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갈등 도시], 김시덕, 열린책들, 2019, (205009).

바람과 술 2020. 5. 9. 00:31

들어가는 말 :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며 시민의 도시를 걸을까

제1장 대서울이란 무엇인가

대서울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입장들

〈경인(京仁) 메갈로폴리스〉의 탄생과 수도길

〈경인〉이라는 지명의 분포

한국 마라톤의 기원이라고 할 1923년 6월 3일의 제1회 경인 역전 마라톤 대회는 서울 사대문 안의 경성일보사에서 출발해서 경인로를 따라 서울 최초의 강남인 영등포, 경인 시가지 계획상에 자리한 오류, 소사, 부평 등을 거쳐 인천 구도심의 인천 세관까지 달렸습니다.


부평 평야

서해 바다를 통해 이어지는 대서울

한강을 통해 이어지는 대서울과 평민의 신앙 〈부군당〉

제2장 도시 문헌학과 도시 화석

문헌학자처럼 대서울 걷기

도시 문헌학

도시 화석

머릿돌

튀어나온 철근

마을 비석, 기념비, 추모비

가게 간판

제3장 갈등 도시, 대서울을 걷다

경인 메갈로폴리스의 축

1 봉천동ㆍ신림동 : 남서울과 대서울의 도시

2 상도동 : 잠시 존재하는 풍경들

3 흑석ㆍ노량진ㆍ대방ㆍ신길 : 경인 메갈로폴리스의 동남부

4 영등포 : 철도와 부군당

5 서울ㆍ부천ㆍ광명ㆍ시흥ㆍ안양의 경계에서 : 대서울 서남부의 공업ㆍ군사 벨트

6 파주와 고양 : 무게 중심의 이동

7 고양에서 가좌까지 : 핫 플레이스 너머의 대서울

8 구파발 사거리에서 독립문역 사거리까지 :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의주로

의주로를 따라 동남쪽으로 내려가다가 무악재 넘어 만나게 되는 홍제에는, 1970년에 고양시 벽제로 옮겨지기 전까지 오랫동안 서울시의 화장장으로 기능한 홍제동 화장터가 있었습니다. 


서울 시설 공단에서 관리하는 화장장과 공동묘지가 대서울 외곽 경기도에 존재하고, 고양시와 서울시의 경계에 자리한 이말산에서 전근대의 무덤과 군사 시설과 은평 신도시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것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이들 시설을 서울시 외곽과 서울시 바깥의 경기도 곳곳으로 밀어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한국의 다른 지역과는 차별적으로 존재하는, 이른바 <혐오 시설>을 외곽으로 밀어내어 <청결>하고, 가난한 자들을 외곽으로 밀어내어 계급적으로 <균질>해진 서울<특별>시ㅏ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서울<특별)시를 <청결>하고 <균질>한 공간으로 만드는 작업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청결>하고 <균질>한 환경이 사람에게 도리어 해를 끼치는 것처럼, 군사 시설과 화장터와 무덤만 서민의 공간을 모두 고층 아파트 단지로 바꾸어 버리는 것이 결국은 서울이라는 공간과 서울 시민에게 나쁜 결과를 낳으리라고 저는 예측하고 있습니다. 도시는 서로 다른 사람과 건물이 뒤섞여 있어야 활기를 띠고 성장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대서울의 한가운데

9 해방촌 : 비교 도시사와 삼문화 광장이라는 관점에서

해방촌과 그 서쪽의 후암동은 서로 전혀 다른 역사적 맥락에서 형성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해방촌 또는 후암동이 주목받을 때마가 심상지리를 확대하며 서로의 영역의 잠식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해방촌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 후암동 일부가 해방촌이라고 인식되고, 후암동이 뜨면 해방촌 일부가 반대로 후암동인 것처럼 생각된다는 뜻입니다. 


10 종로 5ㆍ6가 : 겨울, 피맛길에서

11 을지로 : 서울 100년의 시층(時層)

조선 시대 지배층의 곤간만을 역사라고 생각하여 보존 및 복원(이라는 이름의 창조)해야 하고, 그 히우의 서울 시민의 공간은 식민 잔재와 개발 독재의 흔적일 뿐이므로 지킬 가치가 없다는 사고 방식이 2002~2006년 청계천 복원 사업과 2019년 현재 을지로 3가역 일대의 철거 작업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록 을지로의 풍경들

12 이태원, 보광동, 한남동 : 신앙의 길

한강을 외쪽으로 바라보며 보광동 사람들이 도둑촌이라 부르는 대사관 거리가 나옵니다. <대사관 골목으로 바뀐 이웃 동빙고동 대형 주택가를 일부 사람들은 '도둑촌'이라고 불렀다. 5·16 쿠테타 이후 고위 관료들이 연이어 호화 주택을 짓자 "도둑질을 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집을 짓겠냐"며 비아냥댄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대서울의 과거ㆍ현재ㆍ미래

13 약수에서 길음까지 : 집단 주택의 박물관

14 길음에서 창동까지 : 묘지ㆍ철거민ㆍ공장ㆍ고층 아파트 단지

15 의정부 : 변화하는 정체성

16 남양주 : 천부교ㆍ원진 레이온ㆍ마석, 그리고 다산 신도시

17 강남 답사 전략 : 농촌 강남, 영동 개발, 군사 도시

오늘날의 강남과 직접적으로 관련을 맺는 역사 시대는 조선 시대입니다. 조선 시대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오늘날의 강남의 형태의 형태를 만듭니다. 한 가지는 각종 문중이 소유한 토지입니다. 방배동의 효령대군 이보 묘역 일대의 문중 땅, 그리고 서초동 법조타운 일대에 있던 해주 정씨 문중 땅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또 한가지는 강남이 농촌이던 시절의 마을과 길입니다. 이들 마을과 길은 영동 개발 때 대부분 사라졌지만 몇몇 구간에서는 여전히 그 흔적이 확인됩니다.


천 채의 가옥이 있다고 해서 천호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8 성남 : 광주 대단지, 분당, 판교 세 도시 이야기

19 용인 : 확장 강남의 남쪽 끝

일본의 기획원이 1943년에 작성한 <중앙계획소안요강안>에서 새로운 수도 후보지로서 오카야마현, 후구오카현과 함께 <조선 경기도 경성부 주변 지구>(한국외국어대학 용인 분교가 있는 계곡 일대)를 들었다. <전 국토의 중심적 위치>, <교통이 편리하고 지역의 문화 수준이 높고 기성 도시와 적당한 거리에 있는 새로운 토지>일 것이 그 조건이었다고 한다. 


20 의왕ㆍ군포ㆍ안양ㆍ과천ㆍ사당ㆍ방배ㆍ이수 : 대서울의 과거, 현재, 미래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