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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계이론과 네트워크 세계정치론 - 김상배, 2006.

바람과 술 2010. 1. 22. 11:16

1. 머리말

 

네트워크 세계정치론은 행위자로서의 노드(node)보다는 행위자 간의 관계, 즉 링크(link) 및 이들 노드와 링크가 만드는 네트워크 전체의 아키텍처와 작동방식에 관심을 기울인다. 행위자 차원에서 21세기 세계정치는 네트워크 국가의 부상으로 개념화된다. 복잡계 이론의 시각에서 볼 때 네트워크 국가는 폐쇄체계(closed sysytem)의 형태를 띠는 국가이다. 이는 안과 밖이 명확히 구분되고 일차원적이고 경직된 경계를 가진 폐쇄체계로 개념화되는 근대 국민국가의 형태와 대비된다. 네트워크국가는 안과 밖이 상호 침투하고 다차원적이고 유동적인 경계를 가진 시스템이다. 개방체계인 네트워크국가의 내부는 외부환경과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환경의 연속선상에 있는데, 다만 구성 요소들 간의 상호작용이 발생하는 밀도를 준거로 하여 외부환경과의 경계가 생긴다. 한편 네트워크국가각 구성하는 21세기 세계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행위자 차원에서 조직의 성격을 탐구하는 시각을 넘어서, 구조 차원에서 접근하는 네트워크 세계질서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네트워크 이론에서는 노드 그 자체보다는 노드들 간의 관계가 더욱 중요한 분석의 추점인데, 이러한 관계는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노드를 역으로 구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관계들은 노드들 간의 상호작용을 포함하지만, 그것을 넘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적 요소들을 포함한다. 네트워크의 속성은 노드나 그들 간의 상호작용으로 환원되지 않으며, 따라서 노드들의 조직형태는 네트워크 자체에 담겨진 관계들의 결과물로서 이해하여야 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았을 때 네트워크 국가라는 조직은 개별 국가들과 다른 국가들, 또는 개별 국가들과 비국가 행위자들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맥락, 즉 네트워크 세계질서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2. 국민부강국가의 변환

 

국민국가는 영토적 경계를 바탕으로 하여 형성된 국민/민족(nation)이라고 하는 정치·문화·공동체를 활동배경으로 하면서 부강의 목표를 추구하던 국가의 근대적 형태로서 이해된다. 그런데 이러한 국민부강국가도 20세기 중후반 이래 그 형태와 기능의 변환을 경험하고 있다. 비물질적 자원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초국적 커뮤니테이션을 통해 영토적 경계를 넘나드는 활동이 증대되고, 이에 대응하여 국민/민족 차원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여 형성되었던 국가의 형태와 기능도 변환된다. 그렇다고 국가 자체가 아예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며, 다만 국민/민족을 넘어서 네트워크라는 좀더 확장된 사회적 공간 속으로 스며들면서 재조정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국가변환을 좀더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보화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지식의 부상에서부터 논의를 끌어내는 것이 유용하다. 정보화의 국제정치학적 함의는 지식의 양적·질적 발달이 야기하는 권력변환(power transformation)의 과정에서 발견된다. 좁은 의미에서 본 정보화는 기술·정보·과학 등과 같은 그 자체가 세계정치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중요한 수단이 되는 '도구적 지식'의 생산이 양적으로 증대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국제정치학의 시각에서 이러한 과정이 지니는 전략적 의미는 지식과 같은 비물질적 자원이, 기존의 부강을 추구하는 물질권력 자원을 넘어서, 새로운 지식권력 자원으로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정보화는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이미 생산된 지식을 활용하는 과정도 질적으로 변화시킨다. 특히 정보화는 지식의 활용 과정에서 인간의 관념이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는 '구성적 지식'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러한 구성적 지식이 지니는 국제정치학적 의미는 행위자의 속성이나 보유자원에서 우러나오는 물질적 권력이 아니라 행위자들이 만들어내는 네트워크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권력, 즉 네트워크 권력(network power)을 부상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지식과 권력의 복합적 변환으로서의 정보화는 크게 국가변환에 영향을 미친다. 일차적으로 정보화는 지식생산의 차원에서 지식 인프라를 구축하거나 인적자원을 양성하고 기술혁신을 촉진하며, 더 나아가 기초 및 응용과학을 진흥하는 지식국가를 부상시킨다.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국가가 다른 행위자들에 비해서 지배적인 위상을 차지하게 된 것은 근대 이후의 현상이다. 근대 지식국가는 종전에는 교회가 관장했던 교육 분야에서도 권위를 획득하게 되고 특허나 저작권과 같은 지적재산권 제도의 도입 등을 통해서 지식생산 활동의 목적을 규정하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주체로서 등장하였다. 이제 모든 지식생산은 국가의 이익과 권력을 증진시킨다는 전제 하에 명분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냉전기 군비경재의 와중에 이루어진 군사기술의 혁신을 보면, 기술 생산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국가가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경제 분야를 보면 근대 이래 지속된 지식국가의 모습이 좀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1980년대 이래 선진국의 국가들은 첨단기술개발과 인적자원 양성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데, 국가의 경계 내에서 자본의 경쟁력을 증진하려는 목적으로 기술혁신이나 기술이전과 관련하여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외에도 지식의 생산과 학산을 증진하는 국가의 역할로서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법과 제도의 정비나 핵심기술 분여의 표준화 그리고 기타 지적공고재(intellectual commons)의 제공을 위한 대학과 연구기관의 지원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지식국가의 추구는 국가의 형태와 화동이 탈영토화 또는 네트워크화되는 과정을 수반한다. 버추얼국가의 개념은 전통적인 토지 변수를 넘어서는 노동, 자본, 정보 등의 비물질적 자원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는데, 이러한 점에서 버추어국가란 토지, 즉 영토 기반의 생산능력을 최소화한 정치단위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버추얼국가는 물질적 생산을 해외로 내보내고 연구개발과 제품디자인에 중점을 두며, 고부가가치의 무형의 상품 생산이나 고도의 서비스에 전문화하는 국가모델이다. 버추얼국가는 도구적 관점에서 지식자원을 추구하는 과정이 국가가 영토적 경계로부터 자유로워질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20세기 후반 들어 지구화와 정보화의 진전은 지식생산이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발생하는 현상을 부추긴다. 커뮤니케이션과 기술의 발달에 따라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확대되고 혁신이 지구화되며 지식생산에 대한 담론이 국민국가의 경계 밖에서 주어지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지식생산이 국민국가의 통제로부터 이탈되는 현상은 국가의 조직형태나 기능적 역할이 변환되는 환경을 조성한다. 경제 분야에서 기술경쟁의 가속화는 민간 부문의 역할이 증대되고 영토적 경계를 넘어서는 다양한 경제 네트워크의 부상을 부추긴다. IT분야의 지식생산에서 국민국가가 담당했던 주도적 역할은 민간행위자들의 부상과 함께 좀 더 네트워크적인 형태로 불가피한 변환을 겪고 있다. 1990년대 후번 동아시아에서 영미형 조절국가(regulatory state) 모델의 도입을 통한 제도조정에 대한 논의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기존의 발전지식국가의 모습은 좀더 네트워크적인 형태로 변환되는데, 새로이 관찰되는 지식국가는 여전히 지식자원을 도구적 용도로 추구하지만, 그 과정에서 새로이 관찰되는 지식국가는 여전히 지식자원을 도구적 용도로 추구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가의 형태 변환이 이루어지는 유형이다. 조절지식국가의 출현과 연이은 변환에서 보는 것은 지식자원이 중요해진 것맘큼 지식의 생산과정은 국민국가의 통제로부터 이탈하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환경에서 생산된 지식이 초국적으로 유통되면서 해당 분야에서 경재역을 유지하려면 국가의 구성원들은 영토의 경계를 넘어서 활동할 수밖에 없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국민국가 단위를 넘어서는 정체성도 출현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가 정당성을 유지하고 국내적 존재 기반을 유지하는 길은, 글로벌 환경을 염두에 두고 지식의 생산과 유통을 조직하는 장(場)을 제공하는 것뿐이다. 이러한 와중에 불가피하게 기존에 국민/민족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던 국가형태의 변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3. 네트워크 지식국가의 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