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류학

[대칭성 인류학], 나카자와 신이치, 김옥희, 동아시아, 2005, (160125).

바람과 술 2016. 1. 25. 11:58

머리말 - 카이에 소바주에 대해서 

서장 대칭성을 향해서 

신화적 사고, 혹은 언제나 신화적 사고에서 양분을 취해 온 모든 종교에서는,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대칭성을 갖춘 '뭔가'를 사고함으로써 죽음이라는 현실을 극복하고자 노력해왔습니다. 


신화에서 사용된 인류의 지적 능력은 과학적 사고를 탄생시켜온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신화적 사고는 마음의 내부공간에 '대칭성'으로 일관된 특수한 영역을 개척함으로써, 과학의 사고가 스스로를 성립시키는 원리(이것은 분명히 비대칭성의 원리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만으로는 절대로 만들어낼 수 없는 '사상'이라는 것을 탄생시킵니다.  


제1장 꿈과 신화와 분열증 

제2장 태초에 무의식이 있었다 

제3장 '일一'의 마력 

현생인류에 의한 경제활동의 전체성은 증여와 교환의 복논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중에서 증여는 대칭성을 특징으로 하는 무의식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증여 현상이 제대로 된 형태로 발생하면 감정의 유동이 일어나, 사람들은 행복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자본주의에서 일어나는 '가치증식'은 당연히 증여하고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풍부한 상품이 매매되고 물질과 돈의 유동이 일어나는 장소에서는, 증여의 경우와 매우 유사한 생산적 무의식의 활동이 함께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뭔가 매우 풍요로운 것이 사람들 사이를 유동하고 있는 듯한 감각이나 착각이 발생합니다. 자본주의도 강렬한 감정을 끌어내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순조롭게 운동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메커니즘 속에 있을 때 종종 행복을 느끼는 겁니다. 종교와 경제가 이 정도까지 구조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예를 찾아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그 구조는 패러독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패러독스이기 때문에, 그 구조는 성공적으로 무의식의 생산력을 유도해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발달하면 할수록, 유동적 무의식이라는 우리 현생인류의 본성에 가까워질 겁니다. 


제4장 숨겨진 지혜의 계보 

제5장 완성된 무의식―불교(1) 

제6장 원초적 억압의 저편으로―불교(2) 

현대사회에서는 '무의식' 속에 지혜가 충문해 있다고 인식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의식적인 지성의 작용이 중시되기 때문에, 지성 자체를 무의식 속으로 인도하는 지혜의 작용을 발견하려고 하지는 않는 거지요. 그런데 불교에서는 언어적인 의식의 작용으로는 전체적 진리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어 작용과 연결된 인간의 의식적인 지성 자체가, 호모 사피엔스에게 처음으로 나타난 원초적인 지성인 '유동적 지성'을 억압하고 제약을 가하고 구조를 변경함으로써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죠. 즉 유동적 지성이 의식적인 지성의 작용 전체를 감싸고 있는 관계인 셈입니다. 


제7장 호모 사피엔스의 행복 

자본주의도 무한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즉 그것도 유동적=대칭성 무의식의 작용에 깊숙이 뿌리를 내린 경제 시스템입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모든 것을 계산이 가능한 수량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관련되어 있는 무한에는 어떤 한계가 따라 다니게 마련입니다. 어떤 가치를 지닌 것이 수량으로 셀 수 있는 것으로 바뀔 때는 항상 이런 억압이 작동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무한이 유동적 지성인 우리의 무의식의 작용을 억압하고, 무의식에 고통을 준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대칭성의 논리에 의해 작동하는 우리의 무의식은 상품과 같은 '셀 수 있는 무한'이 아니라, '순서대로 정렬할 수도 없고, 또한 셀 수도 없는 무한'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무의식의 영역에 상품화의 마력이 뻗칠 때마다, 무의식이라는 옥토는 황무지로 변해버렸던 겁니다.  


제8장 다시 태어나는 보편경제학 

종장 형이상학 혁명으로의 길안내 

역자후기 - 주술사처럼 다가오는 지知의 변주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