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 서양의 지적 전통
우리는 정치, 문화, 과학기술의 변화가 지식의 생산, 보존, 전달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시기를 통과하며 살고 있다.
1장 도서관 기원전 300년~기원후 500년 : 지식의 집대성과 기록의 탄생
알렉산드리아에 도서관을 지을 것을 제안했으며, 서구의 지적 전통에서 가장 덜 알려졌으면서도 가장 중추적인 인물 중의 한 명이 팔레론의 데메트리오스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에 설립한 유명한 야외 학교 리케이온의 학생이었다.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데에는 적어도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제각각의 관점이긴 하지만 공통적으로 일치하는 부분도 있다. 첫 번째는 제도적 관점에서의 접근 방법이다. 도서관이 어떻게 설립되었고 어떻게 자금을 유치했는지,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수집되고, 복사되고, 분류되고, 보관되었는지, 학자들이 어떻게 도서관을 이용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 번째는 지적 관점에서의 접근 방법으로 우선 책을 수집하는 것에 대한 이성적 근거로 시작된다. 특히 도서관이라는 것은 글쓰기가 지식을 체계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신념에 기초를 둔다. 하지만 1800년경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계몽주의 성향의 백과사전 편집자들과 낭만주의 성향의 대학 강사들은 글쓰기가 더 나은지 말하기가 더 나은지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보였다. 세 번째 접근 방법은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관점에서의 접근 방법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의 기관이 2쳔 년 넘게 훌륭히 존속해 왔다는 것은 단순히 학자들과 학계의 관심만이 아닌 사회전반의 관심을 이끌어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기관은 틀림없이 고대인들의 가슴속 깊은 열망을 실현시키고, 세력가들의 소망을 반영했으며, 사회 정치적 권력 체계의 훌륭한 조화를 도출시켰을 것이다.
말하기는 아테네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개인의 소규모 정치 활동에 있어 중심적인 기능을 수행했다. 오랫동안 그리스 폴리스는 참주나 귀족의 지배를 받았지만, 기원전 6세기경의 정치적 충돌을 거치면서 민주정치가 수립되었다. 전제정치에서 민주정치로의 변화로 인해 효과적인 대중 연설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경쟁적인 말하기를 위해서는 방랑 시인이 아니라 지도자가 필요했고, 그런 역할을 수행한 것이 바로 소피스트들이었다. 고용된 전문가로서 그들은 서사시와 고대 시, 특히 호메로스에 대해 설명하며 고객들에게 말 잘하는 법을 가르쳤다. 소피스트들이 전수한 기술, 어떤 논쟁에서도 이길 수 있는 능력은 폴리스에서 영향력과 권력을 얻는 길이었다. 소피스트들은 설득 기술과 화법 교육의 체계화를 통해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다루며 최초의 원문 연구 학자가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법과 수사학, 나아가서 지금은 언어학이라고 부르는 분야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었다. 이를 위해 소피스트들은 문자 언어, 특히 책에 대한 의존을 키웠다. 소크라테스는 문자 언어에 대한 소피스트들의 과정된 신념이 신체의 기억력을 약화한다고 믿었다. 보수적인 사람이었던 소크라테스는 남자들 사이에서의 활동적이면서 성적인 언어적 유대에 다시 귀를 기울였다. 소크라테스의 방법, 즉 집요한 문답법은 스승과 제자 사이의 생산적인 의견 충돌에 기초한 구술 교육법이다. 이것은 말하기를 통해 결국 진실에 이르게 된다는 소크라테스 철학의 믿음을 반영했다. 플라톤은 말하기라는 방법론을 먼발치에서 조망하며 새로운 국면을 조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플라톤의 대화는 성문화된 형태를 취했고, 그 본질상 경쟁자들(소크라테스를 포함한) 사이의 충돌과 의견 차이를 조정하여 그들의 논쟁을 논리적으로 해결해 갔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사실은 플라톤의 대화를 통해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소피스트들의 학문과 확연히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는 점이다. 플라톤과 그의 동료들은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사용된 동사의 시제를 철저히 분석하는 대신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주의 철학과 연관된 형이상학적 성찰의 방법을 사용했다. 본질적으로 그들은 관념적 성찰을 즐기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성향과 실용적 학문을 강조하는 소피스트의 성향을 융합했다. 제도적으로 플라톤과 그의 추종자들이 대화를 통해 창조했으며, 추후 후손들이 모방을 하게 된 제도는 철학을 연구하는 학교였다. 플라톤은 경쟁자들에게 자신의 아카데메이아에 참여하도록 청함으로써 지혜에 대한 자신의 애착을 입증했다. 아리스토텔레스틑 자신의 학문을 철저하게 글쓰기의 기초함으로써 경쟁자들을 흡수할 수 있었다. 그는 경쟁 학교에서 주장하는 견해들을 집대성하기로 결심했다. 그가 택한 방법은 개별 학설들을 분류하고, 그것들의 명백한 모순을 밝히기 위해 차이점과 유사점을 논하는 것이었다. 말하기는 한쪽 입장에만 치우치기 쉽고 똑같은 문제점에서 동어반복이 될 수 있다. 반면 글쓰기는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도서관은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제자 알렉산드로스의 헬레니즘 문화와의 연결고리이다.
고대의 책은 최초의 헬레니즘 제국 도서관이 생기기 휠씬 전부터 일반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었지만, 책을 수집하는 것은 개인사에 불과했지 공공의 목적은 아니었다. 책,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파피루스 두루마리는 상업공간으로서의 책방에서 일하거나 부유한 귀족에 딸린 숙련된 필경사들이 제작하는 것이었다. 글쓰기라는 육체적 행동은 다른 모든 육체노동과 마찬가지로 불명예스러운 일이었고, 교양 있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았다. 책을 '쓴' 학자들은 사실 그것을 필경사에게 받아쓰게 했다. 폴리스에서 제국으로 바뀌고, 알렉산드리아·페르가몬 등지에 도서관이 설립되고서야 비로소 책의 수집이 공적인 일이 된다. 폴리스를 대체한 이 새로운 국가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리스 언어와 문화의 중요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문화적 경쟁의 수준을 개인의 차원에서 왕조의 차원으로 높였다. 정치가 경쟁적인 말하기보다는 궁정에서 꾸며지는 음모에 더 집중하기 시작하자 확실히 일찍이 고대 폴리스에서 중요시한 인격 형성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어떻게든 그리스 최고의 학자들을 수도로 끌어들이고 싶어 했고, 그들에게 상당한 보수를 지급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책은 학자보다 휠씬 더 좋은 투자 대상이었다. 학자는 경쟁적인 세계에서 이곳저곳으로 갈팡질팡하지만, 책은 오직 쌓일 뿐이다.
제국의 후원 아래 추구한 그리스의 지식은 보다 정치색이 제거된 성격을 띠었다. 열정적인 말하기는 결국 학술적인 글쓰기에 자리를 내주었다. 알렉산드리아 학문의 궁극적인 업적은 집대성이었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백과사전적 접근법의 영향을 그대로 반영한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비판적 독서는 '한발 더 나아간 글쓰기를 위한 원천'이 되었고, 주석, 소사전, 색인 같은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냈다.
통치자들이 자신의 명성을 높이고 반대로 경쟁자들은 비열한 호전가로 묘사하기 이해 문화 자본에 투자했다.
격변의 시대에 진의 분서는 결코 이례적인 사건이 아니라 통치의 가장 좋은 실례였다. 분서 정책이 시행되었지만, 의학, 약학, 점복, 농업에 대한 글쓰기는 허용되었고, 뿐만 아니라 불길을 '개인적인 학문'에만 겨누었기 때문에 국가기관에 소속된 학자는 정책에서 예외였다. 이렇게 제한되고 비효율적인 정책 시행으로 인해 많고 많은 책들이 살아남았다. 전체적으로 볼 때 분서 정책은 중국의 문화적 유산에 해를 끼쳤다기보다는 이후의 왕조들이 하나같이 잃어버렸다고 생각되는 지식을 복구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데 더 큰 역할을 했다. 중국 최초의 황실 도서관은 한나라에서 시작된다. 한나라는 진나라에 이어 중국을 지배했으며, 진니라가 파괴한 모든 것을, 특히 유가의 고전들을 복구하려고 했다. 그러나 한나라의 황실 도서관은 알레간드리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일종의 문헌학적 철저함을 쉽게 앞서는 정치적 논리를 따랐다. 중국의 도서관은 조국에서 사라져 가고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이미 소실된 지적 전통의 쇠퇴를 막기 위해 설립된 반면, 헬레니즘의 도서관은 현존하는 일련의 지식을 신뢰할 만한 수준으로 복제할 수 있고 물리적으로 휴대할 수 있게 하려는 목적에서 발전했다.
도서관의 소장품들은 불타 없어졌다기보다는 사라졌다는 게 옳은 표현이며, 파괴되었다기보다는 인류의 무관심으로 쇠락했다는 게 맞다.
2장 수도원 100년~1100년 : 학문의 보존과 시간의 재발명
3장 대학 1100년~1500년 : 지식과 공간의 재배치
4장 서신 공화국 1500년~1800년 : 네트워크와 새로운 지식인의 탄생
5장 전문학교 1700년~1900년 : 최초의 지식 시장의 탄생
6장 연구소 1770년~1970년 : 거시적 시공간과 미시적 시공간의 확대
결론 : 끝없는 프론티어
옮긴이의 말 : 지식의 역사학, 그리고 미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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