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철학자와 하녀], 고병권, 메디치, 2014, (141125).

바람과 술 2014. 11. 25. 17:05

프롤로그 철학자와 하녀 그리고 별에 관한 이야기


철학은 특정 분야의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단 하나의 지식이나 정보도 달리 보게 만드는 일깨움이라는 것 말이다. 나는 철학이 '박식함'에 있지 않고 '일깨움'에 있다고 생각한다.  

1장 철학은 지옥에서 하는 것이다 

천국에는 철학이 없다


철학은 인간 안에 자기 극복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모든 것을 잃은 지옥에서도 그것은 사라지지 않음을, 아니 모든 것을 잃었기에 오히려 인간이 가진 참된 것이 드러난다는 걸 철학은 말해준다. 깨달음은 천국에서도 일어나지 않는다. 천국에는 우리 자신에 대한 극복의 가능성도 필요성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국에는 철학이 없고 신은 철학자가 아니다. 철학은 지옥에서 도망치지 않고 또 거기서 낙담하지 않고, 지옥을 생존조선으로 삼아 거기서도 좋은 삶을 구리려는 자의 것이다. 


‘곁에 있어 줌’의 존재론


지장보살, 그는 부처 없는 시대에 중생을 교화하고 구제한다는 보살로, 모두가 성불할 때까지, 다시 말해 지옥이 텅텅 빌 때까지 자신은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어떻든 지옥에 단 한 사람도 남겨두지 않고 성불할 때까지 곁에 있겠다는 그 무지막지한 서원 때문에 '업보가 정해져 있다'거나 '해탈 불가능한 존재가 있다'거나 하는 말들은 모두 힘을 잃어버렸다. 그가 있으면 '업보'도 '불가능'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끝까지 '네 곁에 있겠다'는 말은 그처럼 위대하다. 


초조함은 죄다 


갈림길과 막다른 길


머리에 타는 불을 끄듯 공부하라


공부하는 이들은 시끄러운 곳을 피해 조용한 곳을 찾지만, 아마도 우리가 공부하는 목적은 시끄러운 곳에서 고요를 얻는 것에 있을 것이다.  

2장 배움 이전에 배움이 일어난다 

힘을 보라


바로잡아주는 사람과 깨뜨려주는 사람


비트겐슈타인은 우리의 명제들을 다 모으면 세계에 대한 우리 자신의 명료한 생각, 즉 사고가 된다고 했다. 연주자가 기호로 표시된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것처럼, 혹은 반대로 연주된 곡을 작곡자가 다시 악보로 옮겨놓는 것처럼, 우리의 언어는 세상의 일을 논리적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그 자체로는 소리 나지 않는 악보가 멜로디로 전환될 수 있고, 소리인 멜로디가 그 자체로는 기호에 불과한 악보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표현이긴 하지만 둘 사이에 무언가 공통된 질서가 있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빌리자면, 사물들은 어떤 논리적 형식을 따라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가진 명제, 그리고 그 명제들로 구성된 언어가 '사물들의 논리적 형식'을 잘 따르게 되면, 우리는 세계를 명료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의 명제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명제가 참일 때 무엇이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물의 연결 형식을 위반하거나 넘어서면, 우리의 말은 모두 '헛소리'이거나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말'이 된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비트겐슈타인은 그것이 진리를 찾는 특정한 분과 학문이 아니라, 언어의 사용을 명료하게 해주는 활동이라고 했다. 


<논고>에는 소위 '색깔-배제' 문제가 나오는데 프랭크 램지는 그 문제에 들어 있는 어떤 것이 <논고>의 다른 명제와 충돌한다고 지적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말하는 '또 하나의 비트겐슈타인', 전기의 입장과는 사실상 정반대 편에서 전기만큼이나 위대한 철학적 입장을 개진한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탄생했다. 철학사에서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된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책 <철학적 탐구>의 서문에는 그 자신의 견해를 근본투버 다시 검토하게 한 이탈리아 경제학자의 이름이 나온다. 바로 피에로 스라파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이 전기에 주장했던 이상적인 조건들이 현실과는 괴리한 공허한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스라파의 질문을 계기로 해서, 비트겐슈타인은 자기 철학을 근본적으로 수정한다. 언어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상황을 두루 살피는 것이 필요했다. 철학이 '말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가르는, 사고의 명료화 활동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공부를 준비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모르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 

자코토에게는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평등에 대한 그의 굳은 신념 때문이었겠지만, 당시 진보적 인사들은 그에게 큰 지지를 보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찾아온 진보 인사에게 그가 품고 있는 엘리트주의, 즉 자신의 이념을 인민에게 교육해야겠다고 믿는 태도를 꼬집는 한마디를 던졌다. "여보게, 나는 내가 모르는 걸 가르칠 수 있다네."


구경꾼의 맘속에서 일어난 혁명


인류는 진보하는가? 아주 흔한 질문 같지만, 사실은 상당히 까다롭고 도전적인 질문이다. 칸트는 물음을 던져놓고는 '당신은 이 질문이 무엇을 묻는 건지 알고나 있는가?'라고 묻는 듯하다. 지금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미래의 역사, 즉 예언적 역사입니다." 역사는 과거에 대한 것이지만 인류의 진보에 대해 말하는 순간, 우리는 '인류의 미래가 지금보다 나을 것'이라고, 다시 말해 우리는 '미래에 대한 통찰'로서 역사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경험은 '경험하지 않은 역사'를 말하는 데 충분치 않다. 하지만 경험이 미래를 말하는 데 불충분한 것이라고 해도 경험을 떠나서 미래를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관건은 우리의 경험에서 미래에 대해 말해 줄 무언가를 찾는 것이다. 여기서 칸트는 규모라든가 화려함 같은 것에 속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정말 중요한 사건, 우리에게 인류의 개선과 미래의 역사에 대해 물해주는 사건은 어찌 보면 너무 조용하게 일어난다. 오히려 칸트는 구경꾼들,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의 맘속에서 일어난 일에 주목한다. "거대한 정치적 변동의 드라마가 일어나는 동안에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의 태도", 진짜 혁명은 거기서 일어난다. 


배움 이전에 일어난 배움 

3장 사소한 것은 사소하지 않다 

한 켤레의 실내화


소유와 빈곤


'만물을 소유했다'는 디오게네스의 말이 일종의 '관계 맺음'에 대한 것이라면, 근대 사적소유권의 핵심은 '관계 처분'에 있다. 마르크스가 사적 소유의 지양을 국유화하고 부르지 않고, "모든 인간적 감각들의 속성들의 해방'이라고 부른 것은 참 인상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그가 지향한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보다 더 많은 재화를 가진 사회, 다시 말해 엄청난 물질적 생산력을 가진 사회라기보다는, 자본주의보다 사물에 대해여 더 다양한 감성을 생산하는 사회, 사물에 대해 더 다양한 척도를 가진 사회였는지 모르겠다(이런 점에서 보면, 역사적 사회주의 국가들은 오감이 형성되는 길에서 참 멀리 있다).


사소한 것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중요하다


영혼에 남겨진 신체의 흔적

 
금욕과 탐욕


지금 이대로라도 시작할 수 있다


우리가 힘 써 할 일, 다시 말해 참된 일이란 멀리서 구할 것도 없고 '각별한 때'에 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부족하나마 지금 여기서 최건을 다할 뿐이라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 모든 때는 똑같이 소중하다. 우리 삶에 '각별한 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각별한 때'는 우리가 모든 순간을 소중히 생각할 때 찾아온다. 

4장 함부로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 

곤경에서 자유를 본 화가


길 잃은 양이 되라


철학자의 파문


멋대로 원망하라, 나도 용서하지 않겠다 

굴복보다는 커피를 택한 이들


칸트가 '계몽'의 비밀을 지능이 아닌 '용기'에서 찾았듯이, 그리고 '비판 이성' 이외에 아무 권위도 인정하지 말라 일렀듯이, 삶에서 무언가를 배우고자 한다면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것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거나 무릎을 꿇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저항의 가치


프로이트는 자신만의 방법을 발전시키기 전에 최면술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최면술은 그에게 '무의식'의 존재를 깨닫게 해주었다. 프랑스 의사 샤르코로부터 최면술을 배운 뒤 오스트리아에 돌아와서 그는 본격적인 시술에 나섰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최면술의 중대한 문제를 발견한다. 환자에게 최면을 걸면 시술도 편하고 시간도 단축되지만, 효과가 지속적이지 않았고 그나마 효과도 들쑥날쑥했다.그때 그는 최면술을 사용함으로써 뭔가 중대한 것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면술은 뭔가 중요한 것을 제거해버린다. 환자의 저항, 바로 그것이다. 환자의 저항은 통념상 분석을 막는 장애물이다. 그러나 프로이트에 따르면 그 반대가 진실이다. 그는 저항이란 나타나기 마련이고 또 나타나야 한다고 말한다. 정신분석가는 오히려 환자의 저항을 "분명하고 충분할 정도로" 불러일으켜야 한다. 저항이야말로 무의식에 대한 분석을 가능케 해주는 소중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환자가 어떤 요소에 어떤 강도로 저항하는지 살펴봄으로써 분석자는 환자의 무의식을 역동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정신분석에서 저항하지 않는 환자란 말하지 않는 환자와 같다.  

5장 우리는 자본주의 수용소에 살고 있다

 
해석노동과 공감의 능력


원자력으로부터의 전향


고흐의 발작과 죽음 사이에서


자신 역시 광기의 극작가로 불렸던 앙토냉 아르토는 죽기 1년 전, 고흐의 작품을 보고는 흥분하며 에세이를 썼다고 한다. 아르토는 고흐의 건강헤 대해 확신하며 그 첫 분장을 이렇게 다정하게 적었다. "우리는 반 고흐의 건강한 정신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 그는 평생토록 단 한 번 손을 그을렸고, 남은 인생 동안 단 한 번 왼쪽 귀를 자른 것밖에는 없다." 아르토에 따르면, 고흐는 광기의 해악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광기에 도달하여 그것이 무엇이고 자신은 누군인지를 막 알아차렸기에", 사회의 지배적 의식으로부터 처벌을 받았다. 


수익모델로서의 인간 수용소

 
우리는 시설사회에 살고 있다 

6장 야만인이 우리를 구한다 

당신의 놀람과 나의 놀람


저항하는 존재는 말소되지 않는다


어느 게이 활동가의 정치적 장례식 

한국인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사람


아펠라스는 기원전 4세기즘에 살았다고 하는 그리스의 화가다. 현재 남아 있는 작품은 없지만, 고대의 부흥을 새롭게 시도했던 르네상스기 작가들에게는 중요한 참조 대상이 되었다. 프로토게네스 역시 아펠라스와 동시대의 유명한 화가였다고 한다. 그는 아름답고 섬세한 윤곽선으로 당대 최고의 화가라는 명성을 얻었다. 전언에 따르면, 아펠라스와 프로토게네스 사이에는 전설적인 대결이 있었다고 한다. 섬세한 윤곽선을 그리기로 유명했던 프로트게네스의 명성에 아펠레스가 도전한 것이다. 먼저, 프로토게네스가 인간의 붓으로는 더는 가늘게 그릴 수 없는 선을 그었다. 그런데 아펠레스는 붓을 들고서 프로토게네스의 선 위에다가 그것을 반으로 가르는 더 가는 선을 그려 넣었다. 선을 가르는 선, 후세 사람들은 선의 중심을 다시 갈랐던 이 전설적인 분할을 '아펠레스의 절단'이라고 불렀다. 


너는 애국시민을 원하니 나는 야만인을 기다린다


역사를 향해 쏜 총탄 

에필로그 -옳은 말은 옳은 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