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예수 베드로 그리고 교황
어쨌든 고대와 중세 사이의 어느 날 로마 교회에서 교황제도가 출현한 것은 사실이다.
예수는 예언자로서 짧은 삶을 사는 동안, 앞으로 도래할 하느님의 왕국을 이야기했을 뿐, 직접 교회를 세우지는 않았다. 예수가 죽고 난 후에, 제자들은 스승의 부활과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이며 구세주라는 사실은 선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기독교 공동체의구성은 아직 초기 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었고, 따라서 공동체의 모든 조직은 예수의 재림을 시한으로 하는 한시적 존재였다. 초기 공동체 생활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기록은 그때 이미 공동체 안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이방인들을 신자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받아들인다면 그들도 유태의 율법을 지키도록 강요해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던 것이다. 모세 시대까지 그 기원이 거슬러 올라가는 유태의 율법은 하느님과 유태인 사이에서 맺어진 약속이었다. 바울로는 기독교가 전통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모든 이에게 문을 활짝 열게 만든 일등 공신이다. 바울은 율법과 모세의 계명이 이제 끝났다고 설교하여, 당시에 이미 약해져 있던 기독교인과 유태교인 사이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렸다.
80~90년대, 기독교 공동체는 전환기를 맞게 된다. 공동체의 수는 증가했지만, 사도들의 가르침을 직접 받지 못한 공동체가 대부분이었다. 공동체의 지도층은 유태 공동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단지도 체제를 받아들였던 것 같다. 이때 지도자 집단의 책임자들을 '장로', '집사', '감독'이라고 불렀는데, 이런 호칭이 서로 다른 기능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가장 오래된 공동체의 고위급 지도자들은, 공동체를 세운 사도들이 직접 임명했지만, 그 계승자들은 모든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서 자유롭게 선출되었다. 신기하게도 공동체 전체가 책임자를 뽑는 이 원리는 그 동안 단 한번도 논의대상이 되지 않았다.
2세기 내내 아직 '조직'에 관한 문제는 제기되지 않았다. 여전히 믿음에 관한 문제가 본질적이었다. '누가 명령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믿느냐?'는 문제가 중요했다. 이 위기는 기독교의 메시지를 제해석하는 데서 생긴 것으로, 그노시스(기독교 이단의 일파인 그노시스파가 추구하던 지식)에 관한 것이다. 유태교의 전통, 신비교를 선호하던 당시 취향, 더 많이 알고자 하는 신자들의 자연스러운 호기심 등이 모여서, 하느님과 그리스도에 관하여, 현세와 천국에 관하여 전혀 근거가 없는 사변들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를 사람들은 '그노시스의 위기'라 부른다. 혼란 속에서 정통적 믿음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이 일었고, 기독교 신앙이 제일 먼저 선포된 장소로 시선이 집중됐다. <신약성서>가 모든 질문에 해답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사도들이 세운 '사도교회'에서 그 기준점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베드로의 가르침을 직접 받았다는 이유로 특별한 권위를 갖게 된 이 교회들은 그 때문에 '베드로의 믿음'을 소유한 교회로 인정받았다. 또한 그노시스의 위기가 심각했던 터라, 기독교인들은 사도들의 전통을 다시 찾아야 했다. 때문에 기독교인들의 통일과 교리의 정통성을 염려하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로마교회와 로마 교회의 신앙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사도들이 전수한 건전한 교리'를 찾으러 동방에서 건너온 헤제시푸스도 로마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했다. 그는 우선 코린토 교회에서 정통적 교리를 찾았고, 그 다음에는 로마 교회에서 찾아냈다. 사도들이 세운 이 두 교회에서는 그들이 직접 전수했던 정통 교리가 끊이지 않고 전해 오고 있었다. 이렇듯 2세기 말의 로마 교회는 여느 교회와 비길 데 없는 최고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
사도들이 세운 교회에서 참다운 믿음을 찾으려고 했던 2세기, 기독교 공동체 내부에서는 '군주제적 주교단'을 세우는 경향이 나타난다. 지도자 집단이 공동책임을 지던 이전과 달리, 지도층의 수장 한 사람이 유일한 책임자로 부각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로마 교회가 다른 교회보다 더 늦게 이 주교단 형태를 갖추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로마 교회가 다른 교회보다 더욱 전통주의적인 구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로마 교회가 언제 처음으로 주교를 두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2세기 후반이었을 것으로 추리된다.
제2장 로마의 공인
4세기에 일어났던 사건들은 기독교의 역사를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당시까지 금지되었던 종교인 기독교가 합법적인 종교가 되었고, 다시 그 후에 국가의 공식적인 종교로까지 승격되었다.
330년에 콘스탄티누스는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틴으로 옮기고, 수도 이름을 콘스탄티노플로 명명했다. 제국의 수도라는 기능을 빼앗긴 이 도시에서 대신, 한 가지 새로운 이념이 확고히 자리잡게 되었다. 바로 '영원한 로마'인데, 그 이념의 중심에는 '황실 로마'를 대체한 '기독교 로마'가 놓여 있다. 로마 황실이 동방으로 자리를 옮긴 대신, 로마에는 본질적인 것, 즉 베드로와 바울로, 두 사도가 세웠던 기독교의 전통이 남게 된 것이다. 4세기와 5세기 사이에 로마는 거의 완전히 기독교 도시가 되었다. 로마를 이렇듯 새롭게 변모시키기 위해 황제와 귀족들의 돈이 아낌없이 사용되었다. 여러 개의 대성전과 세례당을 건축했고 카타콤을 세웠으며, 과부들과 고아들도 돌보았다. 로마는 기독교 도시의 모범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이같은 새로운 의식구조에서 생겨난 최초의 성과들은, 343년에 개최되었던 사르티카(소피아) 공의회에서 나타났다. 진정한 의미의 공의회로는 최초라 할 수 있는 이 공의회에서, 서방의 교회들은 3번과 5번 규정에 동의했다. 동방의 교회는 이를 거부했으나, 어쨌든 지방 공의회에서 해임된 주교는 누구든지 로마 주교에게 호소할 수 있게 되었다. 로마 교회는 수위권을 확립할 법률적 토대를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마수스 교황의 후임자 중에서, 시리키우스와 인노켄티우스 1세의 업적이 두드러진다. 그들은 '교황령'을 발표하여 영원한 로마라는 이념에 처음으로 구체적인 형태를 부여했다. 교황령이란, 주교들의 질문에 교황이 보내는 답신을 말한다. 그때부터 이 답신들의 사본은 로마 교회의 문서고 안에 보관되어 판례로 사용되었다.
제3장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의 사망과 더불어, 고대는 막을 내린다. 그리고 로마 제국에서 가장 번영했던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북구 아프리카는 몇 년 안 되는 짧은 기간 안에 이슬람 세력에게 점령되어 버린다. 718년, 아랍인들이 피레네 산맥을 넘어오면서 서방 세계가 축소되었다. 이는 서구 기독교 세계의 축소를 의미했다. 가장 자율적인 교회였던 아프리카 교회와 스페인의 서고트 교회가 사라지는 가운데, 새로운 세계의 아스라한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제 중세가 시작되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 접어든 교황권은 수천 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중세를 지탱하는 기둥으로 우뚝 선다.
제4장 위기의 시기
무려 4세기가 넘는 긴 세월 동안 교황권은 분열된 양상을 보인다. 교황들이 품고 있던 이념은 여전히 웅장했지만, 현실은 이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초라했기 때문이다. 아비뇽의 유배, 서방 교회의 분열, 공의회 우위설, 인문주의의 대두, 종교개혁과 계몽주의 등이 이 시대 교황권 역사의 특징적인 단계들이다. 여전히 교황권은 이 모든 사건들의 중심이었지만, 이미 사건을 주도할 능력을 상실한 채, 그저 감내해갈 뿐이었다. 이런 중에도 교황권이 활짝 핀 예외가 있었다면, 바로 르네상스 시대이다.
교회가 세 명의 교황으로 분열되어 있는 동안, 유럽은 자신의 길을 착실하게 가고 있었다. 14세기 들어 새로운 세계관이 이탈리아에서 태동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15세기 말부터는 북유럽으로 번져 나갔다. 인간은 스스로를 운명의 주인으로 자각하기 시작했다. 우주 안에서 인간의 위치를 다시 정렬했으며, 중세보다는 고대를 더욱 친근하게 여기게 되었다. 이런 새로운 사유방식을 인문주의라고 부른다.
제5장 혁명의 한복판에서
1789년, 또다시 새로운 역사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혁명은 마치 넘실대는 큰 파도처럼 봉건제도와 군주제, 성직자들의 특권 등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모든 질서를 휩쓸어버렸다. 혁명의 이념은 온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에 확산되었고, 이로써 교황권을 보호해 주던 역사의 울타리는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제6장 또다시 맞은 천년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 파시즘과 소비에트의 도약과 붕괴 등이 20세기를 뒤흔들었다. 또한 수많은 새로운 문제들이 출현했다. 폭발적인 인구의 증가, 아시아와 아프리카 신생 국가들의 범람, '선진국'에 편중된 부, 전대륙의 빈곤화 등등 ···, 이런 상황 속에서 오늘날 교황은 방송매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교황의 권위를 세계적으로 행사하고 있다.
기록과 증언
<교황지령>- 신정정치의 선포(1075년). 독일 황제 하인리히 4세와 충돌했을 때,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유럽에서 교황권이 절ㅈ어에 이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1. 로마 교회를 세우신 분은, 오로지 구세주 한 분이시다. 2. 로마 주교만이 정당하게 보편적이다. 3. 로마 주교만이 주교들을 해임하거나 용서할 수 있다. 4. 교황특사는 직분이 주교보다 낫다할지라도, 공의회에서 모든 주교들 위에 있다. 또한 교황특사는 그들에게 해임선고를 내릴 수 있다. 5. 교황은 공의회에 참석하지 않는 자들을 해임할 수 있다. 6. 교황이 파문한 사람들과는 한 지붕 아해서 살 수 없다. 7. 교황만이 상황에 따라 새로운 법을 제정할 수 있고, 새로운 백성을 모을 수 있으며, 성직자회의 교회를 수도원으로 변경시킬 수 있다. 또한 교황만이 부유한 주교구를 나눌 수 있고, 반대로 가난한 주교구를 합칠 수 있다. 8. 교황만이 황제의 기장을 사용할 수 있다. 9. 교황은 모든 왕족들이 발에 입맞출 수 있는 유일한 자이다. 10. 교황은 자신의 이름을 모든 교회에 선포할 수 있는 유일한 자이다. 11. 교황의 이름은 세계에서 유일하다. 12. 교황은 황제를 해임할 수 있다. 13. 교황은 필요에 따라서 주교들의 자리를 옮길 수 있다. 14. 교황은 어떤 교회의 성직자라도 교황이 원하는 다른 교회의 성직자로 임명할 권리가 있다. 15. 교회의 명령을 받은 자는 다른 교회에서 서품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분란을 일으키면 안 된다. 서품을 받는 자는 교황에게서 받은 품급보다 더 높은 품급을 다른 주교에게 받으면 안 된다. 16. 어떤 일반적인 교구회의도 교황의 명령 없이는 소집될 수 없다. 17. 교황의 권위를 벗어날 경우에는 어떤 문서나 책도 교회법의 가치를 지닐 수 없다. 18. 그 누구든 교황의 판결을 수정할 수 없으며, 교황만이 모든 사람들의 판결을 수정할 수 있다. 19. 어느 누구도 교황을 심판할 수 없다. 20. 아무도 교황에게 도움을 청하는 자를 비난할 수 없다. 21. 모든 교회의 중요한 소송문제는 교황에게 보고해야 한다. 22. 로마 교회는 결코 과오를 범한 일이 없다. 그리고 <성서>의 증언에 따라서 앞으로도 결코 과오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23. 교회법규에 따라 서품을 받은 로마 교황은 복되신 베드로의 공덕으로 의심할 여지 없이 성인이 된다. 24. 교황의 신하들은 교황의 명령이나 동의에 따를 때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25. 교황은 교구회의의 모임 밖에서도 주교들을 해임하고, 또한 죄를 용서할 수 있다. 26. 로마 교회와 함께하지 않는 자는 카톨릭 신자로 여기지 않는다. 27. 신하가 의롭지 않은 자에게 충성서약을 했을 경우에, 교황은 그 신하의 서약을 해제할 수 있다.
5세기부터 로마 주교, 곧 교황의 개입이 증가하기 시작한다. 그 동안 동방 교회와 불화가 계속되다가 드디어 11세기에 들어와 교회가 양쪽으로 분리되기에 이른다. 서방에서는 수세기에 걸쳐서 만국공의회와 교황이 대권을 놓고 논쟁을 일으켰다. 종교개혁 이후 16세기부터, 무오류성의 교리가 계속 발전하다가 마침내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선언된다. 보편 목자인 교황이 결정적인 진리를 언급하겠다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모든 교회에게 신앙이나 도덕에 관해 말할 때, 교황의 말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교황의 무오류성)
연보
용어풀이
참고문헌
그림목록
찾아보기
사진제공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한국인이 꼭 알아야 할 30가지 남한산성 이야기], 안미애, 라온북, 2016, (170101). (0) | 2017.01.01 |
|---|---|
| [글로벌화의 역사], 위르겐 오스터함멜/닐스 P. 페테르손, 배윤기, 에코리브르, 2013, (1612221). (0) | 2016.12.21 |
| [뇌물의 역사], 임용한/김인호, 이야기가 있는집, 2015, (160727). (0) | 2016.07.27 |
| [스캔들 세계사], 이주은, 파피에, 2013, (160612). (0) | 2016.06.12 |
| [중세의 잔혹사 마녀사냥], 양태자, 이랑, 2015, (160528). (0) | 2016.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