을 여행했다.

 

1. 근대 일본인의 조선관의 형성

 

일본에서의 조선사 연구는 일본의 현실적 요구에 부응하여 메이지 시대(1868~1912)부터 활발해졌지만, 조선에 대한 일본의 우월한 지위를 강력하게 주장한 것은 그 이전 에도 시대(1603~1867) 일본의 고전을 연구하는 국학자였다. 이러한 조선관은 막부 말기붙어 일어나는 정한론의 논거가 되었으며, 후대에 영향을 미쳐 메이지 시대 이후 한국 강제병합과 일본의 한국지배를 합리화하는 유력한 지배이념이 되어던 일선동조론(日鮮同組論)을 낳게 했다. 나아가 조선과 일본은 문화적.혈통적으로 공동운명체라는 동문동조론(同文同組論)을 형성하게 되었다. 근대 일본의 조선 역사에 대한 관심은 1883년 광개토왕 비문의 조사와 함께 일어나게 되었는데, 그들은 조선의 근대 이전 신화 시대부터 일본의 지배를 받아왔다고 주장해 왔다. 이 주장은 근대적 학문방법으로 위장하여 조선사를 더욱 왜곡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청일전쟁과 함께 일본이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면서 고조되었으며, 고대 일본의 한반도 진출을 역사적으로 입증함으로써 조선 침략의 명분을 얻고자 했다. 그리하여 조선사 연구를 고대사아 정치, 군사적 내용을 위주로 진행하고, 침략을 본격화하면서 역사서술에 침략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게 되었다. 이러한 근대 일본의 조선사 연구는 조선 침략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통치 자료의 역할을 했다. 즉 구체적인 왜곡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태고부터 양국은 상호 왕래했으며, 일본은 신화시대부터 조선보다 우위를 차지했다. 2. 일본 시조신의 동생인 스사노오노미코도는 조선의 지배자이다. 그리고 그가 아들을 데리고 머물렀다는 소시모시의 위치는 김해, 춘천, 경성 등이라는 설이 있다. 3. 양국은 동조 동종의 관계에 있다. 신라는 일본의 이즈모(현재의 시마네 현)족이 세운 식민국가이다. 4. 이나히노미코도(진부 천황의 형)는 신라의 왕이 되었고, 그의 아들 아메노히보코는 일본에 귀화했다. 5. 진구 황후가 삼한을 정복하고 임나일본부를 설치하여 남방일대는 일본에 복속되었다. 6. 삼국이 일본에 조공했다. 7.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은 진구황후의 삼한정벌을 계승한 치적이다. 8. 조선의 역사는 외세침략에 시달려온 독립불능의 역사이다. 9. 조선은 지나의 속국이며, 조선의 역사는 지나 외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일본은 1904년 러일전쟁을 전후하여 조선의 사회경제사학 분야에도 관심을 갖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일본에는 봉건제가 있어 서양처럼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 이행할 수 있었으나 조선은 봉건제도조차 성립되지 않은 단계이기 때문에 근대자본주의 사회로 발전할 수 없었다는 식민사관의 하나인 정체성론의 원형이 만들어진 것이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만주침략을 목표로 역사연구를 한층 가속화하기 위해서 1908년에 만선지리역사조사실을 설치하여 만주와 조선의 지리와 역사에 대한 조사 연구에 착수했다. 이로써 일본의 근대 역사학은 대한제국 강점 이전에 이미 침략전쟁을 뒷받침하는 국수적 황국사관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2. 혼마 규스케의 내한과 정탐 활동

 

개항 이후 공사관과 영사관이 설치되고 일본인들이 내한하기 시작하면서,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이후에는 일본의 지사들이 대륙경영에 뜻을 품고 조선에 건너왔다. 1894년 갑오개협 이후에는 일본인 고문들이 들어 와서 조선의 내정을 간섭하기 시작했다. 이들 가운데 조선통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조선 침략의 첨병역할을 했다. 그들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나아가 대륙핌략의 교두보 마련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이 당시의 지사, 혹은 낭인들은 메이지 유신 후 권력에서 소외한 무사계급 가운데 대륙팽창의 주역이 되기 위해 조선과 대륙에 관심을 가지고 건너간 자들로, 단순한 정치브로커가 아닌 지식인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재야정치인으로서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또 국민 여론의 형성을 주도하여 근대 일본의 대외정책을 선도해나가기도 했다고 한다. 일본 낭인이 조선에서 집단적으로 활동을 한 것은 크게 3가지를 들 수 있다. 1.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발발했을 때 천우협이라는 무장단체를 조직하여 동학농민군에 대한 지원활동을 시도했다. 2. 1895년 명성왕후 시해사건에 가담했다. 3. 1901년 흑룡회를 결성하여 대 러시아 전쟁론을 주창하고, 러일전쟁 이후에도 조선에서 일진회를 조종하면서 '한일합방'운동을 주도했다. 이 낭인들의 활동을 살펴보면, 먼저 1893년 8월 부산의 아리마여관에서 모여 호구지책으로 법률사무소를 열 계획을 세운 것이 그 시작이다. 두 번째로 일본 정부는 청일전쟁에 승리한 뒤 러시아의 조선 진출이 일본의 조선에서의 지위를 약하게 하는 것을 만회하기 위해서 낭인들을 이용해서 간섭정책을 단행했다. 이것을 현실화한 것이 명성왕후 시해사건이었다. 세 번째는 흑룡회는 1901년 천우협을 모체로 만들어지고 처음부터 '한일합방'과 대아시아제국 건설을 추진했다. 그들은 조선 지배를 위해 대대적으로 러시아와의 전쟁을 주장했다. 그리고 통감부가 설치되자 일진회와 손잡고 본격적으로 '한일합방'운동을 전개했다.

 

3. [조선잡기]에 나타난 조선 인식

 

1868년 메이지 유신이후 문명개화를 이룬 문명국 일본이 타자의 시선으로 '미개화'된 조선을 바라보는 '야만'과 '문명'의 교차점을 읽을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조선에 대한 우호적이고 긍정적인 평가보다는 부정적이고 왜곡된, 편견데 가득찬 조선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저자는 일본이 국제정세에 어두워 후진적인 조선을 문명으로 유도할 책임과 사명을 가진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먼저 기본적으로는 조선의 역사를 독립한 적이 거의 없는 것으로 이해하고, 그 때문에 조선이 멸망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둘째로 저자는 조선에서 체험한 것은 조선인의 일본인 멸시와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풍조였다. 중국이 이미 동양의 맹주로서의 위신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청을 숭배하는 사대주의에 빠졌다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이 아시아에서 패권을 잡는 방법은 전쟁을 통해서 중국 중심의 전통적인 화이(華夷)질서 체제를 재편하고 일본 중심의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다. 셋째로 조선인에 대해서는 조선인은 참담한 지옥에 살아도 개의치 않는 것은 유전성에 의한 것이고 부패가 심하다고 보았다. 넷째로 두 나라의 풍습의 차이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다섯째로 저자는 이 책의 여러 곳에서 재조 일본인의 활동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조선잡기]의 간행이 미친 영향은 조선 사정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이 기사들을 썼고 언론매체를 이용하여 조선침략의 여론을 선도하는데 앞장 서 갔다. 일간 신문에 연재된 이 글들은 많은 사람에게 읽혔고 단행본으로 [조선잡기]가 간행된 이후에도 조선을 안내하는 견문기로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일제는 1910년 강제병합 전후 동화정책을 수립하고 식민통치를 위한 방편에서 조선사회에 대한 기초적인 실태파악에 주력했다. 이를 위해 1906년부터 구관(舊慣)제도를 조사하고 1911년부터 사료조사를 실시했다. 이어서 1916년부터 중추원에서 반도사 편찬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총독부에서 조사가 이루어지기 이전에 이미 재조 일본인과 민간단체에서는 식민통치의 기초를 세우려는 총독부의 지원을 받아 조선에 대한 조사 및 연구를 계속했다. 이러한 자료들은 근대 일본인들의 조선과 형성과 식민통치에 이용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