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경제학이 깔고 앉은 행복], 요하네스 발라허, 박정미, 홍성헌 감수, 대림북스, 2011, (121115).

바람과 술 2012. 11. 16. 09:58

들어가며


케인스 "새로운 이념을 찾아내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오래된 이념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이다." 


1장 행복 르네상스 시대, 경제학이 꿈꾸는 행복은 무엇인가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두 세계


경제라는 용어의 명명자는 아리스토텔레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경제에 대한 체계적 사고를 철학적으로 확립한 최초의 인물이다. 'oikos'가 그리스어로 '집'이라는 뜻이므로 'oikonomia'란 다름 아니라 가계를 꾸려나가는 것, 그 일의 일부인 농사를 지음을 밀컫는 말이었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자급자족, 즉 경제적으로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것을 자급자족하고 남는 것을 내다 팔아 자기 집에 없거나 스스로 생산해낼 수 없는 물건을 다른 사람한테서 사들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단순히 사들이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하는 구매에 대해서는 철저히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런 구매 자체가 자칫 경제의 평화를 깨뜨리는 주범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경제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고 언제나 더 높은 목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더 높은 목표란 고대 그리스 시민의 성공적인 삶을 위한 물질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에 있었다. 여기에서 경제와 윤리의 밀접한 관계가 확연히 드러난다. 성공적인 삶에 관한 문제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 식 윤리의 요점 내지 핵심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존재와 행동은 바로 이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행복을 잘못 이해해서는 안 된다. 어떤 행복감이나 개인의 행복을 이기적으로 추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행복과 경제, 서로 다른 길을 가다

칸트는 행복이 근대윤리학에서 아직 지극히 하위의 역할만 할 뿐이라고 보았다. 그 이유는 계몽된 사회에서 개인의 행복에 대해 보편화된 진술을 한다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하고, 사람들은 각각 자신의 행복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나름대로 개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떤 한 사람에게 의미가 있고 삶에 유용해 보이는 것이라고 해서 그것을 다른 사람의 행복 개념과 내용적으로 공통된 점을 찾아 일치시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다. 이 사실에서 1930년대부터 현재까지 근대 경제학의 주류를 이루는 신고전학파는 행복이나 이익에 대한 개인의 생각을 비교하는 것이 불가능하 뿐러더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찌됐든 행복은 이로써 완전히 사적인 영역으로 밀려났고, 행복의 개념을 이익의 개념과 맞바꾼 경제학은 이익에 대해 형식적인 말만 늘어놓는 것에 만족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측면은 극대화의 논리다.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라는 유형의 중심 가정처럼, 경제적 인간은 항상 자신이 가지 수단을 이용하여 최대의 이익을 창출해낸다. 또한 자신의 투입 내지 비용을 최소화하여 주어진 목표를 이루고자 한다. 경제학자들이 이 가정을 처음에 단지 순수하게 이론적이고 방법적인 목적으로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사고방식은 점차 우리의 실레 경제적 일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행복을 향한 새로운 동경이 시작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윤리에 대해 논하고 성공적인 삶에 대해 묻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칸트에게 있어 필수불가결한 것은 윤리학이 가급적 경험적 사실과 무관하게 도덕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이었다. 칸드는 순전이 이성을 기반으로 해서 보편적인 윤리적 법칙을 구성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그 법칙은 곧 인간은 자신의 존엄성을 근거로 서로의 특정 권리를 인정해준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의 권리를 존중해야 할 각 개인의 의무는 그러한 권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칸트에게 있어 윤리학에 대한 접근은 권리와 의무의 상호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한 셈이다. 이로써 한때 밀접했던 행복 추구와 윤리적 고찰의 관계가 해체되어버렸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복지경제학의 기반이 된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를 위한 최대 행복'이라는 원칙에 따라 행위의 윤리성을 평가한다. 하지만 공리주의조차도 행복을 도외시한다면 훗날 이 원칙은 공리주의의 특성에서 실효성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칸트 이후 윤리적 정당성과 성공적인 혹은 행복한 삶은 서로 별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은 윤리적으로 옳은 것이 성공적인 삶에 걸림돌이 되거나 행복 추구가 윤리적 요구를 무시한다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경제학적 행복 연구에 숨겨진 부가가치

2장 경제학을 눈멀게 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는 굴레

완전한 듯 완전하지 않은 모델, 호모 에코노미쿠스

호모 에코노미쿠스 모델은 두 가지 기본 가설, 즉 방법적 개인주의와 사적인 이익에 기초를 둔다. 첫 번째 기본 가설인 방법적 개인주의에 따라 고찰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개별 행위자와 그들의 결정이다. 경제행위나 시장에서의 결과는 물론이고 사회적 현상까지 모두 개개인에 의한 수많은 개별 결정의 결과로 간주된다. 두 번째 기본 가설인 사적인 이익은 이익의 극대화라는 원칙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누구나 경제와 관련된 결정을 내릴 때 이익을 최대한 많이 창출하는 것을 늘 염두에 둔다는 것이다. 두 가지 가설을 요약해보면 구체적으로 이런 의미가 된다. 즉 개개인은 오로지 자신의 사적인 이익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무관하게, 그러니까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판단하기도 한다. 호모 에코노미쿠스 모델이 방법적으로 일단 개인의 선택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하지만, 특정한 선택 상황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전형적으로 취하는 행동 방식을 예측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사실이다. 이 모델은 구체적인 개개인의 행동에 대해 예견하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고찰을 할 때에도 대표적인 한 행위자를 살펴보는 것에 만족한다. 


경제학적 접근법의 주제넘음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얼마나 전지전능한가

경제적 인간은 이성적 광대인가

경제적 인간의 유일한 관심사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뿐인가

전통적인 호모 에코노미쿠스 분석 방식은 순전히 외부 자극만 고려하여 이 문제를 고찰한다. 즉 철저하게 합리적인 행위자는 자신이 내야 하는 세금을 탈세가 적발될 경우에 물어야 하는 벌금과 비교해본다는 것이다. 납세 윤리, 더 자세히 말하자면 세금을 납부함으로써 공익에 기여를 하고자 하는 자발적 마음자세는 남들도 공정한 액수의 세금을 내고 있다는 확신이 강할수록 세금을 내고자 하는 시민들의 용의가 더 커진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제한적인 협력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현실적인 삶과 연관된 경제 이론을 위하여

3장 이 시대가 요구하는 행복에 대한 경제학적 시선

행복을 꿈꾸는 경제학

경제 외적인 요인들이 발휘하는 힘

권력을 분배하고 법치국가 차원에서 통제를 함으로써 국가의 권력 독점을 막는 헌법과 민주적 참여가 국민의 행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추측이 통계조사에 의해 사실로 입증된 것이다. 민주적인 결정권과 정치제도에 대한 신뢰, 투명하고 능력 있는 정부 및 행정 구조는 삶의 만족도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달리 말해, 사람들의 관심사는 정치적 의사 형성 및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적인 법은 통치자와 국가의 행정기구가 모든 국민의 행복을 위해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을 위해 정부와 행정기구가 성공적으로 행동한다는 의미에서의 이른바 좋은 거버넌스에 대한 희망은 단지 일면에 불과하다. 정치적 의사 형성 및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 가치 있다는 사실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국민은 누구나 자신의 생활 여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관한 것이라면 적극적으로 동참을 하고 싶어한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행복 연구가이기도 한 스위스 경제학자 브루노 프라이가 알아낸 사실이다. 프라이는 특히 스위스의 26개 연방주에서 직접민주주의와 지방자치체가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데 중점을 두고 광범위한 연구를 한 결과, 직접적인 참여 여부가 삶의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방주에 결정 권한이 많이 주어질수록, 그리고 국민투표를 통해 직접적인 형태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을수록 삶의 만족도가 올라간다. 


실제로 돈이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게 할까


선진산업국의 국민들이 평균적으로 빈곤국의 국민들보다 삶에 훨씬 더 만족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첫째, 가난에 대한 낭만적인 생각은 결국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요구가 적고 단순한 삶을 살며 선진국 국민들보다 사회적 관계에 더 많이 편입되어 있다는 이유로 저개발 사회의 빈민들이 더 행복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둘째, 이 비교가 주류의 경제학적 관점, 즉 소득이 높을수록 행복이 증대된다는 견해가 옳음을 입증하는 듯 보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소득과 행복 간에 보편적으로 수긍할 만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소득과 행복은 1만 달러 정도의 한계치까지만 긍정적 상관관계가 있다. 반면에 평균소득이 한계치 1만 달러를 초과하는 나라들의 경우, 소득이 늘어나도 개인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갈수록 적어지는 경향을 나타낸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일컬어 '소득의 한계효용체감'이라 한다. 부유한 나라 사람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더 높은 소득에만 기반을 두지 않고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행복에 대한 소득의 한계효용 체감을 뚜렷하게 찾아볼 수 있다. 소득이 높을수록 실제로 느끼는 삶의 만족도의 증가폭은 줄어든다. 이와 더불어 고려해야 할 측면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한 사회 내에서 소득이 얼마나 평등하게 또는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으냐에 따라 삶의 만족도가 비교적 크게 영향을 받는 나라가 많다는 사실이다. 불균형이 심해지면 일반적으로 구성원들의 삶의 만족도가 낮아진다. 어쨌든 소득 분배의 심각한 불균형은 경제학적 관점에서 볼 때에도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소득 분배가 극도로 불균형을 이루는 국민경제는 증면된 바와 같이 지속적인 성장을 해나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가장 큰 원인은 불균형이 심화될수록 구매력과 넓은 소비층의 수요가 감소하는 데 있다. 게다가 소득 불균형은 사회적 문제나 보건과 관련된 문제들을 촉발시킨다. 덴마크와 핀란드, 스웨덴 국민들은 소득격차가 비교적 낮은 그들의 사회에서 신뢰를 높이 평가하고, 빈부의 대립 가능성을 낮게 평가한다. 미국이나 포르투갈처럼 소득격차가 심한 나라들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이 나라들은 정부와 국민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소득 불균형과 사회자본의 관계에서 인과의 사슬은 양방향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다시 말해, 소득격차의 지속적인 증가는 사회자본을 파괴하고, 반대로 사회자본이 높은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복지국가의 적절한 조치를 통해 소득 불균형을 줄이고자 기꺼이 더 많은 세금을 낸다. 결론적으로 높은 사회자본은 개인이 느끼는 삶의 만조고를 끌어올린다.  


변함없는 행복의 요인, 안정된 직장과 일에 대한 만족

행복에 대한 그릇된 추론을 조심할 것!

심화되는 불평등 문제를 다루되, '평준화'와 '대가가 비싼 취향의 문제'의 제물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 


행복에 대한 또 한 가지 잘못된 추론은 일부 행복 연구가들이 소득의 한계효용 체감 현상으로부터 이끌어내는 결론이다. 점점 늘어나는 소득과 더불어 만족도의 증가가 둔화된다면, 돈을 많이 벌수록 자기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은 세금을 내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소득을 재분배함으로써 모두의 행복이 증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소득이 적은 사람들의 행복 증대는 부유한 사람들의 행복 손실보다 훨씬 더 클 것이고, 그로 인해 사회 전체의 행복이 증대된다는 입장이다. 행복에 관한 공공리주의적 고찰이 개별 국가의 소득 분배와 같은 행복의 실질적 분배를 외면하는 평균치 자료에 근거를 두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가난한 나라일수록 불평등이 특히 뚜렷하게 나타나는데도 말이다. 어떤 나라의 삶의 평균 만족도가 증가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가난한 집단의 행복도 덩달아 상승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책 책임자들이 다수의 관심사에만 신경을 쓰면서 의도적으로, 혹은 뜻하지 않게 소수의 삶의 기회를 제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게 수치상으로 사회 전체의 행복을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을 단순하게 합한 수치를 유일한 척도로 삼는 고전적 공리주의 사고방식은 불충분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행복에 관한 의견 일치가 가능한가

우리의 삶의 기회를 개선함으로써 적어도 성공적인 삶의 전제조건만큼은 확시하게 갖출 수 있다. 삶의 기회가 성공적인 삶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스스로가 삶의 기회를 포착하고 만들어야 한다. 


인간다운 경제란 무엇인가


우리가 자신의 경제활동을 계획하는 방식에서 성공적인 삶을 위한 경제활동의 중요한 두 가지 측면 또는 인간다운 경제의 두 가지 차원이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 모든 사람의 삶이 지속적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물질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경제활동은 그 자체가 성공적인 삶에 유익한지 아닌지를 보고 평가를 받기도 해야 한다. 

4장 행복한 미래의 해답은 인간다운 경제에 있다


단기적 사고로는 미래를 꾸려갈 수 없다

행복은 곧 삶의 기회를 얻는 것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자국의 국민만 성공적인 삶을 위한 기본적인 기회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아마르티아 센에게 자유는 삶의 기회를 더 많이 가지거나 적어도 똑같이 가질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능력을 부여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삶의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전제조전이 필요하다. 센은 서로 의존하며 상호 보완하는 다섯 가지 기본 자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 시장 기회 ○ 사회보장 ○ 사회적 기회○ 정치적 참여권 ○ 투명성 보장. 


시장으로의 접근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생산 능력을 이용하여 수익을 올리게 해줄 뿐만 아니라 전체 경제의 생산성과 부를 향상시키기 위한 기본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시장은 상품과 서비스를 교환하고 사회적 분업에 참여하여 그 이점을 나눌 수 있는 가능성을 확대시켜준다. 그러나 시장은 저절로 혼자 잘 돌아가는 법이 절대 없으며, 그 기능 수행력 및 접근을 확실히 하기 위해 또 다른 제도들을 필요로 한다. 이때 나머지 기본 자유들이 작용하게 되는데, 교육과 사회보장을 비롯하여 정치적 참여 및 법적 안정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사람들을 경쟁에서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기초가 된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정규 시장으로의 접근이란 불가능한 실정이다. 


복지 시스템에 관한 논의는 흔히 경쟁력과 사회정책이 원칙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세계경제의 통합은 모든 국민경제에 더 많은 부의 기회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리스크를 안겨주기도 한다. 더구나 글로벌 통합이 경쟁을 더욱 가속화시켜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는 기업이나 산업도 많이 생기게 되었다. 경제학자 요제프 슘페터는 1930년대에 이미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비유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자동차는 무엇보다도 브레이크 장치가 갖춰져 있기 때문에 더 빠른 속도로 달릴 수가 있다." 안전장치가 있어야 비로소 외부 위험요소를 완화시키고 일부 영역에서 글로벌화가 개별 사회에 요구하는 구조 변화를 이끌어가는 데 필수적인 재량권이 확보된다. 처음부터 사회정책은 적절한 강요를 통해 개개인의 능력을 촉진시키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책임에 대한 호소를 악용함으로써 연대라는 기본 원칙의 이름을 훼손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연대책임 시스템은 개개인의 자기 책임을 스스로에게 이익이 되도록 강화시키여 하며, 개개인이 자신의 잠재력을 펼쳐서 마침내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동참할 수 있도록 용기를 복돋아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알맞은 전제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충분한 교육 등을 통해 스스로 그럴 만한 능력을 갖춰야 비로소 자기책임을 떠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시장경제에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사회국가적 조치의 일차적 목표는 경제위기에 대해 보장을 해주는 것과 교육 및 직업적 전문자격 취득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 그리고 누구나 정당한 방식으로 경제 분업 효과의 덕을 볼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능력 위주의 사회정책은 시장의 기능을 개선하고 개개인을 비롯하여 사회 전체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기초가 된다. 


삶의 기회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시설에 대한 접근 가능성에 의거한다. 경제학적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좋은 기초교육과 직업 교육 그리고 포괄적인 대학 교육에 투자하는 것은 개인에게나 사회 전체에나 대단히 가치 있는 일이다. 1960년대 한국은 경제적으로 지극히 어려운 여건 하에서 국가가 포괄적인 기초교육을 주도함으로써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한 중요한 전제조건을 마련했다. 다시 말해, 그같은 사회적 기회가 보장되지 않았더라면 경제 발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먼저 경제 발전을 이룩해야 나중에 사회적 성과를 위한 기반이 마련된다는 생각은 결국 오산이었음이 입증된 셈이다. 그러므로 현재 세계무역기구(WTO)의 서비스 교역 일반협정(GATS)을 이용하여 개발도상국들에게 의료 및 교육 제도를 민영화하도록 강요하고 잇는 미국을 비롯한 일부 선진국들의 노력은 그만큼 더 의문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다. 


인간다운 경제의 열쇠는 사람들을 정치 과정에 적절히 참여시키는 데 있다. 경제적 구조와 기본 틀은 책상에 앉아 고안되거나 개별 행위자에 의해 결정되어서는 안 도니다. 


투명성 보장은 정치적 참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경쟁과 협력의 밸런스


경제적 경쟁의 기회와 리스크는 시장 참여자들의 천부적 소질과 사회적 환경이 다 제각각이기 때문에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시장을 효율적으로 체계화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추가 보완 조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추가 보완 조치는 가급적 모두를 위한, 특히 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기본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누구나 경제 분업이 가져오는 복리 효과를 누릴 수 있고 스스로 인간답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신뢰할 만한 질서정책상의 규정이나 규제는 시장경제에서 경쟁의 성취 능력과 지속적인 윤리성 내지 합법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제 조건이다. 


사회적 부에 대한 생각의 전환

사회적 부는 실질적으로 공공재에 의해 좌우되기도 한다. 이러한 공공재는 시장이 혼자 함으로 생산하거나 보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국가의 적극적인 협조가, 또 한편으로는 국민과 기업, 시민단체의 참여가 요구된다. 이처럼 개인의 부와 공공의 부는 상호 의존 관계에 있으므로 사회적 부에 대한 생각의 전환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다시 말해, 사회적 부를 사적인 자산가치와 공적인 자산가치의 조합으로 생각해야 한다. 부를 증진시키는 과정에서는 더 이상 자기이익에만 의존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익 또한 고려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 사회의 부를 경제학적으로 표현하면 다양한 자본 형태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다. 가치 창출의 경제학적 개념에 따르면, 생산에서 언제나 관건이 되는 것은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어떤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경제학자들이 늘 해오던 것처럼 공급과 수요의 상호작용, 즉 시장에 떠넘겨지고 있다. 이것은 시장이 제 기능을 다하고 누구나 시장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전제될 때 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이 구매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한, 또 시장이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혼자 힘으로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한, 시장은 공공재를 생산하는데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시장에서 화폐가치로 거래되지 않는 것은 전부 다 무시된다. 그러므로 GDP는 실제 삶의 질에 대해 신빙성 없는 진술만 할 수 있을 따름이다.  


기업의 성공에 대한 생각의 전환


회사 임원진의 연봉 가운데 성과급 보너스가 차지하는 비율을 점점 더 높이는 관행은 여러 가지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첫째, 회사사 올린 성과에 개인이 얼마큰 기여했는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둘째. 보너스를 더 많이 받으리라는 기대가 직원들의 능률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 아닐 수 없다. 보너스가 급여에서 확실하게 더 큰 비중을 차지하면 보너스는 결국 사내 통제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5장 왜 우리 자신에게 달렸는가


사회의 중심 모델과 개인의 경제적 결정이 지닌 힘

삶의 질을 높이는 책임감 있는 소비 생활

나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