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호모 시네마쿠스], 류상욱, 아웃사이더, 2003, (200408).

바람과 술 2020. 4. 8. 03:11

저자의 말

정성일 추천사

책 앞에

일반적으로 영화라는 매체는 1895년 12월 프랑스 파리의 그랑 카페에서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 뤼미에르 형제는 자신들이 발명한 카메라이자 영사기이고 인화기인 시네마토그라프를 가지고 최초로 유료 상영회를 가졌다. 그러니까 이 상영회는 돈을 받고 영화를 상영한 최초의 사례인 것이다. 


바쟁에 이르러서야 영화를 독자적인 예술로 인정하고 다른 예술들과의 관계 속에서 영화를 인식하는 영화의 존재론의 내용이 채워지게 된다. 


Ⅰ. 영화비평

앙드레 바쟁

그 '현실'과 '환상'이라는 영화의 두 요소는 영화 탄생 이후에 영화이론가들의 탐구대상이 되었다. 바쟁은 조형예술의 역사를 통해서 이미지의 생성이 미학이라기보다는 심리학의 역사에 관계된다고 주장한다. 현실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떠오르는 어떤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호함은 객관성과 주관성이 교차되는 지점을 말한다. 


기호학 역시 영화언어에 대한 분석을 발전시키지만, 결국 외부의 현실과 영화적 기호와의 관계를 해결하지 못한다. 결국 기호학은 영화연구의 한 분야이지만, 창조적인 작업에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바쟁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예술에서) 절대적 오류한 존재하지 않는다. 비평의 진실은 측정 가능하고 객관적인 정확성을 내가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따르는 것이 아니고, 우선 그 질과 넓이의 독해 안에서 분리된 지적인 흥분에 의해 결정된다. 비평의 기능은 존재하지도 않는 진실을 황금 쟁반 위에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예술 작품의 충격을 읽어내는 이들의 지식과 감성 속에서 가능한 한 멀리 연장하는 것이다."


장-뤽 고다르

고다르는 현대 예술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 위기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예술에 대해서 존재론적인 사유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다르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 만약 현실이 아름답다면 영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고다르가 생각하기에, 시선은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이 우연한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멜로디와 리듬을 분리할 수 없는 것처럼, 만약 미장센이 시선이라면 몽타주는 정신의 충돌이다. 계획한다는 것은 그 둘의 고유한 성격이다. 그러나 전자가 공간 속에서 그것을 추구한다면, 후자는 시간 속에서 그렇게 한다.


그래도 <까이에 뒤 시네마> 시절의 고다르에 대해 정리하면,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일단 '주제'였다. 


프랑소와 트뤼포

트뤼포는 철저한 이분법적 구도를 견지한다. 즉, 시적 리얼리즘과 심리적 리얼리즘으로 이어지는 '양질의 전통'과 '작가영화'를 철저하게 구별하는 것이다. 트뤼포가 생각하기에, 작가는 그 자신만의 특정한 개성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어떤 세계관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다. 트뤼포의 말에 의하면, 심리적 리얼리즘 영화는 감독의 영화라기보다는 시나리오 작가의 영화가 된다. 


릭 로메


자끄 리베뜨

Ⅱ. 영화이론

앙드레 말로

영화와 다른 예술 사이의 결정적인 단절을 가져오는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데구빠주의 발명이다. 


"고전적인 몽타주에서 생략은 스타일의 한 효과이다. 로셀리니에게서 생략은 현실의 한 공백, 혹은 우리가 현실에 대해서 갖는 인식의 공백이므로 본질상 한정되어 있다. 이를 통해 네오리얼리즘은 하나의 미학적 입장이기 이전에 하나의 존재론적인 입장이 된다"


작가주의

미장센은 감독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자신의 작품이 갖는 특별한 성격을 세우기 위해서 발명된 기술이다. 바로 작가의 독창성은 그들이 선택한 주제가 아니라, 그들이 사용한 '기술'에 있다. 그렇다면 평론가의 역할은 뚜렷해진다. 이미지 뒤에 존재하는 작가의 특정한 미장센을 발견하는 것이다. 


결국 작가정책과 이후에 영미에서 확립된 작가주의는 하나의 '이론'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정책'이다.


영화와 현상학

앙드레 말로가 <화술>에서 말한 바와 같이 대화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설명적 대화로 극적 행동의 상황을 주지시키려는 것인데 소설과 영화는 모두 이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둘째는 음색적 대화로 이것은 각 인물의 특유한 어조를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인물들의 토론과 충돌이 제시해주는 극적 대화가 있는데 이것이 영화의 주요한 대화 형태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속적이지 못하다. 


구조주의

장 미트리

브라이언 루이스는 <장 미트리와 영화의 미학>이라는 책을 썼는데, 여기에는 미트리가 <영화의 심리학과 미학>에서 설명하려는 미학적 의도들이 정리되어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영화의 경험을 정의하는 현상적 특성들의 핵심에 한계를 정하고자 했는데, 이것을 미트리는 '기본적 구조들'이라고 부른다. 둘째, 다양한 영화릐 '형식들'을 기술하는데 이것은 기본적인 영화경험의 각기 다른 심리적 양식을 결정한다. 그러나 형식들이 그것의 '본질'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셋째, 미트리는 영화의 표현적이고 상징적인 능력을 탐구하는데, 그는 영화를 현실의 복제, 예술, 그리고 언어인 표현양식으로 설명한다. 넷째, 미트리는 영화의 특별한 임무라는 개념을 주장하는데, 이 주장은 비판적인 기준과 평가적인 위계질서의 집합을 기반으로 한다. 마지막으로 역사가, 기록보관인, 철학가로서 미트리는 미학이론가들과 관련되지만 약간은 다른 목표를 성취하려고 한다. 그러한 목표는 영화이론에 있어서 형식주의 대 사실주의 논쟁의 중개, 독창적인 인식론의 전개, 영화 서사의 역사에 대한 세심한 기술을 포함하고 있다. 


사진적 이미지는 어떤 대상에 대한 심리적인 '분신'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상을 미학적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모든 이미지의 속성은 '어떤 것'의 이미지이다. 사진적 이미지는 그 이미지 자체와 대상의 존재론적인 결합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시대상과의 공간적인 유사성에 의해 형태를 만들어낸다. 


결국 영화적 구조에 대한 논의의 귀결점은 '관객'인 셈이다. 


에드가 모랭

피토레스크의 뜻은 그림의 소재가 될 정도로 아름답다는 것이다. 


크리스티앙 메츠

영화에서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를 어는 순간에 분리시킬 수 없기 때문에 영화는 언어가 아니다. 그러나 영화는 의미의 단위들을 가지고 있다. 


롤랑 바르트

바르트는 사진을 분석하면서 몇 가지 층위를 나눈다. 첫 번째는 정보적 층위이다. 여기에는 무대장치, 의상, 등장인물들, 그리고 그들의 다양한 관계와 막연하게 내가 알고 있는 일화 속에 삽입된 그 관계들과 내게 가져다주는 모든 지식이 결집되어 있다. 이것은 초기 기호학의 대상이다. 두 번째는 상징적 층위이다. 이것은 중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우선 지시적 상징체계가 있고, 다음으로 담화적 상징체계가 있으며, 에이젠쉬테인적 상징체계가 있다. 마지막으로 상징적 상징체계가 존재한다. 전체적으로 이 두 번째 층위는 의미작용의 층위이다. 이것에 대한 분석은 제2기 기호학이라고 할 수 있는, 더 이상 메시지의 과학이 아닌 상징의 과학으로 열려져 있는 신-기호학이다. 


제3의 의미는 의미화의 층위이고 줄리아 크리스테바적인 텍스트 기호학에 합류한다. 바르트가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의사소통이 아니라 의미작용과 의미화이다. 


Ⅲ. 사건들

알제리 전쟁

누벨 바그

누벨 바그를 생각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누벨 바그가 변덕스런 기질을 가진 저널에 의해 지지를 받았다는 것과 이리저리 휩쓸리는 관객의 욕구에 그 존재 기반을 두었다는 것이다. 


68년 5월 혁명


그르넬 협상은 조르주 퐁피두 수상이 노동자들을 매수하기 위하여 주요한 노동조합과 그르넬 가에서 일주일 동안 협상을 벌인 것을 말한다. 그 내용은 최저임금 35% 증가, 노동시간 단축, 더 낮아진 은퇴 연령, 더 많아진 노동조합의 권리 등을 담고 있었지만, 노동자들은 이것을 거부했다. 즉 68의 노동자들은 그런 개량적인 협상이 아니라 '혁명'을 원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