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학

[성장숭배], 클라이브 해밀턴, 김홍식, 바오, 2011, (130125).

바람과 술 2013. 1. 25. 04:31

옮긴이의 글 


머리말


사회구조가 철저하게 변화하는 그 오랜 세월 동안 좌파 지도층은 좀 더 올바르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진작할 만한 새로운 대안을 개발해야 했지만, 이 임무에 참담하리만큼 실패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일지는 몰라도, 좌파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이든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이든 일반 대중이 물질적 궁핍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고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미 그들 머릿속에는 다른 사람들이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고, 그걸 발판으로 활력을 얻는다. 그러고는 경제 사정이 악화될 때마다 자신들의 정당성이 입증됐다고 생각한다. 그때마다 현 시스템을 비판할 명분에 다시 힘이 실린다. 어쩌면 좌파는 집단적으로 다른 사람의 불행을 즐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빈곤층을 배려하는 관심이 제아무리 훌륭한 명분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대다수 사람들의 일상이 가진 돈을 어떻게 써야 잘 쓸 것인지 궁리하느라 바쁜 사회에서는 그러한 관심이 사회변혁을 일으킬 정치적 원동력이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좌파의 세계관은 여전히 결핍이 지배적 사회악으로 자리 잡고 있는 사회 모델을 전제로 삼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좌파 진영 안에서 오가는 이야기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전통적인 '빈곤 모델'이다. 그 다음 두 번재 이야기는 낭비와 과소비가 넘쳐나고 있으며, 성장과 개발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물질만능주의와 소비지상주의가 기존의 공동체적 가치를 몰아내고, 도처에 만연하는 마케팅의 상술이 대중을 현혹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잘해봐야 서로 일치할 수 없는 주장이고, 잘못되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상극의 논리가 되고 만다. 하나는 물질적 빈곤을 강조하는데, 다른 하나는 정반대로 성장과 소비가 지나치다고 주장한다. 이 양자를 조화시키는 데 실패함에 따라 좌파 진영은 정치적 혼란으로 치달았다.   

제1장 경제성장의 망상체계

 
1.1 경제성장이라는 망상 

현대 사회에서 경제성장의 역할을 따져보면 따져볼수록, 경제성장에 대한 우리의 강박관념은 주물신앙처럼 보인다. 경제성장은 한 해에 생산되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이 얼마나 늘었느냐는 지극히 평범한 관념에 불과하다. 하지만 좀 더 면밀하게 분석해보면, 경제성장이라는 관념에는 '형이상학적인 미묘함과 신학적인 우아함이 넘쳐흐른다. 경제가 성장하면 일반인들이 손에 쥐는 화폐소득이 늘어난다. 화폐소득이라는 보편적 등가물의 형태를 취한다는 점에서, 경제성장의 결과는 당연히 소비할 여력이 늘어났다는 것보다 훨씬 큰 의미를 띠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 소득의 증대는 세상 사람들이 희망과 계획을 몽땅 쏟아붓는 삶의 목적 그 자체다. 경제성장이 중요한 이유는 소비에 충당할 재화와 서비스의 양이 늘어나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경제성장이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는 흥분과 경제성장으로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 보장될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1.2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행복


미국의 통일된 국민계정 시스템을 창시한 쿠즈네츠는 1934년 의회에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한 나라의 복지를 국민소득을 계측한 자료에서 유추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쿠즈네츠는 1962년에 국민계정 시스템의 수립과 활용을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성장의 양과 질 사이의 차이점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한 성장으로 얻게 될 혜택과 지불해야 할 비용의 차이점, 단기적인 것과 장기적인 것의 차이점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더 많은' 성장을 목표로 설정한다면, 무엇을 더 많이 늘린다는 것인지 또 무엇을 위해서 늘린다는 것인지, 즉 더 많은 성장의 내용과 그 이유를 분명히 규정해야 한다."

 
1.3 엄청난 모순

 
1.4 정치적 함의


신자유주의 원리에 따라 구조가 재편된 사회를 보면, 권력 이동으로 득을 보는 사람들은 사실 소비자들이 아니다. 실제로 득을 보는 사람들은 정부의 영향력이 후퇴함에 따라 권력을 더 많이 차지하게 되는 기업과 금융시장이다. 이전가지 개인들은 시장에서의 권력만이 아니라 정치 과정에 참여하는 시민으로서의 권력울 가지고 있었으나 이제는 시장에서의 권력밖에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개인이 시장에서 선택을 통해 행사하는 권력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제2장 성장과 행복 

2.1 소득이 높으면 더 행복한가? 

마이클 아가일은 국가적 행복을 가늠할 때 소득수준의 높낮이보다 소득의 평등이 더 강력한 지표라고 결론짓는 여러 연구 사례를 들고 있다. 이와 같이 결론짓는 두 가지 근거가 있다. 첫째,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소득의 절대금액이 아니라 상대적 수준에 따라 판단한다는 점이다. 둘째, 부유한 나라들에서조차 불평등은 그 자체로 불건강한 사태를 더 많이 동반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점에서 평등한 사회일수록 더 행복한 사회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2.2 개인의 행복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2.3 가치와 의미 

2.4 대안적 척도 

제3장 개인의 정체성 

3.1 가진다는 것과 바란다는 것 

신자유주의는 아주 강력한 전제를 기초로 하고 있다. 그들이 전제하는 것은 사람들의 선호는 단지 주어진 것이며 사회의 통제나 당사자 이외의 사람들이 간섭할 대상이 아니라는 명제이다. 쉽게 말해, 무얼 소비할 것이며 부자가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할 것인가는 저마다 결정되어 있는 선호에 따라 개인이 행동할 뿐이라는 이야기다. 이 전제와 달리 개인의 선호가 이미 결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면 소비자들의 행동은 그들 스스로의 선호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조직과 제도의 선호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가장 열렬한 신자유주의자라고 하더라도 개인의 선호에 맡겨야 한다는 원칙에 예외를 두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개인의 선택이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만 아니라면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학은 개인들이 '선택'라는 소비 행위는 신성불가침이라는 주장을 더욱 강하게 밀고 나가는데, 바로 선택 그 자체가 혜택을 준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정확히 말해, 경제학 교과서와 신자유주의 정치철학자들이 말하는 '선택'은 결코 참된 선택이 아니다. 그들이 말하는 선택은 단지 '제조된 상품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가리킬 뿐이다.  


3.2 소비 행위와 현대인의 자아 

3.3 무엇을 위한 마케팅인가 

3.4 과소비 

제4장 진보 

4.1 진보란 무엇인가? 

4.2 억압과 해방 

4.3 세계화 

제5장 정치 

5.1 제3의 길


정치 프로그램으로 제3의 길은 신자유주의의 두 가지 근본 입장을 수용한다. 즉 정부의 주된 목표는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선책은 사적 시장의 자유로운 운영이라는 생각이다. 

 
5.2 논리를 떠나 힘으로 둔갑한 경제논리


1995년 미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카드와 앨런 크루거는 최저임금이 상승했던 미국의 여러 주에서 고용의 증가가 더 컸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실증에 기초한 이 결론을 통해서 상품의 가격이 오르면 그 수요가 줄어든다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대전제가 적나라한 반증에 직면하자, 이 실증 결과를 무너뜨리려는 대대적인 시도가 펼쳐졌다. 하지만 그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카드와 크루거는 실증 결과와 함께 올바른 논점을 제기했다. 노동시장은 여타 상품들과는 성격이 다른 '상품'이 거래되는 시장이며, 노동의 가격을 인상하면 공급되는 노동의 질과 양, 그리고 노동이 사용되는 방식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자들과 경제평론가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임금상승은 일자리의 축소를 뜻하며, 특히 '전 지구적인 경쟁이 별어지는' 세계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뻔한 귀결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한다. 

 
5.3 권력과 평등 

제6장 노동

 
6.1 노동을 다시 생각한다 

6.2 새로운 노동시장 

노동의 역할을 연구한 많은 사람들 중에서 사회심리학자 마리 야호다는 고용이 주는 다섯 가지 범주의 심리적 체험이 행복에 매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한다. 그 다섯 가지는 정형화된 시간생활, 사회적 접촉, 집단적 노력(혹은 그러한 목적의식), 사회적 정체성이나 위상, 일상적 활동이다. 현대인의 정체성 형성에서 소비의 역할이 크기는 하지만, 노동은 여전히 개인의 정체감을 느끼는 데 필요한 활동이다. 일자리를 가지는 것의 표면적 목적은 소비생활에 충당할 소득을 버는 것이지만, 현대 사회에서 실업자들이 고통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물질적 빈곤이 아니다. 


6.3 가사노동을 찬미하며

 
6.4 탈성장 세계의 노동 

제7장 환경 

7.1 끝없는 경제성장의 탐욕 

7.2 정복자 정신 

7.3 철학의 전환 

7.4 환경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제8장 탈성장 사회 

8.1 축소이행의 정치 

8.2 유디머니즘 : 행복의 정치


유디머니즘(행복주의)의 동기도 사회적 유대를 갉아먹는 자본주의의 해로운 영향을 직시하는 데서 비롯된다. 하지만 두 가지 점에서 사회주의와는 관점이 다르다. 첫째는, 사회적 유대가 훼손되는 원인은 자본 대 노동 관계에서의 약탈이 아니라, 마케팅 지배 사회에서의 과소비와 결부된 사회적 해체에 있다는 것이 유디머니즘의 시각이다. 둘째는, 자본주의의 문제는 사회적 유대의 해체만이 아니라 마케팅 지배 사회 특유의 자아 상실이라는 것이다. 

 
8.3 이행의 시작 


8.4 탈성장의 경제 

첫 번째 반론은 경제성장 없이는 자본주의가 붕괴할 것이고, 대혼란이 벌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두 번째 반론은 세계화라는 대세가 강요하는 성장 논리를 어는 나라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세 번째로 탈성장 사회에 대한 좀 더 내용 있는 반론은 경제성장률이 극대화되지 않으면 실업이 늘어나고 만성화될 거라는 주장이다. 경제학에서 '오쿤의 법칙'으로 불리는 비공식적인 상관관계에 따르면, 실질 경제성장률이 추세성장률을 2.5% 포인트 초과하면 실업률은 1% 포인트 떨어진다고 한다. 이 공식에 준해서 보면, 낮은 성장률을 지향해서 정상 상태로 가자는 이야기는 결국 대량 실업을 빚게 될 처방이 아니냐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네 번째 반론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사라지면 인간의 성취욕을 자극할 동기가 사라져 우리 사회가 유유자적하는 게으름뱅이들로 가득 차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8.5 권력과 사회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