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국 문예영화 이야기], 김남석, 살림, 2003, (110612).

바람과 술 2011. 6. 13. 02:19

문예영화의 개념과 논란


문예영화란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하여 시나리오를 구성(각색)하고 이를 근간으로 제작된 영화를 가리키는 장르적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은 널리 인정받고 있지만 몇 가지 중대한 논란도 포함하고 있다. 첫째, 문예영화의 원작을 어떻게 간주하는가의 논란이다. 기존의 연구는 서구식 문학 개념이 유입된 이후에 발표된 문학작품을 그 대상으로 삼았다. 다시 말하면 이광수의 [무정] 이후에 산출된 문학작품인 겨우에만 문예영화의 원작으로 인정했다. 그래서 [춘향전]이나 [심청전] 같은 고전작품이 각색된 경우에는 문예영화로 간주하지 않았다. 둘째, 문예영화가 과연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만을 가리키는가의 논란이다. 1960년대 정부는 공식적으로 '문예영화'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그 정의를 엄밀하게 따지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라는 뜻 이외에 높은 예술적 완성도를 가진 영화라는 뜻 이외에 높은 예술적 완성도를 가진 영화라는 뜻도 중첩해서 지니게 되었다. 셋째, 원작이 되는 문학의 범주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의 논란이다. 문예영화의 원작은 대부분 소설이다. 그러나 시나 수필은 조금 다르다. 무엇보다 희곡·시나리오·방송극 대본·드라마 대본은 공통적으로 연행문학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희곡과 시나리오는 독립된 장르로 인정하면서 라디오 방송극 대본과 텔레비전 드라마 대본을 제외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만화의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넷째, 원작자가 한국 작가가 아닌 경우도 있다. 다섯째, 원작 관계가 불확실한 경우를 가정할 수 있다. 정리하면 문예영화란 고전문학·소설·시·수필·희곡·방송 대본·만화 등의 문학작품 혹은 문학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 독립된 작품을 각색하여 시나리오를 구성하고 이를 근간으로 제작된 영화를 가리키는 객관적 장르 명칭이다. 


은막에 출몰하는 선각자들 : 문예영화의 탄생과 성장 


격동과 변화의 시대에 서서 : 문예영화의 실험과 도전 

영화사의 걸작들과 그 미학 : 문예영화의 정점과 그 이후 

[갯마을]은 흔히 그 이후에 나타나는 문예영화 붐의 물꼬를 튼 작품으로 간주된다. 그것은 이 영화가 정부의 우수영화 보상제 시책에 가장 먼저 동조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한국영화는 예나 지금이나 독창적이고 우수한 시나리오의 부족이 최우선 해결 과제이다.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정부는 작품성 있는 문학 원작을 시나리오로 각색하여 영화화한 작품에 혜택을 주기로 했고, [오발탄]은 그 시책이 발표된 이후에 처음 만들어진 문예영화이다. 


[만추]의 문예영화 시상과 관련되어 발생되었던 시비로, 1969년 공식적인 의미부여로서의 '문예영화'라는 용어는 사라진다. 정부는 공식적인 행사에서 문예영화의 개념을 정의하는 것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그 개념적 외연을 확장시켜버린다. 우수한 예술영화가 문예영화라는 개념은 객관적인 기준을 도출하기 어려운 개념 정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비록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문예영화의 제작편수가 감소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러한 엄밀한 개념 포기는 문예영화의 상징적인 죽음을 예고하게 된다. 


문예영화의 흐름과 위상


문예영화는 한국영화 초창기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춘향전], 이에 대항하여 순수 한국인 제작진을 고집하며 진정한 한국영화의 정수를 보여주려 했던 [장화홍련전], 윤백남과 이경손 그리고 나운규를 등장시키고 또 사라지게 했던 [운영전], [심청전], [오몽녀]가 모두 문예영화였다. 그들이 꿈꾸는 영화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훌륭한 문학작품은 꼭 필요했다. 그들은 부족한 시나리오의 공급원으로, 대중적 사랑의 저수지로, 때로는 의욕적인 도전을 펼친 모험지로, 어떨 때는 상상력의 수원지로 문학작품을 선택했으며, 이를 충실하게 영화화하는 것에 일차적인 영화 연출의 목적을 두었다. 최초의 발성영화에 도전할 작품으로 무엇을 골라야 하느냐는 자문에 대답한 것도 문예영화였고, 해방과 이어지는 전란의 틈새에서 위축된 한국영화를 살려낼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된 것도 문예영화였다. 시간과 공간과 플롯에 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문예영화는 이러한 구조적 측면과 미학적 영상을 실험할 수 있는 좋은 무대를 제공하기도 했다. 1960년대의 전·후반기는 이러한 실험이 확산되고 심도 있게 전개된 시기였다. 비록 1960년대와 함께 문예영화의 전성기가 쇠퇴하지만 그것은 더욱 큰 진보를 위한 일시적 후퇴에 해당한다. 문예영화는 위험과 매력을 동시에 가진 장르이다. 관중들이 내용을 알기에 식상해할 수도 있고 그럼에도 차별적인 영상을 만들어냄으로써 의표를 찔리는 놀라움을 경험하게 할 수도 있다. 또 스토리텔링과 상징과 의미에서 큰 자극을 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