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_ 서울 도성 답사를 시작하며
1장 숭례문을 지나 인왕산을 오르다
영원히 기억해야 할 서울 성곽의 자랑스러운 얼굴_국보 숭례문
안타까운 성곽 복원 현장을 걷다_대한상공회의소
■ 순성놀이
: 실학자로 유명한 유득공의 아들 유본예의 저작인 [한경지략]을 보면 순성놀이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나온다. 도성을 둘레가 대략 40리나 되며, 봄과 여름철에는 성 안 사람들이 짝을 지어 성 둘레를 따라서 한 바퀴 돌면서 성 안팎 경치를 구경한다. 한 바퀴 돌자면 하루해가 걸린다. 이것을 순성놀이라 한다. [매일신보]는 1916년 순성놀이를 순성장거라 이름 붙이고 5월 4일부터 첫 번째 광고에 들어갔다. 또 5월 5일 두 번째 광고는 일시, 장소, 코스, 준비물에 대해 알리고 있다. 하지만 5월 7일 순성장거 계획은 비와 흐린 날씨로 취소되고 일주일 뒤로 연기되었다. 그러자 [매일신보]는 순성장거가 연기된 7일부터 '경성의 성벽'이란 주제로 연재를 시작했다. 5월 18일까지 8차례에 걸쳐 연재되었는데, 5월 14일 진행되는 순성장거를 알리는 광고를 5월 11일과 13일 두 차례에 걸쳐 싣고, 14일 아침에는 기사로 순성장거를 알렸다. 14일 당시 기사는 제목을 '금일은 순성하세!'로 잡고 준비물과 행사 일정을 알렸다. 또한 14일 기사에는 예전 순성놀이가 신앙에 가까웠다고 소개하고 있다.
한 많았던 역사의 굽이굽이를 지키며_서소문 터
신교육의 요람_옛 배재학당 터
외교 문제로 묻혀 버린 성곽의 흔적_러시아 대사관
최초의 근대식 여자학교_이화학당 터
시대를 뛰어넘어 살아 숨 쉬는 강인한 생명력_창덕여중
끝내 자리 잡지 못한 비운의 역사_돈의문 터
백범이 이루고 싶었던 꿈, 내가 이루고 싶은 꿈_경교장
최초의 근대적 기상관측소를 가다_옛 경성측후소
꾸미지 않은 세월 그대로의 모습이 반갑다_월암공원
■ 월암공원에서 배우는 서울 성곽 축성 기법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길이 살아 한국 동포를 구하라_배설의 옛집 터
울 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_홍난파 옛집
무악동 박완서의 어린 시절 속으로_무악동 소방 도로
서울을 가장 서울답게 볼 수 있는 하늘 아래서_인왕산 성곽 길
나그네의 고단한 발걸음을 달래는 하늘과 바람 속으로_창의문
■ 인왕산 구간 각자 찾아보기
2장 북악산을 넘어 낙산에 서다
자연과 역사의 절묘한 조화란 이런 것일까_북악산 서쪽 구간
백악신사의 흔적을 담은 마루에 올라_백악마루
청운대의 장관에 흠뻑 취하다_북악산 동쪽 구간
오행으로 알아보는 숙정문의 명운_숙정문
이태준의 글 속에서 서울 성곽을 발견하다_성북동 서울 성곽
학교 담을 따라 피어 있는 역사 이야기_국제고, 과학고, 경신중고등학교
끊어질 듯 이어지는 성곽의 자취를 찾아_혜성교회와 서울시장공관
고갯마루 문루를 타고 넘는 기나긴 역사_혜화문
낙산 성곽에서 만나는 사학자 김성칠의 삶_낙산 북쪽 구간
도심을 수놓은 아름다운 숲길 속으로_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도성 5대 명승지의 화려한 그림자를 찾아서_낙산 정상
활터에서 배우는 조선조 선비들의 공부법_좌룡정
다시 아쉬운 발걸음을 떼어 놓으며_낙산 남쪽 서울 성곽 구간
한국 여성사의 발자취를 짚다_옛 이대부속 동대문병원
스스로 지워 버린 스스로의 역사_동대문교회
■ 북악산-낙산 구간 각자 찾아보기
3장 동대문을 지나 장충단의 역사로 향하다
말없이 도성의 동쪽을 지켜 온 자랑스러운 얼굴_동대문
역사의 더께가 켜켜이 쌓여 흘러가는 곳_오간수문 터
사라짐으로써 다시 드러난 역사의 아이러니_이간수문 터
■ 조선 시대에는 어떻게 성돌을 캐고 운반했을까?
: 조선 시대에는 어떻게 이런 성돌을 마련했을까? 도성을 쌓는 일을 맡은 기구로는 태조 때 설치된 도성조축도감, 세종 때 설치된 도성수축도감이 있었다. 이 도감들 아래 부석소를 설치했다. 부석소를 책임지는 관리를 낭청이라 했다. 조선 시대에는 '돌을 캔다'는 의미로 '채석'이라는 말보다 '부석'이나 '벌석'이라는 말을 주로 섰다. 부석소 내 석공의 체계는 어땠을까? 조선 전기에는 전체 일을 관장하는 대목이 있고, 대목 아래에 도석수, 도석수 아래에 석수가 있었다. 하지만 17세기 이후에는 국가가 하는 공사에서 대목이라는 용어는 사라지고, 대신 각 부분의 작업을 담당하는 변수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석공의 편제는 제일 위에 도변수가 있고, 그 다음으로 변수, 그 다음 석수가 있었다. 조선 시대 건축 장인의 기술 교육은 도제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석장(돌 다루는 장인)의 경우, 어린 소년을 데려다가 도제적으로 훈련시켜 그가 기술을 습득하면 관청의 장적(장인 호적 장부)에 올렸다.
동대문과 광희문 사이에서_치성
급격했던 역사의 소용돌이를 받아 내며_하도감 터
해방 이후의 추억을 찾아서_옛 동대문운동장
디자인 서울을 생각하다_서산부인과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린 도성의 동남문_광희문
: 조선 시대에는 도성 안에 묘를 쓸 수 없었다. 도성 안에서 사람이 죽으면 사람의 시신은 서소문과 광희문 두 곳으로만 나갈 수 있었다. 서울 동북 방면에 묘지를 정하면 광희문을 거쳐서 운구했으므로 시신을 보내는 문이라 하여 시구문으로도 불렸다.
주택가에서 찾아보는 성곽의 역사_광희문 남쪽 서울 성곽
걸어서 기분 좋은 길_장충단 서울 성곽
개발 시대의 불도저 소리가 들려오는 곳_타워호텔과 자유센터
독재자가 남겨 놓은 지울 수 없는 탐욕의 흔적_신라호텔
■ 동대문―장충단 구간 각자 찾아보기
4장 남산의 숨결과 함께 성곽을 거닐다
성문을 열어 백성을 편리케 하라_남소문 터
생태 탐방로를 꿈꾸며 걷는 길_남산공원길
사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호젓함 속으로_새 남산산책로
서울의 상징이 되다_서울타워
목멱산의 중심에 서서 나라의 안녕을 빌다_목멱신사
허물없는 친구처럼 넉넉한 품을 내어 주는 곳_남산 풍광
푸른 하늘에 띄우는 간절한 소망_남산 봉수대
잠두봉에서 누리는 최고의 멋을 찾아서_남산 제일 전망처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치욕의 역사_조선신궁 터
백범광장에 국회의사당이?_백범광장
일제 말기 가혹했던 황민화정책의 상징을 발견하다_아동광장
과거와 미래의 대화를 꿈꾸며_소월로
■ 남산 구간 각자 찾아보기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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