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화사의 과제], 요한 하위징아, 김원수, 아모르문디, 2016, (200907).

바람과 술 2020. 9. 7. 11:39

옮긴이의 말

문화사는 사회의 형식, 상징, 은유, 스타일, 사고방식 등을 탐구함으로써 정치적·경제적·사회적인 것뿐만 아니라 문화적·미학적·지적인 것을 포함한 인간 활동을 총체적으로 다루는 역사학의 한 분야이다. 

 

근대 역사학의 가장 오래된 범주들 중의 하나인 문화사라는 표현은 1780년대 초에 독일에서 처음 사용되었지만, 이 개념에 대한 최조의 기술은 볼테르의 <루이 14세의 시대)에서 구체화되었다. 문화사는 19세기의 철학적·역사적 관념론에 크게 혜택을 입은 역사 분야이다. 19세기말 부르크하르트, 딜타이, 람프레히트, 바르부르크 그리고 호이징하 등에 의해 고무·발전된 문화사와 정치사의 핵심 개념들은 헤겔 철학으로부터 연원한 것으로서, 문학과 예술, 사회와 사상을 하나의 단위로 분석할 수 있다는 가정에 기초한 것이다. 

 

1부 문화사의 과제

 

중세의 대학은 문자 그대로 기사들이 마상 시합을 벌이던 아레나(투기장), 혹은 김나지움과 같은 곳이었다. 연구자는 그곳에서 진지하고도 위험스러운 시합에 임했다. 대학에서의 활동은 기사들의 활동과 마찬가지로 종교적인 봉헌의식 혹은 도전하고 투쟁하는 시합의 성격을 띠었다. 중세 대학의 활동을 구성하는 것은 바로 종교예식의 형태를 둘러싼 끝없는 논쟁들이었다. 그것은 마상시합과 마찬가지로 문화를 창출하는 여러 진지한 사회적 놀이의 형태들 가운데 하나였다. 테제와 논쟁은 일종의 기술로서 중세 사회의 구조와 정신에 완벽하게 대응된다. 학자들은 삼단논법이라는 무기를 들고 싸웠다. 

 

1. 역사학의 난점

 

역사학은 불충분한 문제 설정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문화사가 정치사나 경제사와 구별되는 독자적인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것이 보다 심층적이고, 보편적인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탐구한다는 점에서만 가치가 있는 것이다. 국가나 상업은 전체로서 뿐 아니라 동시에 그 세부적인 개별 현상으로서도 존재한다. 반면에 문화는 오직 하나의 전체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이 말은 문화사 연구에 있어서 모든 학자들은 반드시 전체 분야를 망라하는 그런 노력을 시도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문화사는 대부분이 탐구자(역사가)와 사상가들의 자유로운 정신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문제설정(정립)에 있어서 최대한의 주의력과 신중함이 요구된다.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문제제기는 예외 없이 초점을 벗어난 다른 이미지들을 그려낸다. 그래서 오늘날의 문화사는 이와 같은 초점을 빗나간 이미지들로 인해 너무나 시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 진화의 개념

 

진회의 개념은 역사 연구에서는 거의 쓸모가 없으며, 오히려 혼란을 야기하고 훼방을 놓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화(발전)라는 표현이 특정한 역사적 관계에 적용될 경우, 그것이 어디까지 될 수 있고 될 수 없는지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다. 명확히 한정되어진 어떤 현상을 이해하고자 할 때 이 용어가 유용할 수 있다는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최소한 역사의 한 영역에서만큼은 진화의 개념은 적절하게 변용되어 사용될 경우 최고 권위의 우월한 지배원리로 기능할 수 있다. 

 

'진화(발전)'의 방향을 결정힛는 선천적인 경향을 가진 역사적 '유기체'라는 개념을 여전히 고수하는 그런 사람은 이미 목적론에 깊이 빠져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역사적 '유기체'는 생물학적 유기체와는 달리, 그것이 목적을 갖고 있는한에서만 일관성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화(발전)의 개념이 생물학적 의미로 역사에 적용될 경우, 그것은 진정한 이해를 방해하고 있을 뿐이다. 

 

3. 교양 있는 독자를 위한 역사서술

 

보다 광범위한 교양있는 독자를 위한 역사서술이, 문학적 요구를 바탕으로 문학적 수단에 의한 그리고 문화적 효과를 노리는 미학적이고 감정적인 역사를 쓰는 작가들의 수중에 떨어질 때, 우리의 문화는 병들게 된다. 

 

역사학만큼 일반 대중에게 그 문호를 개방하고 있는 학문은 달리 없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학만큼 아마추어 연구자가 서서히 전문가로 변신하는 데 유동적인 학문도 없다. 역사 서술은 하나의 문화적 단계가 그 정신적인 중심을 확보한 곳에서는, 그 어디에나 나타난다. 

 

19세기에 들어서 대학의 역사연구 방식에는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으며, 이에 따라 역사학의 전 영역은 커다란 변혁을 초래하였다. 18세기 말 이래로 학문 일반은 문화와 사회를 아우르는 종합적 구성물로 발전해왔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보다 엄격하고 더욱 고도의 요구조건을 부과하였다. 그러한 요구조건은 오직 연구 센터인 대학에서만이 충족될 수 있었다. 이로써 역사학은 아카데믹한 학문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학문이 대학 중심으로 전향하게 된 이러한 경향은 역사학이 문화생활과의 접촉을 파기하게 한 것은 아니었다. 역사학에서도 어떤 학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전문가들만이 공유하는 연구영역이 존재한다. 어떤 학문분야이든 그것을 기른 문화에 의해 수용되고 지지받을 수 잇을 때에야 비로소 완전한 학문으로 정립될 수 있는 것이다.  

 

4. 문화사의 과제

 

문화사의 주요 과제는 문명의 실제적이고 개별적인 과정을 형태학적으로 이해하고 표현하는데 있다. 

 

1) 역사적 감각

 

2) 심리학인가, 형태학인가

 

역사는 과거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해석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역사학의 특성은 필연적으로 형식부여의 성격을 내포한다. 과거의 어느 한 부분을 자신의 문화가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역사가는 언제나, 그리고 어는 곳에서나 그 과거의 형식과 기능을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역사는 언제나 형태와 기능의 개념으로 말한다. 

 

3) 형태학과 신화학

 

4) 일반 형태학인가, 특수 형태학인가

 

5. 역사의 시대구분

역사의 시대구분은 아무리 그것이 불가피하다 할지라도 부차적이며, 언제나 모호하고 부정확하며 자의적인 것이다. 외부에서 가져온 무색무미한 명칭이나 역사 속으로 끼어든 우연적인 단절이 시대적 구분점으로 가장 즐겨 사용된다. 

 

2부 역사 개념의 미적 요소에 대하여

과학적 방법으로 다른 모든 역사연구 방법들을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을 비판적으로 평가해보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결론이 강력하게 떠오릅니다. 첫째는 실제 삶을 일반 개념들로 완전히 환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따라서 개별적인 모든 사건들 속에 깃든 독특함을 인정하는 것이 항상 역사연구-그렇다고 역사가가 보편타당성을 의식하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의 주된 임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결론은 첫 번째 결론을 뒤집은 것입니다. 즉, 역사연구의 불편부당성이, 미리 인지된 체계적 법칙-그것이 비록 불편부당성을 위한 것이라고 할지라도-에 따름으로써 심각하게 손상된다는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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